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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곤지' 치레하는 연지의 정체
'연지곤지' 치레하는 연지의 정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2.16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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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24. 홍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김수희도 불렀던「봄날은 간다」란 노래 가사다. 그녀의「못 잊겠어요」도 많이 따라 부르곤 했는데……. 여기서 치마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인 염료(색소)는 무엇일까.

또 연지는 볼과 입술을 붉게 치장하는 화장품(안료)인데 臙脂로 이마에 동그랗게 치레하는 것을 곤지라고 한다. 이렇게 볼이나 이마를 연지곤지 치레하는 연지는 어디에서 얻는 것일까. 또한 여자들이 노상 바르는 루주(rouge)라 불렀던 립스틱(lipstick)은 또 어디서 온것일까.

연지처럼 빨간 색을 얼굴에 바른 것은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말하는 붉은 색은 귀신을 물리친다는 朱色逐鬼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옛날 옛적부터 전염병이 돌 땐 이마에 연지를 칠하거나 붉은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관습이 있었고, 여태껏 전통혼례 때 신부는 연지 화장을 한다.

붉은 연지는 잇꽃에서 나온다. 잇꽃(Carthamus tinctorius)은 쌍떡잎식물, 국화과의 두해살이풀(우리나라 중부지방은 한해살이 풀임)로 명주나 손수건 등 옷감의 염료나 연지 등의 화장품 말고 약용으로도 많이 재배한다. 또한 꽃에서 카르타민(carthamin)이란 붉은 색소물질을 얻는다 해 紅花(safflower)라 하고, 紅藍花, 草紅花라고도 부른다. 원산지는 건조한 지역인 이집트나 남아시아로 추정되며, 인도, 중국, 이집트, 남유럽,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널리 재배한다.

한방에서 잇꽃을 따서 말려 부인병, 통경, 복통에 썼고, 열매 기름은 燈油로도 이용했으며, 그 등잔불에서 얻은 검댕으로 만든 紅花墨은 먹중에서 최고로 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홍화씨 기름에는 리놀산(linoleic acid)이 많이 들어 있어 동맥경화에 좋다 하며, 유화물감(oil paint)으로도 쓰인다.

잎은 단단한 것이 어긋나고, 넓은 피침(칼 모양의 침)모양으로 길이는 3.5~9㎝이며, 폭은 1~3.5㎝다. 줄기는 높이 1m 내외로 곧추서고, 기부는 목질로 변하며, 줄기 상부에서 가지가 많이 생겨난다. 붉은빛이 도는 노란색 꽃은 7∼8월에 피고, 엉겅퀴(thistle)를 닮았으며,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15~20개의 씨를 맺으며, 시간이 지나면 꽃은 붉은색으로 변한다. 열매 길이는 6㎜로 흰색이며 윤기가 있고, 짧은 갓털(冠毛)이 있으며, 씨는 흰색이면서 작은 것이 해바라기 종자를 닮았고, 해바라기 씨 대용으로 새 모이나 다람쥐 먹이로 쓰인다. 인도, 미국, 멕시코 순으로 가장 많이 재배하며, 세계적으로 1년에 대충 60만 톤을 생산한다고 한다.

홍화 꽃잎을 따 물에 넣어 황색소를 녹여낸 다음 잿물에 담그면 홍색소가 녹아나온다. 여기에 식초를 넣어서 침전시킨 것이 천이나 종이 염색을 했던 연지다. 그렇군. 연분홍 치마를 물들이거나 새빨간 연지곤지는 잇꽃의 꽃잎에서 뽑은 카르타민색소렷다! 또한 이집트의 미라(mummy)에 감은 천도 이것으로 염색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홍화 이야기였고, 다음은 립스틱의 주성분인 카민색소(carmine pigment)차례다. 카민은 옛날 옛날부터 사용된 붉은색 천연유기염료로 코치닐선인장(Nopalea coccinellifera)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 곤충의 일봉인 연지벌레(Dactylopius coccus)에서 추출한다. 카민은 천연 코치닐 추출색소(cochineal extract)로 입술연지 말고도 붉은색 음료나 아이스크림, 우유 등의 착색료로 사용되며, 얼굴화장품 제조에도 사용한다. 이것이 인공색소가 아니라고 과용하면 그리 좋지는 않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생물학 실험에서 세포를 고정하고 염색체(DNA)를 염색하는 데에 자주 쓰이는 아세트산카민(acetocarmine)이 있다. 이 試藥은 아세트산(醋酸)을 끓여서 카민분말을 녹인 다음에 여과해 만든 시약이다.

연지벌레가 기생하는 仙人掌(cactus)의 대부분은 남미나 멕시코가 원산으로 200종이 넘으며, 모든 종에 연지벌레가 진저리나게 바락바락 달라붙어 거침없이 액즙을 빤다고 한다. 선인장 중에서도 넓적넓적한 손바닥 같은 모양을 하는 무리로 우리나라 제주도에 자생하는 제주선인장(Opuntia ficus-indica var. saboten)과 흡사하다.

연지벌레는 진홍색 색소인 카민을 만드는 곤충으로, 그놈을 잡아 배를 짓눌러보면 빨간 물이 툭 튀어나오니 그것이 바로 카민 액이다. 이것이 몸의 17~24%를 차지하는데, 다른 생물이 다 그렇듯 이는 다른 捕食子들이 싫어하는 물질로 생존을 위해 만든 물질임이 당연하다. 몸이 매우 야들야들하고, 5㎜밖에 안 되는 암컷은 날개가 없으며, 둥글넓적하지만 수컷은 암컷보다 아주 작고, 길쭉하고 날개가 있다. 카민은 주로 암컷이나 알에서 얻으니 수컷은 아주 작으면서도 개체수가 얼마 되지않아 그렇다고 한다.

일일이 손으로 잡은 연지벌레 암컷들을 통째로 물에 팔팔 삼거나 쪄말려 몽땅 가루를 내고, 암모니아나 탄산나트륨(소다)용액에서 끓여 카민색소를 녹여 낸다. 1㎏의 카민을 얻는 데 연지벌레가 무려 8만~10만 마리가 든다고 하니 사막사람들의 일손이 바쁘다.

홍화에서 연지를, 연지벌레에서 카민을 얻어 백방으로 쓴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식물이나 곤충의 신세를 되우 지면서도 행여나 늘 가까이 있어 데면데면 무심했고, 가뜩이나 넘치게 많다고 만만하게 여겨 마구 퉁이나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말이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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