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에 나타난 이공계 대학원생의 현실 인식은 과학계에 정확하게 반영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문제의식 때문에도 그렇지만, ‘개선’의 상당 부분이 대학원생과 관련된 ‘교수’사회의 ‘관행’ 문제였기 때문이다. △연구 활동 △연구비와 인건비 문제 △대학원내 회계 관련 및 논문·연구결과 관련 비리 사례 △지도교수와의 관계 △대학원의 연구 질 개선 △국내 대학원 기피 해결 등 주요 설문에 나타난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의식 지도’를 들여다본다.
산더미 연구외 업무로 녹초
첫째, 대학원생들은 연구활동 외의 업무가 많아 연구에 지장이 많다.
‘연구외적 업무 중 업무량이 가장 많은 것을 골라 달라’는 설문에 이들 대학원생들 36%(153명)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부수적 관리 업무(영수증 정리, 공문 등 서류처리, 회계정산 관리 등)’를 꼽았다. 18%(76명)는 ‘연구시설 및 장비와 관련된 기능적 업무’를 지적했다.
이러한 연구 외 업무 때문에 이들은 연구활동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76%(326명)이 ‘방해된다’고 대답했다. 단지 22%(94명)만이 ‘지장을 주지 않거나,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연구개발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대학내 연구개발 지원조직 문제와 관련된다. 응답자의 58%(247명)가 ‘행정·기술적 지원이 있으나 효과가 미미해 대학원생의 연구외 업무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눈여겨 볼 대목은 ‘행정·기술적 지원이 전무하며 관련 업무가 전적으로 대학원생에게 부과된다’고 밝힌 응답자도 23%(1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연구비 중 인건비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학원생들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설문결과를 보면, ‘인건비를 받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이들은 19%(82명)나 됐다. 프로젝트에 책정된 인건비를 받고 있다는 응답은 21%(93명). 책정된 인건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23%, 99명), 심지어 교수가 관리하므로 얼마나 받도록 돼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응답자(27%, 114명)도 있었다.
BK21, ‘별 도움 안됐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이들은 BK21과 같은 사업에 대해서도 ‘유쾌’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BK21과 같은 사업에 대해 32%(138명)가 ‘취지는 좋으나 생활안정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대답했으며, 다른 32%(136명)는 ‘관련 혜택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응답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앞섰다.
셋째, 대학원 연구실이 다양한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연구실에서 겪는 비리 사례로는 ‘인건비 전용’(48%), ‘연구책임자의 사적인 용도로 연구비 전용’(12%), ‘관련업체와의 조직적인 연구비 나눠먹기-가짜 영수증, 카드깡’(11%), ‘연구결과 중복 보고-기존결과를 다른 과제에 보고해 이중으로 연구비를 타는 경우’(5%), ‘교내외 장학금, 조교 수당 등의 전용’(2%) 순이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다’는 응답도 19%(80명)나 됐다.
‘논문·연구 결과와 관련, 자주 겪는 비리 사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의 39%(164명)가 ‘업적 관리상의 문제-관련 없는 논문에 이름 넣기, 일한 사람 이름 누락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과제 획득, 연구성과, 마감일 등의 이유로 허위 과대 결과 보고하기’(14%), ‘논문 표절, 짜깁기’(5%)도 자주 겪는 비리 사례였다.
넷째, 전근대적 대학원 문화 개선과 생활고 해결과 처우 개선 시급하다.
특히 대학원생에 대한 인식과 관련,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으로 34%(145명)가 ‘도제식 교수-학생 관계(스승과 제자 이상의 종속관계-학문종속, 공사 구분 악화 등)’를 지적했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강요(의료보험, 국민연금, 휴가불인정 등 지위 불만)’(18%), ‘밤샘이나 야간 근무 등 과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15%) 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대학원생 학비 생활비 지원 현실화 시급
그렇다면, 대학원의 연구 질 개선에는 무엇이 가장 큰 도움이 될까.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38%(161명)가 ‘대학원생의 학비, 생활비 지원’을 연구 질 개선책으로 가장 많이 내세웠다. 이어 ‘대학원 행정, 기능직 지원 인프라 확충 및 개선’(15%), ‘도제적, 군대식 상명하복 연구실 문화 혁신’(13%), ‘대학원 비리 발본 색원’(11%), ‘객관적 교수 평가’(8%), ‘SCI위주의 연구 성과 평가방법 개선’(6%)도 언급됐다.
국내 대학원 기피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이들 가운데 46%(194명)가 ‘정부에서 국내 학위 소지 과학기술인(공무원, 정출연 채용시) 우대’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이어 ‘전문연구요원 제도 기단단축등 개선’(15%), ‘대학원생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지원 인프라 정비’(13%), ‘대학원생의 생활고 해결’(12%) 등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절반 정도(48%)가 자신의 지도교수는 비리와는 무관한 선량한 교수라고 응답한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