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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속학의 과제는 ‘포클로리즘’의 실천 현장에 있다”
“현대 민속학의 과제는 ‘포클로리즘’의 실천 현장에 있다”
  • 남근우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민속학
  • 승인 2015.01.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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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한국민속학 재고: 본질주의와 복원주의를 넘어서』 남근우 지음|민속원|360쪽|27,000원


오늘의 비본질주의 민속학이 지향할 바는 기왕의 체제지향적인 실천이 아니라 생활현장의 다성적인 주체들이며, 그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미시적 현장성에 대한 응시와 비판적 이해다.

무릇 새로운 전망이란 철저한 성찰의 바탕 위에 싹트게 마련이다. 방법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민속학 연구를 되짚어본 까닭도 이와 관련한다. 종래의 패러다임이 독사(doxa)로 기능하며 우리의 비판적 인식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왕의 그 인식론적 틀거리는 오늘의 탈근대적 사회 상황을 포착하고 현재의 다종다양한 생활 주체들을 이해하는 데도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이 책에서는 한국민속학의 재고 작업을 표리의 두 차원에서 시도해 봤다. 인식론과 실천론의 차원으로 부제에 보이는 본질주의가 전자, 그리고 복원주의가 후자에 해당한다.


주지하다시피 본질주의는 어떤 카테고리나 事象에 공통의 변하지 않는 특질이 존재한다고 보는 사고나 관점을 말한다. 한국민속학의 경우 그 불변의 특질을 주로 농어촌의 민속 사상에서 추구해 왔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즉, 민속은 한 민족의 기층문화로 그 겉모양은 변해도 고갱이는 잘 변하지 않는다. 이 기층의 고유한 민속이 근대화의 여파로 인멸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을 구제해 민족문화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탐구하는 게 민속학의 목적이자 사명이다.


이러한 문화 본질주의에 기초한 구제 민속학이 우리의 연구 실천을 줄곧 긴박한바, 한국민속학이 방법론의 폐색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 기층적 민족문화 담론을 불식하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 이 책에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일본민속학의 오독 과정을 거친 나치즘 민속학의 기층문화론에, 해방 후 손진태가 내세운 ‘민족문화학’ 곧 신민족주의 민속학의 수사가 결합해 고착된 것으로, 경험과학적으로 실증될 수 없는 동어반복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족문화의 본질이나 정체성은 민속의 심층이나 저편 어딘가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뜻을 갖고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성물을 민속의 원형 탐구를 통해 포착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허구적 진실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져 어떻게 유용되고 소비되는지, 아울러 그 배후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게 한국민속학의 정치권력성을 해체하고 탈근대의 민속학을 새롭게 전망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민속의 조사 연구 방법과 관련해 ‘민중의 입장과 처지에서’라는 한국민속학의 오래된 슬로건 역시 재고가 필요하다. 그 내관적 방법의 지향은 결국 민중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권리나 주체성을 부인하는 힘의 행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일견 민중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기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그 본질화한 슬로건을 앞세운 우리의 연구 실천에 의해 줄곧 ‘목소리’를 빼앗긴 게 다름 아닌 현지의 민중들이었다. 도농의 민중들은 지금까지 민속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해 온 연구자들을 위해, 앞으로도 그저 이야기의 소재만을 묵묵히 제공해야 하는 無聲의 인포먼트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그 多聲的 주체들은 본디 예전의 마을공동체 관행을 무의식적으로 전승하는 ‘민속의 보유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종래의 본질주의에 터 잡은 과거 지향의 민속조사 관행을 멈추고 지역사회의 ‘현재’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경험할 수 있듯이, 그들은 우리와 함께 소비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생활자로서 필요에 따라 민속이란 것을 의식하고 그 의미를 재해석, 재구성하는 존재다. 또한 그들은 때때로 스스로의 문화적 실천을 조작과 연출이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해 자신의 실존적 삶의 영위를 위해 재맥락화 하는 주체이며, 그 과정에서 민속학적 성과나 지배적 담론이 공급하는 이미지조차도 자신의 생활 전략과 목표에 맞춰 활용하는 브리꼴레르이기도 하다. 현대 민속학이 추구해야 할 긴요한 과제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민속문화의 객체화와 전용, 곧 포클로리즘(folklorism)의 실천 현장이 아닐 수 없겠다.


다음, 후자의 복원주의는 민속의 본디 모습을 사회적으로 되살려내려는 민속학의 의지와 민속학자의 욕망을 말한다. 한국민속학이 지향한 이 원형에의 의지와 욕망은 가령 민속의 문화재화와 같은 사회적 실천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곧 로컬 민속을 구제, 발굴해 민속예술경연대회 등의 여과장치를 거쳐 국가 공인의 내셔널한 문화재로 지정하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인멸의 위기를 극복한 로컬 민속이 민족문화의 원형적 표상으로 거듭나거니와,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민속의 문화재화를 주도해온 게 한국의 복원주의 민속학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속학이란 학문이 체제화하고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체제화란 민속의 가치가 그것을 생활로 영위해온 민중 주체로부터 분리돼 체제 권력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과 관련한다. 그러한 국면에서 민속의 가치 결정에 민속학자가 개입해 특정한 민속을 체제 권력에 제공하는 작업에 복무하는 것, 그게 곧 민속학의 체제화다. 알기 쉽게 1970~80년대의 새마을운동 과정을 떠올리며 민속학에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자. 곧 한편에선 생활의 민속을 미신으로 몰아 소탕에 나서고, 다른 한편에선 그중 일부를 문화재로 만들어 동결보존하려 드는 모순적 상황에서, 과연 민속학은 농어촌 민중의 처지에서 당절의 지역개발 행정이나 문화재 정책에 정면으로 대치한 적이 있었는가. 오히려 ‘소멸의 이야기’를 명분으로 민속을 주체로부터 떼어내어 민족문화의 본질 탐구를 위한 민속자료로 수단화함으로써, 그것이 생활 현장에서 가지는 현실적 의미와 생동하는 동태를 결국 형해화 하고 박제화 하지는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의 원형 구성에 대한 담론적 권위를 앞세워 민속의 가치 결정을 주도해온 것은 아닌가. 결과적으로, 본디 다양하고 평등한 로컬 민속을 표준화하고 위계화해 그중의 특정한 민속을 가치 있는 문화‘재’로 물상화한 게 바로 본질주의 구제 민속학이 아니던가.


한국민속학의 체제화는 9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나온 지역축제에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최근 열기를 더하는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심화되고 있어 문제다. 지난 세기 원형 담론을 앞세워 민속의 문화재화에 복무한 한국민속학이 이번에는 그 글로벌한 권위부여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추수하며, 로컬의 내셔널한 무형문화재를 ‘인류무형유산’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反/非 본질주의 민속학이 지향할 바는 민속의 구제 보존론이나 관변 축제화, 문화유산화 등과 같은 기왕의 체제지향적인 실천이 아니라 생활 현장의 중층적이고도 다성적인 주체들이며, 그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미시적 현장성에 대한 응시와 비판적 이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실천적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종래의 주체 없는 민속 연구에서 이 생활 주체들의 일상 연구로 민속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게 실생활에 무용한 민속학의 존립 근거를 새롭게 마련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근우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민속학
필자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속학의 방법론 탐구와 함께 민속의 문화재화와 관광자원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민속학’과 식민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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