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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12>반복되는 임용비리
[연중기획-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12>반복되는 임용비리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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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에 울고 ‘내 사람’에 멍든 투명 公採
ㄱ대학의 김 아무개 교수는 신임교수임용 심사시 ‘개인적으로 아끼는 제자’와 ‘실력이 우수한 타교의 다른 후보자’ 가운데 후자를 선택했다. 타교의 후보자가 연구업적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제자에게도 떳떳하게 “섭섭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저 사람을 1순위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 교수, 대학원생 등으로부터 “자기가 자기 후배 안 키워주면 누가 키워주냐”는 비난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모교출신 임용과 자기사람 심기가 공공연한 교수채용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는 지금, 그러나 아직도 김 교수는 ‘한 명의 제자를 위해 길을 터 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수백, 수천명의 다른 제자들의 길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소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공간에 비해 인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구조적 불균형 속에서 결과적으로 ‘뽑는’ 입장인 대학 측은 ‘강자’가 됐고, ‘뽑히는’ 입장인 후보자 측은 ‘약자’ 가 돼 버렸다. 지금도 많은 교수 후보자들이 임용과정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지만, ‘타 대학 지원시 불이익을 받을까봐’ 감히 소리내어 항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반사며, 그나마 소송을 제기해도 이길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강희원 경희대 교수(법학과)는 “사립대의 경우 임용기준은 사적이며 내부적인 계약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 앞에서는 힘을 상실한다. 평가기준들 자체도 추상적이기 때문에 대체로 승소할 확률은 매우 낮다”라면서 “부당하게 교수임용에서 탈락했다고 호소해 오는 사람들이 많으나, 안타깝게도 현행법 하에서는 구제되기가 힘들다. 특히 임용이 끝난 경우 그 결과를 번복하기란 매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 기준이 구체적이지 못한 까닭에 임용비리는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금품요구’가 교수임용비리의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임용자 측에서도 ‘노하우’를 터득해, 공개적인 돈 요구가 아닌 ‘발전기금’이나 ‘도서기증’ 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ㅂ대의 경우, 직접 이 대학에 지원했다 탈락한 후보자의 입을 빌자면 ‘임용된 사람들 가운데 도서기증을 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교수임용비리의 실태를 파헤친 ‘한국의 대학교수시장’의 저자인 장정현 씨는 “요즘 불공정 임용 사례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는 사례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금품’ 관련 비리가 눈에 띠게 줄었다면, 내사람 선호경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학과 교수들이 담합해 모교출신 교수를 임용하기로 결정하는 경우, 겉으로는 아무 문제점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타대학 출신의 우수 후보자는 그야말로 ‘소리없이’ 배제된다. ㄱ대 ㅇ과의 경우 모교출신 후보자를 지지하는 교수 3명이 내정자에게는 96점을, 타교 출신자들에게는 0점(100점 만점)을 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을 정도이다.

일단 이런 유형의 임용비리가 발생하면 해당 지원자뿐 아니라 자신의 불안한 신분 때문에 해당 학과 교수들도 이를 이슈화하기 힘들다. 스스로 비슷한 임용비리에 관여한 적이 있거나, 자신이 비슷한 방식으로 임용된 경우에는 당연히 입을 다물게 되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내 자신의 일도 아닌데 다른 교수들과의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침묵하게 된다. 특히, 재계약 문제가 걸린 젊은 교수들의 경우 학교측에 맞서고 나서는 것이 더더욱 쉽지 않다.

‘교수공정임용을 위한 모임’의 회장으로 있는 이정민 서울대 교수(언어학과)는 “심사하는 입장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래서 이 자연스런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규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이런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경쟁력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자유경쟁의 풍토가 마련된다면 대학의 질이 훨씬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교수는 “대학 임용 비리야 늘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끊임없이 문제제기는 되고 있지만 현재도 과거와 크게 달라진 바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정한 교수 임용 풍토를 마련하는 일은 교수 자신의 위상이 걸린 문제이자 학문후속세대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교수가 ‘명예직’이 아닌 하나의 그렇고 그런 ‘직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지금, 쓴웃음이 아닌 웃음을 지을 수 있기 위해서는 사심을 버리고 ‘우수인재뽑기’에 힘을 다해야 할 때가 아닐까.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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