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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고전 목록을 만들고 자발적 독자 확대 동시에 전개해야"
"좋은 고전 목록을 만들고 자발적 독자 확대 동시에 전개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2.16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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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_4강. 이남호 고려대 교수의 '근대 한국의 고전'

‘문화의 안과 밖’시즌2의 이번 강연은 이남호 고려대 교수(국어교육학과)의‘근대 한국의 고전’이다. 시즌2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전체를 잡아주는‘개론’의 4번째 순서다. 이슬람 문명과 몽골(김호동 서울대 교수), 오늘의 사상의 흐름(김상환 서울대 교수), 문화연구와 문학연구(여건종 숙명여대 교수) 등 남은 개론 강연을 마치면, 본격적인 고전 탐색이 시작된다.
이남호 교수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꼼꼼한 텍스트 비평으로 유명한 그는『한국 대하소설 연구』, 『 문자제국 쇠망약사』,『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 윤동주 시의 이해』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날 강연을 통해 이 교수는 고전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깊고 정직한 이해를 보여주는 책 △삶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사유의 힘을 보여주는 책 △존재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지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책 등 세 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다음은 이날 이남호 교수의 강연 주요 내용이다.

 

고전 읽기가 오랜 세월 축적되면 고전 목록은 저절로 재정비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독자의 관점을 중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실 자발적인 고전 읽기와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의 사정은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전이란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이 옛것 가운데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 시대는 자기 시대의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의 흐름을 견뎌야 비로소 고전으로서의 무게를 지니게 됩니다. 고전의 목록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합니다. 근대의 지적, 문화적 성취는 대단히 풍성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무엇을 고전으로 삼을 것인가를 판단하기에는 시간의 축적이 부족한 편입니다. 근대의 작품들도 오늘날 고전의 목록에 자리를 얻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시간의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니어서 그 목록이 다소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고 그에 대한 비평적 합의도 부족합니다. 이런 문제는 특히 오늘 강연의 주제인 ‘근대 한국의 고전’을 생각할 때 심각하게 제기될 수 있습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를 작품을 선별하는 기준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라면 저절로 작동하게 됩니다. 기준을 따로 궁리하고 적용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은 자연스럽게 고전을 선별해 주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작품 가운데에서 고전을 능동적 노력으로 선별해야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 경우에는 다시 한번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며 또 그 선별 기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근대 한국의 고전’과 관련해서는 기왕에 언급되고 있는 작품들의 고전으로서의 정합성도 재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고전의 목록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기 위해서는 이른바‘필독도서 목록’이 하나의 참조가 됩니다. 우리 시대의 고전 목록을 권장도서의 목록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05년에 발표된‘서울대 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과 2007년에 발표된 연세대 문학분야 100선과 비문학분야 100선 필독도서, 2010년 고려대(세종캠퍼스)에서 발표한 권장도서 100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개의 권장도서 목록에 모두 선정된 작품은『토지』(박경리), 『광장』(최인훈)입니다. 그리고『무정』(이광수), 『삼대』(염상섭), 『고향』(이기영),『 천변풍경』(박태원),『 임꺽정』(홍명희)과 정지용의 시가 두 번 선정됐으며, 채만식은 작품을 달리해 두 번 선정됐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일단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근대 한국의 고전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한국문학의 고전의 범주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범주의 주변에서 상당한 혼란이 함께 감지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이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서 고전으로서의 확실한 중요성의 우위를 지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러한 범주에 대한 비평적 재검토 및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문학사의 작품 목록과 고전의 작품 목록은 상당 부분 겹칩니다. 고전이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만한 중요한 작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학사의 목록이 고전의 목록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지만, 고전으로서는 그만큼의 의의를 지니지 못하는 작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의 가치가 고전으로서의 가치와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광수의『무정』이 아닌가 합니다. 『무정』이 문학사적 의의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인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오늘의 독자에게『무정』의 독서가 지적·내면적 성숙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어떤 책이 독자의 지적·내면적 성숙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이고 또 어느 정도인지를 간단히 판단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고전이 좋은 책으로서 지니고 있는 좋은 자질을 거칠게 요약해 볼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고전이 되는 좋은 책은 인간과 삶에 대해 깊고 정직한 이해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 특히 좋은 문학작품들은 인간의 모순됨과 허약함, 그리고 욕망의 파국적 힘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보여줍니다. 고전의 목록 가운데에서 문학의 비중이 큰 까닭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자질을 고전이 지닌 형성의 힘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둘째, 고전이 되는 좋은 책은 삶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사유의 힘을 보여줍니다. 대개의 경우 삶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되풀이해서 물어야 하고 또 되풀이해서 새롭게 사유돼야 합니다. 고전은 이런 물음과 사유를 자극하고 도와주고 발판이 돼 줍니다. 이는 고전이 지닌 탐구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고전이 되는 좋은 책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지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통찰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통찰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 지평을 넓혀 줍니다.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지만, 인식의 그물에 잡히지 않았던 존재와 세계의 모습, 혹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나타난 존재와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책이 그러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전의 자질을 발견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오천 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민족적 자부심을 느껴도 될 정도로 꽤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지닌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저술과 관련해 훌륭한 유산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에게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권장할만한 고전으로는 어떤 책이 있을까요?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문제라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근대 이후만 간단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근대화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생존에 급급했지 존재와 세계를 탐구할 여력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근대는 파괴됐고 근대는 불완전하고 불행하게 다가왔습니다. 한글이란 매체도 거의 처음 사용하듯 새로 다듬어 써야했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선각자들은 생각의 갈피를 잡고 적지 않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이런 사정과 더불어 저의 좁은 학식을 핑계 삼아 오늘의 주제인 근대 한국의 고전을 좁게 한정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한정의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문학작품에 국한해서 고전을 생각해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전반기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김소월『진달래꽃』(1925) / 한용운『님의 침묵』(1926) / 염상섭『만세전』(1924), 『삼대』(1947) / 이기영『고향』(1933-1934) / 이효석의 단편 (1933/1936) / 정지용『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 홍명희『임꺽정』/ 백석의 시 / 이태준의 단편 / 황순원의 단편 / 서정주『화사집』(1941), 『귀촉도』(1948), 『서정주시선』(1956) / 윤동주『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이상과 같이 근대한국의 고전과 관련해 12명의 시인, 소설가의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 문학작품에 한정했고 또 20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한정하고 그 속에서 나름 신중을 기했지만, 여전히 유보는 남습니다. 저는 이 강연을 시작하면서 저의 강연이 근대 한국문학의 고전 목록에 대한 비평적 재검토와 보완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비평적 동의보다 더 기다려지는 것은 일반 독자들의 자발적이고 활발하고 실질적인 고전 읽기입니다. 이런 고전 읽기가 오랜 세월 축적되면 고전 목록은 저절로 재정비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독자의 관점을 중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실 자발적인 고전 읽기와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의 사정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앞서 제가 언급한 작품들, 즉 근대 한국문학의 고전들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자발적 독서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좋은 고전 목록을 만드는 일과 자발적인 고전 독자를 늘리는 일은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반 독자들에게 필요하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고전이나 인문학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고전이나 인문학을 직접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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