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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 :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이스라엘 핑컬스타인, 까치)
쟁점서평 :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이스라엘 핑컬스타인, 까치)
  • 김성 협성대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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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왕국의 급작스런 부흥은 논의 필요
김성 / 협성대·성서고고학

1948년 현대국가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 유대인들에 의한 체계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지면서 기독교 중심적인 성서고고학에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성서나 종교와는 관계없이 발굴 결과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신진 학자들을 중심으로 성서와는 별도로 이스라엘의 역사, 고고학 그리고 고대 문헌들을 드러난 그대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풍이 자리잡은 것이다. 그 결과 성서고고학을 성서학의 한 분야로만 여기는 기독교 학자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왜곡되지 않은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중심 주제로 다뤘듯이 성서에 묘사된 이스라엘의 황금기였던 다윗-솔로몬 시대의 역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겨났다. 1967년 5월에 발생한 6일 전쟁을 통해 그 때까지 요르단이 통치하고 있었던 동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측으로 넘어왔다. 새로운 점령지는 다름 아닌 유서 깊은 솔로몬 성전 자리를 비롯해 성서시대의 예루살렘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대인 고고학자들의 손으로 조상들의 삶의 터전을 파헤치기 시작했지만 가장 중심적인 성전 터는 이미 서기 7세기말부터 이슬람교의 성지가 됐기 때문에 감히 고고학적 발굴을 시도할 수 없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예루살렘 옛 성의 발굴을 통해 성서시대의 여러 유적들을 찾아냈지만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기원이 되는 다윗-솔로몬 시대의 흔적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 시대의 중심지는 성 밖 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자료로 성서형성사 해석

1978년부터 본격적인 다윗성 발굴이 시작됐다. 발굴 책임자의 때 이른 죽음으로 7년 만에 끝이 났지만 발굴 결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다윗-솔로몬 시대를 입증할만한 뚜렷한 건축물이나 유물들이 나오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성서역사학계의 최소주의자들은 1990년대 초부터 ‘역사적 다윗’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발굴 결과를 독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고고학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수 의견으로 폄하됐지만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이 가세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들의 학설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핑컬스타인은 그 자신이 고대 이스라엘의 중심 유적지인 실로를 발굴하면서 정착시대인 철기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고고학자이며, 실버먼은 비록 현장중심의 고고학자는 아니지만 성서고고학을 평생 연구해 온 전문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성서 형성사를 해석하려는 이 책의 주제에 비춰 볼 때 이왕이면 고고학자와 성서학자의 공동 집필이었으면 좀더 바람직했으리라 여겼지만 책장을 덮고 난 후 그 염려가 기우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왜냐면 끝 부분의 부록과 참고문헌에서도 잘 정리됐듯이 성서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최근 경향을 제대로 섭렵하고 소화했기 때문이다.

유다왕국의 급작스런 부흥 부분은 논의 필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서고고학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성서의 책 순서대로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들을 제시하면서 그 내용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고고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는 연구 방법론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로, 성서고고학자들의 중심 유적으로 여겨지는 하솔, 므깃도, 게셀의 솔로몬 성문과 성벽을 1백년 후 아합왕 시대로 늦추면서 예루살렘 발굴에서 확인된 다윗-솔로몬 시대의 부재 현상을 검증했다. 둘째, 성서에서 간과했던 북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을 고고학적 자료와 고대근동의 문헌을 토대로 재구성했으며 특히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42년에 걸친 오므리 왕조의 치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눈에 띈다. 셋째,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물의 연대를 근거로 고대 이스라엘의 문자보급 시기를 감안해 소위 야휘스트 문서라 불리는 최초의 성서인 J書의 집필 시기를 서기전 7백년경으로 늦췄다. 마지막으로 요시아 왕의 집권과 고대근동의 정황을 토대로 이스라엘 역사의 기초가 되는 족장들의 활동, 출애굽 사건, 정복과 정착 과정 등을 서기전 7세기 말에 이뤄진 창작물로 간주한 것 등이다.

하지만 서기전 721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사건을 기점으로 보잘 것 없던 유다 왕국이 급작스럽게 부흥 발전했다는 이 책의 대전제는 앞으로 좀더 다양한 증거들에 의해 검증돼야 할 것이다. 성서고고학의 전문 용어들을 우리말로 매끄럽게 번역하지 못한 작은 실수만 용납한다면 이 책은 성서와 고고학을 이해하는 근래에 보기 드문 매우 귀중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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