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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작업은 ‘개방형 사업’으로 … 한국식 한문 자료들에서도 ‘고전’ 발굴해야”
“정본 작업은 ‘개방형 사업’으로 … 한국식 한문 자료들에서도 ‘고전’ 발굴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15.02.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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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_ 3강. 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한국의 고전: 그 역사적 특성과 새로운 생성’’


지난 7일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3강은 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한국의 고전: 그 역사적 특성과 새로운 생성’이었다. 전체적인 이해를 잡기 위해 배치한 ‘개론’편 강연이었지만, 심 교수는 이 자리에서 고전 정본 작업과 관련 ‘개방형 사업 구상’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나가려면 무엇보다 고전 정본 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좀 더 유연한 해석의 문제를 덧붙인 셈이다. 심 교수의 강연 요지는 “고전 해석자들은 고전의 범위를 한정시키지 말고, 표기체계의 다양성을 고려해 한국식 한문의 일부 자료들 속에서까지 ‘고전’을 발굴해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심 교수의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 지난 시즌1 32회차 강연 중인 심경호 교수. 사진·자료제공= 네이버문화재단

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할 때는 『춘향전』, 『홍길동전』, 『구운몽』, 『금오신화』, 『관동별곡』, 시조, 향가, 고려가요,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장편 국문소설, 한문수필 등을 대체로 고전으로 배웠다. 그 후 한문학을 국문학의 한 부분으로 간주해 공부하면서 많은 작품과 많은 문헌이 더욱 추가됐다. 최근에는 문체 면에서 이두를 섞은 한국식 한문을, 자료형태 면에서 금석문과 고문서를 연구 대상으로 하면서, 고전의 범위를 더욱 넓게 잡고 있다. 그러면서, 과연 한국학의 고전에 대해 그 범위와 성격, 현재적인 의의는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평소 고전에 대해 생각했던 하나의 테제가 다시 떠올랐다. 그렇다, “고전은 생성이다.”


고대 중국에서 고전이라고 하면 禮의 규범성을 강조한 말이었다. 일본에서는 중국의 고전을 ‘고전’이라 했고, 에도시대 국학파는 『古事記』의 일본 서적을 ‘옛 문헌’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고전 禮를 뜻했다. 『춘향전』에서 주제사상을 구현하는 갈등구조는 춘향, 이도령, 변학도의 삼각형이다. 중국소설이나 희곡의 기녀·사인 연애담과는 갈등구조가 전혀 다르다. 한국의 국문소설은 다른 고전갈래나 마찬가지로, 그 양식, 주제, 표현기법의 면에서 중국의 고전과 연관성을 지니면서 스스로의 특질을 형성했다.

고전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여러 층위를 지닌다. 인간사가 다양한 국면을 지니고 있듯이 소설도 다양한 국면을 지니고, 그 국면들은 서로 우위에 나서려고 뒤엉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소설은 여러 시점에서 재담론 될 때 그 구조가 생동적일 수가 있다. 우리의 고전소설도 새로운 ‘생성’의 과정에 들어가도록 놓아둬야 한다. 『홍길동전』은 서얼 차별의 불합리에 항거한 특이한 주제를 담고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은 흥미 요소도 많이 지니고 있다. 길동이 둔갑술, 축지법, 분신법을 사용하는 대목을 보라. 여덟 길동이 팔도에 출몰하다가 모두 자수해 임금 앞에 나아가 한꺼번에 넘어지매 모두다 풀로 만든 허수아비였다는 대목은 너무도 통쾌하다. 조선 후기에 필사본들이 많이 나오다가, 19세기에 목판본까지 나온 것은 그런 주제의식과 통속적 요소 때문이다.


한편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風流奇語’ 다섯 편을 창작해 모은 단편 소설집이다. 『금오신화』의 산문 문체나 삽입 시가, 소재 등은 명백히 중국 명나라 瞿佑의 『전등신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다섯 이야기는 모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등장인물로 했다. 『금오신화』의 다섯 이야기는 각각 소재와 주제가 다르지만, 그 이야기들은 인간 김시습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 고전은 ‘기록’에 장점이 있다. 주지하듯이, 『조선왕조실록』은 곧 우리 조선시대 역사의 가장 가치 있는 기록물이다. 중국의 경우 조정에서 편년체의 실록을 엮은 것으로 『황명실록』 (2천964권)과 『대청역조실록』 (296년간의 기록)이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은 규모나 내용의 면에서 그것들보다 앞선다. 실록은 왕실 중심의 역사 기록이어서 사회 전체나 지방의 실정을 소홀히 다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록은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가능한 한 망라해서 수록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높다. 한국 고전 가운데는 개인의 기록물이 상당히 많다. 문학의 범주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것이 기행문이다. 기행문 가운데 遊山錄은 독특한 하나의 양식을 이루기까지 했다.


정약용은 1820년과 1823년에 춘천을 여행했다. 첫 번째 춘천 여행의 시집은 『천우기행권』이라고 했다. 두 번째 춘천 여행의 산문집은 『汕水紀行』이라 했다. 여행의 족적은 삶의 일회성을 또렷이 각인한다. 일회성을 지니기에 그것은 비로소 보편적 의미를 지닐 수가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삶의 일회성을 잘 알고 있었고, 여행을 賞心樂事로서 파악했다. 또한 한국 고전에는 사실 기록과 내면 토로를 직조한 여행 시문이 많다. 허구의 요소가 없더라도 훌륭한 문학으로 평가될 만하다. 김인겸은 1763년 癸未使行 때 三房書記로 참여해 한글 가사 『日東壯遊歌』를 남겼다. 박지원의 『熱河日記』는 서정 산문, 만필, 유서의 방식을 결합한 기이한 고전이다.


한국의 고전에는 한 인물의 일생을 서술하는 傳의 작품이 많다. 허구의 한글소설도 전이라는 제목을 취할 정도다. 그런데 인물의 일화를 집성한 인물록은 한국 고전의 특이한 분야를 형성했다. 이 인물록은 전문을 수록한 것이므로, 그 내용은 사실과 허구의 사이에서 유동했다. 하지만 완전히 허구를 지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인물록은 17세기 말부터 당론의 향배를 추적한 당론서와 私撰史書들이 발달하는 것과 함께 진화한 면도 있다. 한편 근대 이전의 학자들은 공부할 때 우선 抄錄을 중시했기 때문에 類書를 만드는 일이 많았다. 고려 시대에 이미 『고금상정예문』과 같은 유서를 만들었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독자적인 유서들은 모두 조선시대에 편찬된 것들이다.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은 초록한 정보들을 체계화하고 사실을 확인해 논증하는 일을 더욱 중시하게 됐다. 근대 이전의 백과사전인 유서들은 기존의 문헌에서 논평 없이 자료를 발췌해 집성하는 데 주력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의 고전은 허구보다는 傳聞 기술, 사실 논증, 감정 채색이 두드러진다. 국문소설, 한문소설, 장편 국문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인들은 대개 전문의 집적과 사실의 논증에 주력하고, 감정을 정제시켜 그 일단을 드러냈다. 허구가 적다고 해서 우리의 문학세계가 협소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 한국의 고전은 기존 문체의 활용과 변형, 순수국어와 한문 및 한국식 한문의 구사, 중국 고전의 수용과 논리의 개발 등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이뤄 왔으며, 그로써 시대적 문제의식과 개인적 지향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주의 및 진보주의 진영은 한국의 일부 고전을 정리한 바 있다. 그 뒤 1960, 70년대 비판적 지성들은 한국 고전 속에서 내재적 발전의 힘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들을 역주하면서 우리 나름의 고전학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차적인 자료 정리는 앞으로도 지속해야 한다. 고전은 그 자료의 형태와 내용에 따라서 다음 네 가지 정본 사업의 어느 것이 필요한지가 다르다. 또 현재로서는 이 네 가지 층위 가운데 하나에 초점을 맞춰 정본 사업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층위의 정본 사업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그 셋을 아울러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개방형 사업 구상’이 필요하다.


① 整本[초간본의 재구]: 실전 문헌의 재구 혹은 실전 초간본의 재구
② 一般 定本(正本)[이본들의 비교·대조를 통한 권위 있는 텍스트의 구성]
③ 輯佚 定本(正本)[기본의 저본만이 아니라 다른 문헌 혹은 금석문에 산재하는 일차자료를 수집해 권위 있는 텍스트의 구성]
④ 연관자료 연계 혹은 集成 定本[앤솔로지 형식의 문헌이거나 역사기록물에 연관 자료를 집성하거나 연계시킨 구성]


현재의 고전 해석자들은 종래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고전이 지닌 중층적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고전의 탄력성과 견고성을 확인해나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고전의 언표 사실에만 주목하지 말고, 언표되지 않은 것, 언표하지 않으려 한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사실은 하곡 정제두, 저촌 심육, 이계 홍양호와 조선적 양명학의 계승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고전 해석자들은 고전의 범위를 한정시키지 말고, 표기체계의 다양성을 고려해 한국식 한문의 일부 자료들 속에서까지 ‘고전’을 발굴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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