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2:35 (목)
낯선 섬에서 돌아갈 배를 기다리다
낯선 섬에서 돌아갈 배를 기다리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02.03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달의 詩 _ 박미라

 
어떤 길로 나서도 바다에 닿는 섬에 와서 흐르는 것들을 생각한다
저 바다 밑에는 얼마나 많은 길들이 잠겨 있는지
길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든 길들은 사라지거나 지워진 것이 아니고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서 찢어진 깃발처럼 흔드리고 있다는 것인데
바다는 그 많은 길들을 감당하느라 허옇게 뒤집어지거나 펄펄 끓는 태양을 삼켜 뒤란을 밝혀보기도 하고
빛으로도 어둠으로도 달랠 수 없는 길들 때문에 밤이면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내장을 드러낸 생선들 곁에서 죽은 듯 산 듯 졸고 있는 폐선들은
차마 잊을 수 없는 몇 개의 길을 곱씹는 중이고

없는 길을 찾아 발바닥 부르트던 수평선 쪽으로 녹슨 가슴팍을 보여주는 저물녘
돌아갈 날짜를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막배 떠났다는 소리에 막막하다 막막하다 중얼거리며 조금 쓸쓸해지는데
민박집 마당에 널린 다시마 줄기가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길은 아닌지 손 내밀다가
바다 비린내에 문득 속이 뒤집히는 건 여전히 파도 높은 때문이고

여기서는 닻의 방향이 보이지 않는 배 한 척 노을에 걸려있고

 

 

□ 시인 박미라는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서 있는 바람을 만나고 싶다』,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안개 부족』이 있으며, 수필집 『그리운 것은 곁에 있다』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