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6:05 (토)
학술대회 : 포스코 국제한국학 심포지엄 ‘한국사학의 새로운 지평
학술대회 : 포스코 국제한국학 심포지엄 ‘한국사학의 새로운 지평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10-19 15:30:29
 
 
 
 
 
 
□축제와 같은 파격적 토론을 벌인 심포지엄이었다. 왼쪽부터 최정무 교수, 김소영 교수, 슐츠 교수, 던컨 교수, 남화숙 교수, 정두희 교수.

10여분의 짧은 발표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발표자의 관점에서부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이르기까지, 좌장의 조율이 없다면 끝도 없이 이어질 분위기이다. 짧은 휴식시간에도 발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못다 한 의견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이 풍경은 지난 10일부터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 정두희 사학과 교수)와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 센터(센터장 에드워드 슐츠 한국학과 교수)가 공동 주최해 나흘간 포항 포스코 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한 국제한국학 심포지엄의 모습이다. 지루한 발표, 짧은 토론 시간,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기 일쑤인 여타의 학술대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연구자들만의 잔치를 벌인 까닭

그도 그럴 것이 이 심포지엄은 형식부터 기존의 학술대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몇몇의 초대손님을 제외하면 외부인사는 없었다. 한국과 미국학자 50여명 모두가 발제자이며 논평자인 셈이다.

두 번째로 이날 연구자들이 발표한 내용은 완성된 논문이 아니었다. 따라서 발표문도 아이디어가 농축된 2백자 원고지 40~50장에 해당하는 짧은 내용이었다. 특정한 그리고 완결된 결론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중인 연구주제를 공유하는 것이기에 토론은 자연히 활발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들 발표자들은 나흘 동안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3박4일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며 친분을 쌓았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심포지엄이 끝나도 토론은 이어졌다. 조주현 계명대 교수(여성학)의 말을 빌리자면 “감금당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처럼 독특한 행사는 지난해 6월부터 준비됐다. 정두희 교수와 슐츠 교수가 한국과 미국의 학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계획했고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비로소 빛을 보게됐다. 그러나 이 역시 단발적인 지원에 불과했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학자들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래서 기왕 벌일 잔치라면 진정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 즉 토론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 것이 지금과 같은 형식을 띄게 된 것이다.

만만치 않았던 것은 형식만이 아니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한국 사학의 새로운 지평’. 이들이 새로운 지평으로 평가한 것은 다름 아닌 ‘지방사’와 ‘여성사’였다. 최근 사학계 내부에서 지방사와 여성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주류 사학계로 적극적으로 편입된 것은 아니었다. 정두희 교수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지방사와 여성사는 한국 사학계의 가장 큰 주제가 될 것”이라며 주류사학계로 수용한 것이다. 이제 초석을 놓는 분야다 보니 유달리 젊은 학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젊은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국과 미국 학자들 사이의 교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였다.

대회는 크게 ‘한국사에 있어서 지방과 중앙’, ‘한국사에 있어서 성의 문제’라는 두 개의 분과로 이뤄졌다. 지방사 관련 논의에는 이종욱 서강대 교수(사학), 신호철 충북대 교수(역사교육학과), 노명호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김용선 한림대 교수(사학), 박종기 국민대 교수(국사학과), 권연웅 경북대 교수(사학) 등 국내 학자들이 참여했다. 구해근 하와이대 교수, 김선주 하버드대 교수 등 해외 거주 학자들의 참여 또한 눈에 띄었다. 다양한 주제가 제시됐지만 이들의 관점은 지방의 관점에서 중앙의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것이었다. 잊혀진 지방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함이다. ‘조선 후기 경화사족과 지방양반의 교류’, ‘고려시대 중앙문화와 지방문화의 차별성’ 등 새로운 관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내년 초 출판으로 성과 확인

여성사 분야에서는 존 던컨 캘리포니아대 교수, 조옥라 서강대 교수(사회학), 최정무 캘리포니아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연구원,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고갑희 한신대 교수(영문학), 김성례 서강대 교수(종교학), 남화숙 미시건대 교수 등이 참여해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 냈다. ‘군가산점 문제와 젠더 정치’라는 최신의 이슈에서부터 ‘근대적 여성주체 형성과 한국사회의 근대성’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문제의식이 총망라됐다. 조옥라 교수는 “이런 자리는 본적이 없다”라며 “모두가 배우러 온 듯한 기분”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 자리에 있었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려면 잠시 기다려야 한다. 정두희 교수는 “내년 1월 말경에 수정된 논문을 받아 출간할 계획”임을 밝혔다. 원하는 학자들에 한해 수정논문을 받고, 이번 대회에 있었던 토론을 녹취록으로 만들어 발간할 계획이다. 단기간에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급하게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직 결론 나지 않은 발표들인 까닭에 연구자간의 교류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성과는 몇 달 후에야 확인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심포지엄 내내 학자의 표정이 마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들처럼 화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성과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