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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체제가 대안"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체제가 대안"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1.19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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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50회차 강연_ 이삼성 한림대 교수의 '동아시아의 질서와 평화'

‘문화의 안과 밖’시즌1 50회차 강연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10일 진행된 50회차 강연은 이삼성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과)의‘동아시아의 질서와 평화.’공적 영역의 위기를 주제로 한 탐구로부터 시작한‘문화의 안과 밖’강연은 이후 공적 영역의 구성, 문화예술과 현실, 시대와 새로운 과학, 자연·물질·인간, 역사와 전통, 근대성의 검토, 시대의 여러 문제로 이어졌다. 이 교수의 강연은‘시대의 여러 문제’마지막회이기도 했다.
이삼성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민족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일본 리쓰메이칸대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는 특히, 동아시아의 과거 사례를 통해 오늘의 사회를 분석하는 통찰력으로 한국 정치와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2009)로 결실을 빚었다. 주요 저서로는『20세기의 문명과 야만』(1998), 『제국』(2014) 등이 있다.
현 동아시아 질서를‘대분단체제’로 이해한 그는 가능한 동아시아 질서의 모델을 적시하면서‘평화적 다극체제’를 강조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형은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체제라고 생각한다. 이 평화적 다극 체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아세안, 인도, 유럽,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다자적 제도들의 틀 안에서 다면적으로 소통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질서를 가리킨다.”과연 이 교수는 동아시아의 질서와 평화에 어떻게 접근했을까. 강연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에 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의 급변사태로 초래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한반도 분단 상황의 지속을 예방하는 것에도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 될 것이다.

서를 정의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가 취하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질서의 중심이 일원적인가, 이원적인가, 혹은 다원적인가. 둘째, 중심과 주변의 관계양식, 그리고 셋째, 그 질서를 특징짓는 대립과 긴장의 축이다. 동아시아 질서를 위의 세 가지 정의의 기준에 맞춰 크게 세 국면의 시대 구분을 생각해본다.

①천하체제: 기원전 3세기 말 2세기 초~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약 2천 년의 동아시아(과도기: 19세기 중엽~19세기 말 청일전쟁: 천하체제와 제국체제의 공존)
②제국체제: 청일전쟁~1945년의 반세기의 동아시아(전환기: 1945.8~1950.1: 중국 내전, 그리고 신중국 성립 후 새로운 미·중 관계의 모색기)
③대분단체제: 1950.1~현재에 이르는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戰後는 중국 내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포함한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로 점철된 열전과 냉전의 범벅이었다. 유럽은 경제와 외교·안보에서 모두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처가 남은 동아시아에‘공동체’는 여전히 신기루와 같다. 전후 동아시아 질서는 유럽질서와 달리 냉전·탈냉전을 넘어 고유한 연속성이 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을 넘어 전후에서 오늘까지 지속되는 이 질서의 연속성을 개념화하려는 한 시도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첫 번째의 구성적인 특징은 분단 구조의 중층성이다. 대분단체제는 중국대륙, 미·일 해양동맹의 기축 관계와 한반도, 타이완해협, 인도차이나의 소분단체제의 이중구조를 내포한다. 전후 동아시아 질서는 분명 새로운 것이지만, 그 이전의 제국체제와 간과할 수 없는 강한 연속성이 있다. 동아시아 대분단의 원형은 1949년 10월을 전후한 시기에서 1950년 초에 걸친 시기에 구성됐다. 한국전쟁은 그 형성기 대분단체제의 산물이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두 번째 특징은 대분단의 기축에 내재하는 긴장 요소들의 다차원성이다. 전후 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견제, 그리고 중국에 대한 통제라는 공동의 지정학적 이익을 공유한 미·일 연합이 부활한다. 중국 대륙은 러시아와 연합한 형태로 적대세력으로 부상했다. 대분단의 기축 관계는 사실상 제국체제의 지정학적 대립구조의 재현이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서양 열강과 함께 중국을 반식민지화하는 과정에 개입했다. 이어서 일본은 1930년대 이후 중국대륙에 대한 일본의 침탈과 제노사이드 차원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전후 유럽과 동아시아 질서의 차이는 침략국이자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과정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대분단의 질서를 하나의‘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인자들이 긴장의 상쇄가 아닌 긴장의 상호 보완과 상호 재충전의 방향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분단의 기축과 소분단체제들이 서로 긴장상태를 보완하거나 가중시키고, 재충전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동아시아 대분단의 기축을 이루는 미·일 동맹과 중국 대륙 사이의 긴장은 소분단체제들과 상호작용한다. 대분단 기축 관계의 원형인 한국전쟁과 소분단체제인 타이완과 인도차이나에서 벌어진 역사적 상황들은 모두 대분단의 기축과 소분단체제들 사이에 작동하는 상호유지 패턴을 말해준다.

21세기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그 두 위험성 중에서 1차 대전을 초래한 유럽질서의 유형, 즉 적대적으로 양극화되는 군사동맹체계와 그것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군비경쟁 상황을 연상시킨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이 질서가 내포한 양극화된 적대적 군사동맹체제의 위험성이다. 과연 그 위험성을 통제하고 최소화시키기 위한 지역 질서 차원의 노력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인가.

대분단체제 안에서 한국은 중간자적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가 항상 동아시아의 긴장과 위기의 중심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선택과 역할이 동아시아의 미래에 갖는 중요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앞으로 반세기가 될지 한 세기가 될지 알 수 없는‘균형 국면과 과도기적 국면을 포함한 장기 미래’에서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조건이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미래는 몇 가지의 모델을 가상해 볼 수 있다.

①중국패권 체제, ②혼돈의 다극질서, ③평화적 양극질서, ④대립적 양극질서, ⑤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 체제.

필자의 판단으로는 위의 다섯 가지 미래상 중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형은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 체제라고 생각한다. 이 평화적 다극 체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아세안, 인도, 유럽,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다자적 제도들의 틀 안에서 다면적으로 소통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질서를 가리킨다. 이러한 평화적 다극질서의 핵심은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상호적대적인 동맹체제들에 편입되지 않고, 동맹의 정치로부터 자유롭다는 데에 있다. 문제는 여러 강대국과 우리 자신이 체계적이고 치열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고는 기존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논리가 관철되는‘대립적 양극질서’가 현실화되는 현재의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매우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본 조건인‘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한반도의 미래로서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에 의해서도 진지한 논의와 선택의 대상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에 의한 한반도의 온전한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 즉 최선의 가능성은 그러한 전제와 인식을 한국사회가 포용할 때만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그러한 포용적 선택에 아직은 준비돼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탈냉전과 함께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한 이후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이를테면‘이어도’와 같은 것이다. 거대한 암초로 된 이 섬은 기후가 온건한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고 심한 파도가 쳐야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기에 그 별명이‘파랑도’다. 마치 그와 같이 세계질서 혹은 동아시아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분단의 골격도 그 실체를 드러내 그것이 내포한 잠재적 위험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와 함께 그 실체가 모호해 보일 수 있는 대분단체제의 존재형태는 물에 잠긴 암초라고 해도 되겠다. 이 거대한 암초가 어느 순간 강풍에 떠밀려 동아시아의 일견 평화스러운 일상을 깨뜨리기 전에 새 아시아를 위한 비전이 구체화돼야 한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안에서 대분단의 기축과 소분단체제 사이의 상호유지적 상호작용 패턴의 한가운데 있는 한반도는 경제공동체 구축을 위한 노력이 가장 절실한 곳이다. 한반도 평화협정과 동아시아 비핵무기지대 구상은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의 틀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것은 동아시아 공동안보 모색의 긴요하고 적절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특히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에 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정치범 수용소의 문제로 표상되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 하루속히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데에도, 그리고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한반도 분단 상황의 지속을 예방하는 데에도,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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