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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란 무엇인가
미메시스란 무엇인가
  • 최성만 서평위원/이화여대·독문학
  • 승인 2015.01.27 10: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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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최성만 서평위원/이화여대·독문학

▲ 최성만 서평위원
‘미메시스(Mimesis)’는 문학과 예술의 창작활동에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사유의 중요한 매체와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래 동사형인 미메스타이(mimesthai)는‘모방하기’,‘ 재현하기’또는‘초상을 그리기’를 뜻했다. 플라톤의 저작에서 ‘미메시스’는 모방·재현·표현의 의미 외에 현상이나 가상을 만들어내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플라톤이 미메시스가 인간의 입장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주의를 기울인 점이다. 즉 그는 미메시스가 잠재적으로 그야말로 전염병처럼 번지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미메시스는 그만큼 위험한 일로 여겨져 말하자면 이론적 검역을 받게 된다.

『국가론』제 3장에서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지키는 훌륭한 성품을 가진 용사들을 길러내는 데서 문학과 예술을 통한 순화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좋은 음악, 훌륭한 행위의 미메시스를 권장한다. 그러나 제 10장에서는 다시 자신의 이데아론에 입각해 예술가나 시인의 미메시스를 비판한다. 현상세계가 진리인 이데아의 세계에 참여하고 있는 동시에 그것의 잔영에 불과하다면, 예술가나 시인이 이 현상세계를 보고 만들어 내는 상은 이중으로 진리에서 멀어진‘허상’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만들어 내는 가상의 세계를 철학적 진리의 세계와 직접 대결시킴으로써 미메시스의 해악을 지적하면서 시인을 이상국가에서 추방하는 플라톤은 특히 호메로스와 비극작가들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 찬가와 같은 장르는 유용한 미메시스로서 환영한다.

그 뒤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미메시스를 구제하는데, 특히 비극을‘행동의 미메시스’로 규정한다. “인간은 모방하는 데 각별한 능력이 있고 최초의 지식들을 모방하기를 통해 습득한다는 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누구나 모방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점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철학적 진리를 미메시스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은 이미 자명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미메시스의 복권은 그것을 시문학과 예술의 영역에 국한하는 대가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마련된 미메시스의 개념사적 전통은‘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공식으로 전승돼 18세기까지 시학과 미학에서 논의되지만, 그것으로 미메시스의 의미를 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두 철학자 이전에 미메시스라는 말이 쓰인 전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메시스를 선사시대의 인간들이나 오늘날에도 관찰할 수 있는 비문명화된 토착민들의 태도를 특징짓는 말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개체발생적으로 볼 때 어린이의 태도와 행동, 특히 놀이에서 모방적 요소가 두드러져 나타나듯 계통발생적으로도 원시시대의 인간들에게 미메시스적 태도가 중요했으리라는 것은 실제로 많은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 다 . 동물의 세계에서도 ‘擬態(mimicry)’,‘ 보호색’에서 미메시스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제스처나 얼굴 표정술을 뜻하는 미믹(독어: Mimik), 무언극 따위의 배우나 광대를 지칭하는 마임(mime)이라는 말도 미메시스와 어원적으로 근친관계에 있다.

어쨌든 미메시스는 서구 철학에서 많은 부분 재현의 논리로 편향돼 이해·논의돼왔고 여기서 많은 혼란이 빚어졌다. 그러나 미메시스는 재현되는 것(재현 대상)과 재현하는 것 사이의 정태적 관계를 지칭하기보다, 오히려 미메시스적 활동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도르노는 자연과 인간의 지배를 목표로 한 목적합리성(도구적 이성)으로 일면적으로 발전해온 계몽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그 비판적 심급으로 미메시스적 합리성을 부각시키며, 인식론의 중심 개념으로까지 사용한다.

그는 대상의 파악을 목표로 하는 동일성사유와 달리 대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특징으로 하는‘미메시스적 충동’과 태도를 강조한다. 전자가 인식의 주체가 만들어 놓은 개념의 그물망에 대상을 포획하는 행위로서 대상에 주체의 자의와 폭력을 가한다는 의미가 불가피하게 들어 있다면, 후자는 바로 이 동일성사유가 왜곡하거나 빠뜨릴지 모를 요소,‘ 비동일적인 것’,‘ 비개념적인 것’에 합당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술과 문학이 특히 그러한 잠재력을 표현해왔다. 그가 주체에 대한‘객체의 우위’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미메시스는 20세기에 들어 미학이나 예술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인류학, 교육학에서도 하나의 ‘인간 조건’으로 재발견돼 활발히 연구돼 왔으며, 과거에 이뤄진 개별과학적 연구의 성과들도 새롭게 조명, 해석되고 있다. 미메시스적인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학자들 이외에도 묵시적으로 다룬 학자들이 많이 있다. 이때 미메시스는 비생산적인 모방이 아니라 대상을 전유하고 극복하는 창조적 활동과 경험의 의미를 띤다.


최성만 서평위원/이화여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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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숙 2019-03-17 01:10:09
그럼 미메시스는 일종의 은유와 같다고 표현 할 수 있을까요?

ㅇㅅㅇ 2015-11-08 15:54:14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