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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 … 국내 대학원 기피
열악한 환경 … 국내 대학원 기피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5.02.02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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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출신이 미국 유학가려는 이유

지방대 시간강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라는 글로 자신의 열악했던 대학원 생활을 고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방시는 현직 지방대 강사가 자신이 겪은 대학원의 부당한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한 글이다. 석사과정을 밟게 된 이 강사에게 대학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급 조교를 강요했다. 그리고 지급한 돈은 6개월간 300만원. 한달에 50만원 정도의 돈이다. 이 강사는 그마저도 한 학기 등록금인 450만원을 채우지 못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대학원생의 열악한 환경은 비단 지방대에 국한된 건 아니다. ‘SKY’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A씨도 지방시의 글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A씨는 “명문대 대학원이라고 해도 지방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며 “주변 대학원생들도 주말마다 과외를 뛰며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 학기 연구조교로 일하며 대학원 등록금을 빠듯하게 맞추고 있다. A씨는 평일은 연구실 조교생활로, 주말은 과외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는 대학원생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이하 청년위)가 조사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실이나 실험실에 소속된 전업 대학원생 2명중 1명은 경제적 처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위 조사에서 한 대학원생은 “용돈 수준의 30만원만 받아 생활이 어렵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교수에게 협박·폭언을 받거나 자잘한 심부름을 지시 받고, 월차는 물론 휴가도 거의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학문을 연구하는 지식인 집단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이 낮았다.

정작 연구에는 몰두할 시간 없이 바쁜 생활에 쫓기다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A씨는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마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환경이다보니 다시 해외에서 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열악한 상황에 국내 대학원보다 해외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대만 중국문화대에 박사과정을 수료한 한길로 씨(31세, 국문학)는 “해외 대학원 환경이 국내보다 훨씬 좋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한 씨는 “대만은 연구생으로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고 독립된 지위를 보장해 준다”라고 말했다.

등록금과 장학금에서도 국내 대학원과 차이가 컸다. 한 씨는 “대만 사립대의 한 학기 등록금은 200만원 정도다. 우리나라 사립대 등록금이 480만~500만원인 것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한 씨는 대만 대학에서 한 달에 1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대학원생에게도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었다.

정기은 씨(순천향대)의 석사논문「대학조교 직무만족도와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2012)」에 따르면 미국은 행정조교와 연구조교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뉴욕대는 조교에게 학비 감면과 함께 평균 1만5000달러(약 1천6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한다. 일본도 대학 사무직 조교에게 조교수에 약간 못 미치는 고정급여를 지급한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는 조교에게 교수의 3분의 1 수준의 보수를 준다. 독일은 최하급 조교에게도 150만~210만 수준의 월급을 지급한다. 등록금이 부족해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국내 대학원생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한 씨는 무엇보다 자기중심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것에 만족했다. 국내 대학원생은 제대로 된 장학금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학원강사나 과외 등의 아르바이트는 기본, 논문통과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교수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교수가 호출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5분 대기조’가 돼야 하는 게 현실이다.

A씨도 석사과정이 끝나는 대로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떠날 계획이다. 해외 박사학위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란 매력도 크다. A씨는 “미국은 박사과정 때 기본적으로 생활에 지장이 없고, 교수에 얽매이는 한국보단 자유로운 편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원생에 대해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까 고생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A씨는 박사학위를 마친 뒤 일자리가 생긴다면 미국에 계속 머물 생각이다.

대학원생들이 해외 대학으로 나가려는 현상은 교수임용에서 외국박사를 선호하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대학원생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합리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떠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할 것이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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