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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도를 ‘하지’ 않는가
왜 인도를 ‘하지’ 않는가
  • 이광수 / 부산외국어대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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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이광수 / 부산외국어대·인도사

왜 하필 인도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 왔다. 그러면 괜히 심사가 뒤틀린 나머지 그럼 왜 미국인데라고 반문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이내 대화는 어색해진다. 난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 곧잘 화제를 돌려버리곤 한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앙금으로 많이 남아 가슴 한켠이 답답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난 ‘왜 인도를 하는가’가 아니고 ‘왜 인도를 하지 않은가’인데 라고 궁시렁거린다.

‘삼국유사’를 한 번 보자. 한국 고대사는 ‘삼국유사’라는 사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두루 아다시피 삼국유사는 불교사관에 의해 쓰여져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 불교의 역사 인식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공부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가 그 불교 사관이 태어난 인도의 고대 역사 인식을 연구하거나 혹은 배워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한국 학계의 실정에 인도사를 연구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이라면, 최소 한국사를 위해서라도 인도 고대의 역사 인식이라도 연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불교를 한 번 보자. 불교가 한국 역사와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기독교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불교에 대한 학문적 태도는 기독교에 비해 그 진지함이나 치열함이 대단히 뒤떨어져 있다. 불교는 인도 고대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도사의 산물이다. 그런데도 인도의 불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는 얼마나 적은가. 그러면서 어떻게 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것을 논하고 어떻게 불교의 개혁을 논하는가. 그러한 것들을 모르고 불교의 신앙을 갖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그러면서 불교의 역사성을 논하고 사회적 의미를 논하는 것은 단연코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고대나 불교 혹은 한국과의 관계를 통한 인도 이야기는 일단 접어 보자. 학문하는 대상으로서 인도 자체 혹은 그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세계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동양론(Orientalism)에 관한 이야기다. 동양론에 관한 담론이 한국 학계에서도 여전히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동양론의 주요 시발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인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아직도 ‘힌두교’를 종교라는 카테고리에 포함해 기독교와 동일한 대상으로 분석하는 것에 대해 의심해 보지 않는가. 왜 인도의 사회를 카스트라는 단위로 고착화된 사회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려 하지 않는가.

과연 한국의 종교학계에서 ‘힌두교’를 연구하지 않고 과연 종교를 이야기할 수 있으며, ‘카스트’나 인도의 사회 구조를 연구하지 않고 사회학을 풍성히 논할 수 있는가. 인도의 식민주의를 연구하지 않고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의 사회는 절망적이다. 정말 꿈이라는 놈 때문에 버티고 사는 것이지 제 정신이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지역주의에 환장해 있는 사람들, 자살 특공대 같은 조중동의 행태들, 다이어트와 성형 수술 열풍, 대치동으로 몰리는 아줌마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정말 부끄럽고 창피해서 살수가 없다. 승자만이 선이고 패자는 악이 되는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군상이다. 누구 때문이고 무엇 때문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빠져서는 안 될 분명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이고 아직도 그렇지 못함을 반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중심과 변두리로 구분하고 그 안에서 ‘변두리’를 무시하는 소아적 병리 현상, 다양성과 다문화성을 기피하는 잡종 혐오주의, 한 번 정통은 영원한 정통이 되어야 하는 정통 강박 관념. 이것이 우리 학계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서양의 세계만이 전범인 양 인식하고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는 그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혀 다른 세계는 변두리로 인식되거나 혹은 그러한 취급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학계가 인도를 연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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