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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찾아 공연하며 전국순회하는 ‘巨智’
전통시장 찾아 공연하며 전국순회하는 ‘巨智’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5.01.19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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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경상대 교수는 왜 ‘변사’로 분장했을까?
▲ 한상덕 경상대 교수

지난 15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소재 한 연구소에서 변사의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변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한상덕 경상대 교수(56세, 중어중문학과ㆍ사진)다.

그는 2011년부터 전통시장이나 시골을 찾아다니며 1인극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교수란 지위를 내려놓고 원숭이, 거지 등으로 분장하는 것에 거리낌없다. “현실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을 연기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데, 저는 그런 면에 있어 좀 특별한 DNA를 가진 듯합니다. 일단 해 보고 싶은 것은 최선을 다해서 실천해 봅니다. 어느 찻집에 갔더니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겁내지마라, 별거아니다.’”

그는 공연을 직접 각색할 정도로 변사에 대한 애착도 깊다. 인물의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말투로 고치고, 맥락에 잘 어울리는 노래 가사도 삽입했다. 특히 화개 지역 사투리로 단어를 바꾼 것은 지역 주민들이 더 친근하게 공연을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그의 배려다.

한 교수가 처음 공연에 눈을 뜬 계기는 경상대 재학시절 ‘극예술연구회’에서 입단하면서다. 연극에 흥미를 붙인 한 교수는 대학 졸업 후에는 학비 마련을 위해 모노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경상남도 연극제에서 ‘연기대상’도 수상한 바 있을 정도로 한 교수에게 연극은 또다른 삶의 활력소였다. 그런 영향인지 중국문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두아원잡극연구로 석사학위를, 중국 우한대(武漢大)에서 조우3부곡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이 연극과 관련돼 있다 보니 책상 앞에서만 연극 관련 연구를 하는 것보다는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에 푹 빠진 그가 그렇다고 본연의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2011~2012년 ‘경상대 가장 잘 가르치는 교수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경남인재개발원 베스트 강사’ 경남도지사상을 받았다. 그 비법에는 한 교수만의 연극적인 요소가 수업에 적용됐기 때문이다. “모든 과목에 작품1, 작품2 등 작품명을 붙입니다. 수업시간의 절반 이상은 학생들과 눈으로 대화를 합니다. 관객의 심리를 읽지 못한 연기자는 감동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가능하면 가르칠 내용은 연극 대사를 암기하듯 합니다. 100개의 지식을 전했는데 모두 잠을 자거나 다른 생각하다가 30개만 얻어가는 것보다, 50개를 전하고 40개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올해 두 가지 큰 계획을 잡고 있다. 하나는 화개면 20개 마을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것이다. 많은 지역 가운데 화개면을 선택한 것은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저를 키워주고 응원해 줬던 이웃을 생각하니 먼저 고향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그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볼 생각입니다.” 공연에 따른 출연료 전액은 지난해 화재로 인해 터전을 잃은 화개장터 재건 모금에 보탤 생각이다.

또 한 가지는 바로 ‘巨智人文學’이다. 거지행색으로 분장해 제주에서 연천까지, 다시 전남 땅끝마을까지 골목을 돌며 1년간 지역주민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할 계획이다. “행색은 초라한 ‘거지’지만 머리와 가슴에는 巨智를 지닌 특별한 거지가 되고 싶습니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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