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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동향 : 그리드, 차세대 네트워크의 가능성
과학계 동향 : 그리드, 차세대 네트워크의 가능성
  • 교수신문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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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14:54:55
최근 월드와이드웹을 대신할 차세대 네트워크의 핵심 개념으로 ‘그리드’(Grid)가 부각되고 있다. 그리드 또는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이라는 이 낯설기만한 용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전파를 분석, 외계인이 만든 신호를 찾는 과정에 대한 영화 ‘컨택트’(Contact)를 예로 든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SETI@Home(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at home)이란 이름으로 현재 진행중이다. 외계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찾고자 하는 목적 말고도, 이 프로젝트는 정보통신기술과 관련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자료처리 방식이 혁신적인 컴퓨터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외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데이터들을 해독해 외계인으로부터의 신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슈퍼컴퓨터 급의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1억 달러가 넘는 슈퍼컴퓨터를 구입할 여력이 없는 SETI@Home 프로젝트팀은, 전 세계에 4억대가 넘는 개인용 컴퓨터의 사용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에 착안, 이를 실행에 옮겼다.

거대 과학기술과제의 해결을 위한 그리드

이들은 컴퓨터가 쉬는 시간동안 작동하는 화면보호기에 외계 전파신호를 해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기능을 탑재해 배포하고 있다. 2002년 10월 현재 전 세계 4백만 여명의 개인 컴퓨터 이용자들이 이 화면보호기를 다운 받아, 컴퓨터를 활용하지 않는 시간 동안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프로젝트팀에게 ‘기부’하고 있다.

이러한 SETI@Home의 사례는 그리드 컴퓨팅의 초기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즉,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의 데이터 파일은 물론, 나아가 컴퓨터가 지닌 연산능력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바로 그리드인 것이다.

원래 ‘그리드’는 전력이나 가스, 수도 등에서 배관망의 뜻으로 쓰인다. 물론 정보기술분야의 그리드를 통해 흐르는 것은 전력이나 물이 아닌 ‘컴퓨터 자원’이다. 공유할 수 있는 컴퓨터 ‘자원’이 지금보다 확대된 새로운 네트워크 개념이 바로 그리드인 것이다.

기존의 월드와이드웹을 통한 인터넷에서는 서버에 정보가 집중돼 있고, 컴퓨터 사이의 공유가능한 자원은 ‘http://’로 시작하는 주소로 찾을 수 있는, 서로 연결된 하이퍼텍스트 자료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드 기술을 통한 네트워크는 월드와이드웹을 통한 인터넷에서 제공하지 못했던 컴퓨터간의 ‘협력적인 작업’ 기능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정보기술들이 그러하듯 아이디어 차원에서의 그리드는 결코 새롭지만은 않은 개념이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방식에서나 기업 내 컴퓨터의 연결을 통해, 개별 컴퓨터들이 모여 하나의 큰 컴퓨터와 같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의 그리드는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순한 계산기능의 분산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새롭지 않은 개념

현재 이러한 그리드 컴퓨팅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부문은 단연 과학기술부문, 특히 학계이다. 앞서 살펴본 세티 프로젝트팀 이외에도 이러한 분산 컴퓨팅을 실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다. 한편,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노스웨스트 국립연구소에 있는 리눅스 기반 슈퍼컴퓨터와 여타 관련된 네 곳의 국립연구소들을 연결시킨, 본격적인 그리드가 작년에 구축됐다. 항공우주분야, 인간게놈지도 작성 분야 등에서 그리드를 활용하고 있는 미국 외에도 EU, 일본, 러시아 등에서도 원자력, 고에너지 물리학, 분자생물학, 약학, 화학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이나 대규모 연산을 동반하는 연구를 위해 정부출연연구소나 대학간의 고성능 컴퓨터를 연결하는 그리드의 구축을 시작했다.

이제 그리드는 거대 과학기술과제의 해결에 필수적인 미래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슈퍼컴퓨터 등의 고성능 컴퓨터들을 연결함으로써 연구의 실행가능성과 효율성을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목적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의 만남

과학 부문뿐만이 아니라 기업 비즈니스 부문에도 그리드가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IBM,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패커드 등의 세계적 IT기업들과 캐나다의 플랫폼컴퓨팅 사 등에서 상업화된 그리드 기술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IBM은 시장주도자로서, 개방형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하드웨어 및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와 같이 사적으로 독점된 소프트웨어의 반대편에 서있는,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인 리눅스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온 IBM과 함께,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휴렛패커드 등 리눅스에 호의적인 기업들이 그리드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1998년 이후 선진국에서 시작된 그리드 관련 기술 개발에 비해 약간 늦었지만, 국내에서도 2001년 5월, 정보통신부에서 ‘국가 그리드 기본계획’을 발표해, 5년간 4백35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상당히 추진된, 연구기관 간의 그리드 망을 구축하기 위한 것. 슈퍼컴퓨터 수준에서 컴퓨터 자원을 공유하기 위한 계획이다. 오는 22일부터 이틀간, 그간의 연구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국가 그리드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2002년 그리드 고성능 네트워킹 심포지엄’을 연다.

한편으로 정보통신부는 앞서 살펴본 세티 프로젝트와 유사한 ‘Korea@Home’ 프로젝트에 2006년까지 향후 5년간 1백77억원을 들이기로 했다. 인터넷 이용자 2천5백만 명 시대에 상당한 컴퓨터 유휴 자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 또한 IT, BT, NT 등 거대 과학기술 연구의 지원을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리드가 월드와이드웹을 금방 대체할 것이라는 것은 성급한 기대다. 향후 몇 년간은 상당한 용량의 컴퓨팅 능력을 요구하는 기초 및 응용과학 부문부터 그리드는 활성화될 것이다. 그 후에도 그리드는 월드와이드웹과 몇 년간은 공존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하더라도 월드와이드웹에 기반한 인터넷이 학문활동과 일상생활에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를 고려해본다면, 전문가들이 장기적인 변화로 예측하고 있는 차세대 인터넷으로서의 그리드의 가능성과 그 파장에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성우 객원기자 swah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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