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10 (금)
“茶山學은 조선후기 주자학 갱신하려는 ‘포스트주자학’”
“茶山學은 조선후기 주자학 갱신하려는 ‘포스트주자학’”
  • 김 호 경인교대·조선시대사
  • 승인 2015.01.21 1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_ 『다산의 사서학: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차이전펑 지음|김중섭·김호 옮김|너머북스|511쪽|28,000원

▲ 다산 정약용

자신의 저술이 아닌 타인의 책을 소개하자니 주저하게 된다. 혹여 저자의 뜻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요, 아울러 외국학계의 연구가 한국의 연구 상황이나 문제의식과 다른 맥락에서 생산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이전펑 교수의 책을 한국에 알리고자 했던 사람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갖고 있기에 이 글을 쓰게 됐다.


먼저 經學이나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역사학자가 차이전펑 교수의 책을 번역 소개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역자는 ‘동아시아의 관점’을 강조한 저자의 취지와 연구 방법론에 깊이 동감했다. 최근에 이르러 ‘동아시아 담론’을 강조하고 있는 한국학계에 충분히 자극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저자를 포함해 대만의 학자들은 중국 사상사에 머물지 않고 일본 에도시대의 사상에 대해 깊이 연구해 왔으며, 이를 토대로 조선시대로 관심사를 확장했다. 四書를 중심으로 한 다산의 경학 주석도 중국의 명·청대 그리고 일본 에도시대의 학자들과 비교 검토함으로써 다산 사서학의 지위를 동아시아의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에도 고학파에 대한 깊은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다산 경학에 끼친 에도학자들의 영향을 제한적으로 서술한다. 주지하는 바대로 에도 고학파의 反주자학 경향은 매우 뚜렷하다. 이러한 고학파의 주석을 인용한 다산의 경학도 반주자학의 특징을 공유한 것으로 설명해왔다. 그런데 저자는, 다산이 비록 주자학의 ‘理氣’ 구도를 일정하게 비판했지만 기본적으로 ‘人心, 道心’의 이분법을 지지했으며 주자학의 기본 텍스트인 四書를 강조하는 등 단순한 반주자학이나 氣學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리어 포스트주자학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봤다.

명·청대와 에도시대 학자들과 다산 비교 검토
사실, 에도 고학파의 학풍을 반주자학이나 기학으로 강조한 배경에는 20세기 전반 일본학계의 근대주의 혹은 민족주의 연구동향이 자리하고 있다. 주희가 한·당 및 북송 유학을 집대성한 이후 동아시아 유학자들에게 주자학은 피할 수 없는 전범이 됐다. 그런데 이러한 동아시아 전근대 사상의 핵심인 주자학을 일본 고학자들이 비판 극복함으로써 근대로의 자발적 이행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는 마루아먀 마사오(丸山眞男)를 비롯한 20세기의 일본 사상사 연구자들의 기본적인 주장이다. 최근에 와타나베 히로시(渡???浩)와 같은 학자는 이러한 학문 경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사실상 에도시대에 주자학[宋學]의 토착화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에도시대의 체제교학으로 보고 이를 극복한 고학의 근대성을 강조하는 일본 사상사학계의 연구 동향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이제 역자가 이 책을 소개하는 두 번째 이유를 언급할 때가 됐다. 해방 이후 한국학계는 일제가 남겨놓은 식민주의 역사학을 극복하는 데 매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상 등 전 분야에 걸쳐 조선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이 강조됐다. 사상사 분야에서 ‘實學’은 反주자학 혹은 脫주자학으로 설명됐고 근대의 가능성을 담지한 학문론으로 규정됐다. 전근대 조선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던 주자학이 생명을 다하고 비로소 근대학문의 맹아인 실학이 대두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단순하게 정리한 면이 없지 않지만 실학론은 한국의 근대민족주의 역사학의 담론 속에서 배태됐으며, 실학론의 한 가운데 다산 정약용의 학문이 위치하고 있었다. 다산을 비롯한 일군의 실학자들로부터 무언가 근대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발견하려는 욕망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산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학문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들이 조선 주자학 전통의 磁場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음이 확인됐다. 급기야 ‘실학자들은 생각보다 근대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았다’는 주장마저 나타났다. 여전히 실학을 둘러싼 조선후기의 사상사 연구는 서구 근대를 기준으로 한 이분법의 틀 안에 놓인 셈이다. 주자학에 어느 정도 망국의 책임을 지우고 이로부터 벗어남으로써 근대의 가능성을 확인하려 하거나, 반대로 실학은 근대와 무관한 체제 학문에 불과하다는 비관적 전망 모두 조선후기 사상계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서구 근대의 잣대로 단순하게 처리했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차이전펑 교수는 다산의 학문을 포스트 주자학으로 정의한다. 그는 다산의 학문을 단지 주자학의 끄트머리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도리어 중국에서 시작해 조선과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주자학의 이른바 근대로의 전환을 내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 저자는 다산이 맹자의 심성론을 이어받으면서도 善의 자연적인 발출보다는 오랜 도덕적 실천[行事]을 강조했으며, 주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상호 주체성을 강조함으로써 ‘변화하는 시대’의 질서 유지를 위한 철학적 기초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조선후기 사회가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 주체적으로 대응했는지, 저자는 다산의 학문을 통해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산 학문에 미친 천주교 영향 과대평가됐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산의 학문에 끼친 西敎(천주교)의 영향을 그동안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한다. 천주교의 영향을 강조한 기왕의 연구 또한 근대적 요소를 찾으려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17세기 명·청의 교체와 더불어 조선에 서학(서교)이 전해짐으로써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華夷論적 세계 질서가 균열됐다고 보는 것이다. 서학(서교)은 단순히 ‘서양’을 의미하지 않았다. 서학(서교)은 기왕의 조공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근대의 중요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상당수의 학자들이 서학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특히 남인들은 더욱 매료됐다. 다산 또한 젊은 나이에 천주교를 받아들인 적이 있으므로 그의 저술에서 나타난 ‘天’이나 ‘上帝’ 개념을 천주교의 영향 때문으로 보는 견해는 자연스러웠다. 새로운 학문의 요소로 서학(서교)이 강조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의 본성과 마음[心] 그리고 영혼 불멸에 대한 마테오 리치의 주장과 다산의 주장을 語義의 차원은 물론 철학적으로 꼼꼼히 분석함으로써 다산의 학문이 洙泗學에 가까울 뿐 천주교와는 차이가 있음을 증명했다. 이로써 다산의 학문에 끼친 서학의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한 기왕의 연구를 교정한 것이다.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한 이유를 쓰다보니, 도리어 책의 진짜 중요한 내용을 누락한 게 아닌가 걱정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한 가지 꼽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저자는 다산학을 심성론과 文質論의 양대 이론 축으로 설명했다. 그는 다산의 ‘성기호설’이야말로 인간 모두가 ‘善을 향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가능성을 존중했으며, 나아가 문질론의 핵심인 교육론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높이 샀을 뿐 아니라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좋은 바탕이라도 노력 없이는 훼손될 수 있으며, 부족한 바탕이라도 교육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다산의 주장이야말로 조선후기의 주자학을 새롭게 갱신하려는 포스트주자학으로서의 다산학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 보고 싶다. 역자의 부족한 설명 대신에 저자의 원의를 맛보는 一讀을 권한다.


 


김 호 경인교대·조선시대사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및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신주무원록』,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