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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혁명과 예술진화의 새로운 주체성을 찾아서
인지혁명과 예술진화의 새로운 주체성을 찾아서
  • 교수신문
  • 승인 2015.02.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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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예술인간의 탄생』 조정환 지음|갈무리|428쪽|22,000원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노동하는 인간 모두에게 예술가의 기능과 역할을 요구함으로써 자격과 특권을 가진 직업집단으로서의 예술가 형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예술인간은 기존 예술가 형상의 반복일 수 없다.

 

예술인간의 탄생은 예술적 문제를 통해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려는 시도이며 정치적 문제 속에서 예술적 쟁점을 탐구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예술과 정치가 분리돼 있지 않고 중첩되고 혼성되는 오늘날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국가에 의한 예술 추방이라는 플라톤의 정치기획 이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예술과 정치의 관계라는 아주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를 다시 사유한다. 나의 책에 대한 이 짧은 글에서 나는 이후의 생산적인 토론 전개를 위해 나의 사유시도들이 도달한 지점, 다시 말해 이 작업을 통해 내가 발견했고 또 전개한 생각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은 20세기 말에 다시 부흥한 예술종말론들의 역사적 성격과 위치를 규정하고 예술진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예술의 종말이라는 센세이셔널한 담론은 주요하게는 세 번에 걸쳐서 제기됐다. 19세기 초, 20세기 초중반, 그리고 20세기 말. 나의 분석에 따르면 이것들은, 사회의 변형과 예술주체성의 교체 과정이 담론적 동요와 모색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들이다. 19세기 초의 예술종말론은 봉건제에서 산업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객관적 변화와, 귀족계급에 의해 주도돼온 예술주체성의 위기를 표현하며, 20세기 초중반의 예술종말론은 자본주의의 기술집약적 변형과 예술주체성의 대중화를 표현한다. 이와 비교할 때, 20세기말의 예술종말론은 기술집약적 산업자본주의가 인지집약적인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전문가와 대중으로 분화된 예술주체성의 구도가 해체되는 상황을 표현한다. 나는 이 세 번째의 예술종말론적 상황이 예술의 일상화와 보편화라는 전례 없는 조건 속에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이 상황은 예술의 종말이 아니라 ‘누구나’가 예술가일 수 있는 예술진화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기회로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예술은 주체적 재특이화의 핵심 수단”
둘째, 이 책은 예술인간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생성 맥락을 탐구한다. 예술인간이 새로운 예술적 주체성으로 되고 있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전통적인 예술가 주체성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예술가(artist)’라는 말 대신에 ‘예술인간(homo artis)’이라는 말이 따로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家’라는 말이 함축하듯이 예술가는 자격과 특권을 가진 전문적 직업집단을 의미한다. 예술가는 그 제도화된 직업집단 속의 일원으로 위치지어지고 그 위치에 의해 역할, 기능, 성격 등이 규정된다. 예술작품조차도 예술가가 놓인 이 위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예술가의 이러한 사회적 운명은 예술가를 지배체제의 일종의 ‘기능직 공무원’으로 만든다. 예술가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첨병으로 이용된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노동하는 인간 모두에게 예술가의 기능과 역할을 요구함으로써 자격과 특권을 가진 직업집단으로서의 예술가 형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예술인간은 기존 예술가 형상의 반복일 수 없다. 그것은 노동인간이 예술가가 되고 예술가가 노동인간이 되는 생성과 변형의 지평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인간형상이다. 예술인간은 자격특수적이기보다 보편적이며, 특권적이기보다 특이하고, 직업적이기보다 자기수행적인 인간형상으로서 나타난다.


셋째, 이 책은 20세기 후반에 제기된 다양한 예술진화론들이 예술인간의 탄생을 표현하고 또 예비하는 이론적 형태들이었음을 밝힌다. 예컨대 상황주의자들의 상황구축론과 푸코의 삶의 미학은 삶을 예술로서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며, 랏자라또의 미적 모델론은 노동이 예술과 중첩되는 현실을 직시케 하고, 들뢰즈의 영화론은 이미지 장치들이 새로운 유형의 정치로 되는 경향을 증언하고, 네그리의 삶정치적 예술론은 삶, 정치, 예술의 혼융 속에서 다중이 예술주체로 되는 변화를 보여주며, 가타리의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은 예술을 주체적 재특이화의 핵심적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이 주체적 재특이화란 실제로는 사회적 삶의 형태들 전부를 전복함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식으로 예술진화론들은 예술인간에 대한 미학적이고 시학적인 직관들과 예상들을 표현해 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인지자본주의 하에서 예술인간의 잠재력이 충분히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더 창의적으로 되라!’는 명령으로 한편에서 예술인간의 탄생을 촉진하는 산파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예술인간의 탄생을 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유산시킨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다중에게 창의성과 예술성을 요구하면서도 그들 모두가 기업가이기를 강요하고 있는 한에서, 누구나 예술가일 수 있는 가능성은 삶의 형태의 전복이나 새로운 삶형태의 창조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윤동기에 종속된 비루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인지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자기계발이 새로운 주체되기의 명령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이윤명령에 종속돼 있는 한에서 자기계발은 자기이용과 자기착취로,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자기포기와 자기파괴로 귀착되고 만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진정한 자기계발을 가로막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넷째로, 자기계발을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기계발, 자유, 심지어 자율성 일반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나아가는 좌파적 접근법을 극복하고 넘어설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대상화하는 연극적이고 상징적이며 재현적인 자기인식의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삶에 내재적인 수행적이고 직접적이며 표현적인 자기배려의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 이것을 통해 자기계발을 자기해방, 자기실현, 자기진화로서 실질화시키면서 자기되기를 넘어 생명되기, 공통되기로 심화해야 한다.

근대 인류 진화사가 이뤄낸 거대한 종합 사건
이러한 의미를 갖는 예술인간되기의 관점에서 이 책은, 다섯째로, 기존의 제도 예술가들과 비예술가들이 수행할 역할의 재조정을 요구한다. 예술가들에게는 지금 자본의 능력으로 귀결되고 있는 자신의 예술적 능력과 솜씨와 자원을 다중의 인지혁명과 삶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轉用하는 스파이로 될 것을 요구한다. 비예술가 다중에게는 지금까지 억압되고 망각돼온 자신들의 예술의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본이 아니라 삶에 내재적이고 충실한 것으로 표현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두 방향으로부터 출발해 합류하는 예술인간되기는 결코 노동인간, 국가인간, 경제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인간처럼 노동하되 잉여가치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더 적합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하며, 국가인간처럼 정치적이되 국가형태가 아니라 삶형태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이며, 경제인간처럼 살림살이를 하되 교환가치가 아니라 생명가치를 살림살이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인간의 탄생은 근대 인류의 진화사가 이뤄내는 하나의 거대한 종합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 강사
서울대에서 한국근대문학을 연구했다. 최근 정치철학과 정치미학을 연구하면서 화폐형태 및 주권형태의 변형과 정치의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관한 저작들을 준비 중이다. 『인지자본주의』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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