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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다움’의 고양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
’ ‘인간다움’의 고양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
  • 정리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1.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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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1강, 이승환 고려대 교수의 ‘동양 고전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서언


‘인문’ 즉 ‘인간의 무늬’가 얼마나 깊이 있게 인간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고 인간다움을 고양할 것인가는 인간 스스로의 책임에 달려 있다. 이러한 책임감의 통찰을 위해 연구자들은 다시금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문학의 기초로 회귀해야 한다.


▲ 지난 시즌1에서 4회차 강연을 진행하던 이승환 교수. 자료·사진= 네이버문화재단.


‘문화의 안과 밖’ 시즌 2는 ‘고전읽기’다. 모두 7개 강연이 배치된 ‘Ⅰ.개론’ 편 첫 강연은 이승환 고려대 교수의 ‘동양의 고전: 동양 고전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서언’이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안국빌딩 신관 4층 W스테이지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주광호 동덕여대 교수의 지정토론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 교수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 철학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하와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동양철학회 회장과 고려대 철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횡설수설』(2012), 『동양철학의 세계』(2005), 『유교 담론의 지형학』(2004) 등이 있고, 제39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연 제목 그대로 ‘동양 고전 이해를 방법론적 서언’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이날 고전읽기 1강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리말에서 ‘고전’이란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자료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까지 중국의 고전 도서가 몇 권이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으나, 중국 최초의 도서 분류체계인 漢代의 七略, 4분법을 채용해 중국 목록학의 전범으로 기능한 唐代의 『수서』 「경적지」, 4분법적 도서 분류체계를 완성한 淸代의 『사고전서』 등 각기 만들어진 도서 목록을 통해 그 종류와 규모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고증’과 ‘의리’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각기 청·송대에 성행했던 대표적인 학술 사조를 일컫는다. 하지만 ‘고증’과 ‘의리’를 역사상 특정 시기에 존재했던 과거의 학술 사조로만 보지 않고 현재에도 통용되고 있는 고전 해석 방법론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전통 시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 두 가지 방법적 태도가 서로 갈등 관계 혹은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방법적 태도가 결국은 한 연구자의 이해 체계 안에서 조화롭게 ‘해석학적 융합’을 이뤄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경전 문자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훈고’와 ‘고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훈고’와 ‘고증’을 거쳐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의리’다. 문자가 지닌 원래의 뜻을 하나하나 밝혀내려는 ‘고증’의 작업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의리’의 차원으로 연결돼야 하며, 지금 여기에서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리’의 작업은 과거의 문법과 맥락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고증에서 시작해 마지막으로 철학적 의의를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해석의 제1단계: 고증학적 이해(philological understanding) ▷해석의 제2단계: 텍스트의 이해(textual understanding) ▷해석의 제3단계: 맥락적 이해(contextual understanding) ▷ 해석의 제4단계: 평가적 이해(evaluative understanding) ▷해석의 제5단계: 해석학적 이해(hermeneutical understanding)


고전에 대한 이해는 위에서 밝힌 ‘해석의 다섯 단계’를 거쳐 비로소 완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 우리의 고전 이해 태도는 어떠한가. 한국의 동양철학 연구는 대개가 제2단계인 ‘텍스트 이해’와 제4단계인 ‘평가적 이해’에 치중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고증’과 ‘맥락’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현재적 의의’도 제대로 논하지 못하면서, 말로만 ‘전통적 방법’을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증’의 방법은 ‘의리’의 방법과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고증인가 의리인가”라는 選言 명제는 “고증과 의리의 융합”이라는 連言 명제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한 분야의 문화적 활동이 얼마나 격조 있고 깊이 있게 ‘인간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 활동에 깃든 인문 정신의 층차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철학사가 탕쥔이(唐君毅, 1909~1978)는 동양의 각종 학문과 사상이 드러내는 인문 정신의 층차를 人文, 非人文, 次人文, 超人文, 反人文의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비인문 사상’은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존재 세계를 대상으로 성립한 학문 체계를 말하며, 주로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학문의 영역이 이에 속한다. ‘초인문 사상’은 인간의 경험을 넘어선 초자연 세계를 대상으로 삼는 학문의 체계를 말하며, 神人·神仙·上帝·神靈·佛性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 이에 속한다. ‘차인문 사상’은 인간 자신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탐구의 대상으로 하되, 궁극적으로 ‘인간다움’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사상 체계를 말한다. 그리고 ‘반인문 사상’은 인간 자신에 대한 물음을 소홀히 하거나, 나아가서는 인간의 존재의의와 가치를 곡해하거나 폄하하는 사상 체계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인문 사상’은 人性·人道·人格·人倫 등과 같은 인간 자신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대상으로 하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긍정하고 고양하려는 학문 체계를 말한다.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인문 정신’의 고양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학문으로 유학을 든다. 공자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이 혼탁한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성취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있었다. 묵자의 사상은 ‘인문’ 사상이라기보다 ‘차인문’ 사상으로 분류된다. 맹자는 묵자에 대해 비판적이다. 맹자의 사상은 묵자류의 ‘이익 계산’보다는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가치의 자각심’과 ‘근원적 도덕 감정’에 입각해 있다. 노자의 사상은 ‘비인문적 인문 사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혼란한 시대상이 인간들(특히 지배 계층)의 사사로운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파악했다. 장자의 사상 역시 노자와 비슷하게 ‘비인문적 인문 사상’의 특징을 보이며, 나아가서는 ‘초인문적 인문 사상’의 색채를 띤다. 탕쥔이는 동양의 학문 유파 가운데 法家를 ‘반인문 사상’으로 지목한다.


동양의 지적 전통을 관류하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재의의를 드러내고 인간을 한 차원 높은 존재로 고양시키려는 줄기찬 노력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사적 지향을 ‘인문 정신’이라고 부른다. 유학의 인문 정신은 문·사·철 등 인문학뿐 아니라 정치학·경제학·법학·의학·과학·군사학·천문학 등의 영역에서도 학문의 기본 밑그림(foundational blueprint)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존재 의의를 긍정하고 인간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향상시키려는 人文化成의 정신이 동양 문명의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동양의 인문 정신은 근대 이전까지 모든 학문과 사회생활의 지도 원리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헤게모니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헤게모니는 근대 이전의 역사 속에서 양날의 칼로 기능해 왔다.

유학은 한편으로는 사대부-독서인 계층의 民에 대한 지배 이념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왕권을 견제해 정치권력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인문’ 즉 ‘인간의 무늬’가 얼마나 격조 있고 깊이 있게 인간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고 인간다움을 고양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인간 스스로의 책임에 달려 있다. 이러한 책임감의 통찰을 위해 분과 학문의 연구자들은 다시금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문학의 기초 문제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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