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1:30 (토)
역사학자와 지리학자가 읽어낸 18세기 종합 사상서
역사학자와 지리학자가 읽어낸 18세기 종합 사상서
  • 강병수 한국학중앙연구원·수석연구위원
  • 승인 2015.02.10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_ 『성호사설의 세계』 강병수ㆍ손용택 지음|푸른길|375쪽|25,000원


 
이익은 서양 역법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수용했으며, 지구의 구형설을 서학을 통해
이해했다. 도가의 ‘장자’를 빌려 지전설의
가능성을 사유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정치사회적 변동기를 논할 때 ‘실학’을 논외로 할 수 없듯이, 18세기 실학이나 실학사상의 범주를 나열할 때 성호 이익의 그것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전개할 때 대표적인 저술로 『성호사설』을 자연스럽게 꼽게 된다. 또한 이익의 『성호사설』이라 하면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한번쯤은 들어본 고전이요 제목이다. 그러나 정작 그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학자들 외에 별반 아는 이들이 적다. 성호 이익에게 관심을 가진 학자들 역시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망라한 지식체계를 지닌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즈음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관심이 높아지고 저변 확대가 돼 성호를 연구하는 ‘성호학회’까지 활성화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같은 직장에서 연구하는 두 필자이기에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일이 가능했다. 조선시대 후기를 연구한 역사학자와 실학에 관심이 많은 지리학자가 만나 펴낸 책이다.
1장에서는 『성호사설』의 편찬배경과 목적을 밝혔다. 이를 통해 ‘성호사설’이 어떤 책이고 어떻게 쓰여졌으며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가를 독자들이 소상히 알수있도록 했다. 5개의 門(서책 단위), 즉 ‘천지문’, ‘만물문’, ‘경사문’, ‘인사문’, ‘시문문’으로 구성된 각 문의 성격도 밝혔다. 아쉽게도 본 저서의 본격적 담론에서 누락된 것은 ‘시문문’ 뿐이다. 2장에서는 ‘천지문’의 연구서설 제목 하에 백과사전처럼 많은 항목을 다룬 ‘천지문’의 항목 전체를 망라해 이를 주제별로 분류해 도표로 만들고 일일이 성격규명의 설명을 달아 독자들로 하여금 ‘천지문’의 씨줄과 날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자세히 밝혔다. 이를 통해 『성호사설』의 구성이 얼마나 방대한 주제를 다뤘으며, 그 논지의 치밀하고 해박한 고증, 그리고 성호 이익의 학문적 관심 분야의 폭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치밀한 논지와 해박한 고증, 그리고 학문적 넓이
3장에서는 이 천지문의 망라된 주제들 중 지리적 내용과 견해를 골라내어 지리적 해석을 시도했다. 인간생활과 직결되는 자연현상들과 인문적 주제들을 대상으로 ‘천지문’에 담긴 지리관을 살폈다. 지형과 기후요소, 절후 등 자연지리 내용과 立地, 水利, 性比, 풍수와 風俗, 북방영토, 도서지방과 이웃나라 일본 등 인문지리와 지역지리 내용 및 지도와 지명 등에 관한 성호의 설명을 저자의 눈으로 재해석했다. 4장에서는 ‘만물문’에 담긴 지리관 제하에 지반의 융기, 회오리바람, 토양의 공극과 토질, 윷판에 내재된 북두칠성의 이동 경로 등 자연지리 관련 내용들과, 성호 역시 그 해로움을 일일이 열거하며 지적한 담배와 밤, 대추, 감 등 제사상에 오르는 주요 과일, 그리고 이앙기, 말의 사육과 국가의 馬政, 산삼, 한지, 뽕나무, 면화 등 실생활에 직결된 특용작물과 우리의 종이, 지남철이라 불리는 자석 등 인문(지리)적 내용의 주제에 대한 성호의 논증을 해석하며 지리적 관점을 살폈다.


5장에서는 ‘경사문’에 담긴 실사구시와 애민관 제하에 태풍과 천둥 벼락, 별자리의 운행과 세월(시간)의 계산, 기후 변화의 주기성 등 자연(지리)적 내용을 살폈고, 신분에 따른 棺槨의 크기, 실생활 저잣거리의 저울질과 됫박질의 엄격해야 함, 水田 관리와 둔전, 함부로 버리는 재(灰)의 소중함과 거름 활용, 홀아비와 과부 및 서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포용, 그리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야국, 삼한, 대방국의 위치 비정, 요나라와 금나라 및 원과 우리 관계 등 인문(지리)적 폭넓은 내용들의 재해석에 천착했다.
한편, 6장에서는 천지문과 경사문, 인사문에 담긴 중국관을 살폈다. 중국 역사에 대한 이익의 이해는 인의 사상에 근본해서 내면적 도덕사관 또는 물질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자 하는 사공관으로 드러난다. 전자는 유가 본래의 내재적 학문과 사고에서 형성된 것이고, 후자는 유가 경학의 내재적 사상과 외래 문물이 交接된 세계관의 확대에 따른 사유다.


7장에서는 ‘천지문’의 서학 이해와 대응론 제하에 성호 이익과 하빈 신후담의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려 노력했다. 한역서학서를 접하는 서학 정보에 관한 이해에서는 두 학인 간에 처음부터 차이가 있었다. 서학 자체는 물론 그 가운데 과학사상과 천주교 교리에 대한 관점과 대응에서도 두 학인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우주관에서도 두 학인은 동시대 인물로서 서로 다른 사유체계를 지녔다고 보인다. 이익은 서양 역법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수용했으며, 지구의 구형설을 서학을 통해 이해했다. 도가의 ‘장자’를 빌려 지전설의 가능성을 사유하기도 했다. 신후담이 이익의 서학 정보 전달에 수긍한 사실은 서양역법의 우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후담은 지구 구형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지전설이 학설로 존재하는 것조차 알지 못한 것은 성호 이익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마지막 8장에서는 성호사설과 동사강목의 단군 조선 인식을 논했다. 성호는 조선사회의 정주학 지상주의를 반성하고 선진 경학을 지향하면서 단군 조선을 재인식하려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들여온 한역서학서를 통해 지리적 세계관과 서양문물에 관한 새로운 지식습득으로 단군조선 강역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 단군조선 강역 성찰을 통해 고려 시대 이후 지녔던 반도국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중국 동북지역으로까지 확대된 자국사 인식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관점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것은 조선 중기의 『동국통감』 이후 자국사에서는 외지로 처리되던 영토인식에서 중국의 동북지역을 아우르는 단군조선의 정통을 세움으로써 가능하게 된 진일보한 혁신적 관점이다. 성리학적 역사인식을 완벽하게 벗어낫다고는 볼 수 없는 성호 이익이었지만 그를 따르는 후학들과 함께 단군 조선에서 시작해 기자 조선을 거쳐 마한과 삼국, 정통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맥을 잇는 자국사 정통론의 체계도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성호’ 연구의 새로운 전기 제공
이렇게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성호 이익의 학문적 성찰과 고민, 그의 철학세계를 모두 담고 있는 학문적 담론의 場인 『성호사설』 이해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성호사설』을 각각 단편적이고 부분적으로 고찰한 여러 견해들 가운데에서도 성호의 학문과 사상의 폭과 깊이가 읽혀질 수 있을 것이고, 낱낱의 개별을 아우르는 전체 내용 속에서 성호의 학문과 사유의 범주를 어림잡아 재단하는 근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성호사설』을 고찰하려는 연구자들의 『성호사설』 자체에 대한 이해의 접근이 용이할 수 있는 階梯 수단으로서도 기대를 해본다.


그 동안 『성호사설』에 대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한권의 책으로 낸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성호사설』을 전공이 다른 두 필자 즉, 역사학과 지리학의 종과 횡적 시선이 융합된 총합적 성찰이란 점에서 본 저술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계에 조금이나마 신선한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저자가 책을 펴내는 마음의 전부이며 기원이다. 그리하여 『성호사설』이 독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 고전으로서 이해되고 수용된다면 저자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강병수 한국학중앙연구원·수석연구위원
필자는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찬실 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