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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로사이, 안도 타다오의 건축적 수사학
지니어스 로사이, 안도 타다오의 건축적 수사학
  • 교수신문
  • 승인 2015.02.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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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가면 ‘현대건축’이 보인다!_ 김석윤·박길룡·이재성의 어떤 시도

▲ 지니어스 로사이의 외곽. 흐드러진 들풀의 가벼움 위에 석조의 메스가 무겁게 묻혔다.

안도 타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리카르도 레고레타, 승효상, 정기용, 조민석 등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들이 풍광처럼 떠 있는 곳, 바로 제주다. 이들 건축작품들은 제주 고유의 자연적 성질 및 인문적 독특함과 어우러져 그 가치를 더욱 빛낸다. 이들이 빚어내는 풍경이야말로 제주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김석윤, 외부 평론가 박길룡(국민대 명예교수) 그리고 건축 사진가 이재성이 함께 쓴 책 『제주체: 건축의 섬, 제주로 떠나는 현대건축여행』(도서출판 디, 2014, 368쪽,

이 책에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엄격하게 선정한 제주의 현대건축 40작품이 실렸다. 이들 건축은 효과적인 기술을 위해 전통, 사회, 자연, 문학 등 네 개의 주제와 그 하위의 아홉 개 탐침으로 분류, 소개되고 있다. 이는 건축을 이해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기준을 중심으로 한 분류지만, 건축이 지닌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건축 전문가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건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친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평이한 설명과 함께 책에 실린 풍부한 사진은 오랫동안 지리적으로 고립돼 그 고유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의 독특한 성질과 어우러진 제주 현대건축을 쉽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들과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책의 일부인 ‘문학적 은유’ 부분 ‘풍광이 되려는 건축’에 수록된 「안도 타다오의 건축학적 수사학」을 게재한다. 사진제공=도서출판 디

가장 일본적인 건축가 중 하나인 안도 타다오는 세계 여러 곳에 자신의 건축을 남겼다. 그만큼 많은 나라가 ‘일본적 건축’에 대해 기대하고, 안도 타다오의 ‘일본성’을 가지고 싶어한다. 제주도도 그럴까, 아니면 제주적 토착 미학과 타협하길 원할까.
글라스 하우스가 양광한 하늘을 향하고 있음에 비해, 지니어스 로사이는 땅 밑으로 잦아든다. 두 건축이 의식의 대칭을 이루거나 음양의 대립으로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힘의 근원(Ginius)과 당을 지키는 수호신(Loci)으로, 신화와 기호와 상징을 모아 놓은 개념이다. 제주 관광의 떠들썩한 놀이를 비웃듯이 우리에게 지적 유희를 묵직하게 걸어온다. 우선 콘크리트를 주조로 만든 그릇인 건축은 무겁지만 차갑지 않은 느낌으로 콘텐츠를 담는다. 공간은 몇 개의 단계로 이어지는데, 사유하고, 명상하고, 다시 되뇌며 告解하기를 건축이 조른다. 우리가 이 건축에 들어와 있다면 먼저, 일본에서 가장 심각한 얼굴(마음은 잘 모른다)을 가진 건축가를 연상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학력으로 도쿄대 건축과 교수가 된 파격, 건축의 노벨상이라 할 프리츠커(Pritzker)상(1995년)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건축상이 그의 책상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가 도전적으로 이룬 건축 인생은 젊은이들의 멘토가 된다.

▲ 글라스 하우스가 하늘로 향해 있다면, 지니어스 로사이는 땅 밑으로 향한다.

그가 활동을 시작하던 1970년대는 세계 건축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모색하던 시기였으나 안도 타다오는 여전히 모더니즘을 되새김질하며 ‘자신의 모더니즘’을 완성한다. 일본의 전통 미학에 적셔진 모노클롬의 노출콘크리트, 유리와 철의 냉정함, 좀 극단적인 공간 비례, 절제된 기하학적 구조, 빛의 공작 등으로 평온하고 묵상적인 공간을 만든다. 이러한 창작의 단서들은 일본 고유의 마(問), 샤케이(借景), 오쿠(奧) 등의 공간 언어에서 끄집어 낸 것들이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제주돌로 쌓은 ‘돌의 문’이 건축의 본명이다. 전체 평면의 윤곽은 정방형으로, 안을 田자처럼 4등분해 4개의 작은 정방형을 가뒀다. 그 안에 다시 十자를 심어 통로를 만드니 동선이 길다. 어떻게 하든 그 길이를 길게 끄는 것이 우선의 목적이다. 건축의 전개는 일시에 드러나는 게 아니라 건축, 조경, 비디오아트, 풍경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긴 스토리텔링과 같다. 곧 만나가는 과정이 건축이다.


지니어스 로사이에서도 안도 타다오의 수사학은 입구에서부터 몇 단계의 시퀀스로 이끌어진다. 우선 입구는 작은 마당을 앞에 두는데, 인공의 틀에 구조화된 자연으로 첫 인상을 전한다. 매표소를 지나 좀 더 큰 두 번째 마당에서는 돌의 원시적 생명감 속에 식물이 동거하는, 자연과 생명의 장면이 펼쳐진다. 참억새, 유채꽃, 돌이 특별해 보인다. 세 번째 단락, 가운데가 터진 낙수반(cascade)이 반듯하고, 이를 네모로 둘러싼 돌담은 거칠다. 겹이란 겉과 속이며, 밖과 안인데, 이제부터 외부의 흐트러진 자연은 잊고 안도 타다오가 규정해 놓은 이야기 구조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두 면의 낙수반 사이를 지나가는데 물이 빛이고 소리이다(이를 제주 4·3사건의 추모 혹은 진혼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 수사는 느닷없어 보인다). 네 번째 시퀀스, 콘크리트 벽 가운데 수평의 좁은 틈으로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새삼스럽게 다시 본다. 이를 건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차경이라 하는데 건축에서는 흔한 수법이다.

▲ 지니어스 로사이 내부 전시공간은 안도 타다오 특유의 침묵으로 조형됐다.

다섯 번째 프로미나트, 田자형 평면에서 예상했듯 좁은 뒷골목을 통과해 지하 공간으로 든다. 아마 그 찬란한 햇빛을 잠시 버리는 모양이다. 여섯 번째 전이, 완전 지하 공간이며 최소한의 조명으로 어둡다. 그야말로 暗寂이다. 다행히 공간에는 비디오아트가 준비돼 있다. 명상적인 주제들로 마음이 급한 관광객은 이쯤에서 초조해지지만, 조급함을 참으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면 편안한 禪을 경험할 수 있다. 일곱 번째 피날레, 귀환의 경로로 카페를 거쳐 세속으로 돌아온다.
어떤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사용자를 들여보낸 후, ‘자, 이제부터 느껴 보세요’라고 하는 느낌은 불편할 수도 있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건축이라기보다는 연면적 1천185평방미터에 압축된 말하는 장치이며, 안도 타다오가 이끄는 수사학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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