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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에게
교육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에게
  • 교수신문
  • 승인 2002.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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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의 바보짓을 그만둬라
류동민 / 충남대·경제학

대부분의 생활인들에게 있어서 교육만큼 중요하고도 절박한 문제는 없을 듯하다. 물론 솔직히 말해 국가백년지대계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아이 앞날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수도권 집중과 지역간 불균형발전이라든가, 작금의 강남지역 아파트값 폭등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교육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현상이 없음을 보면,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교육이라는 다소 성급한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역대 대통령들 또한 그 令息이나 令愛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절묘한 타이밍에 맞추어 입시제도를 바꾸거나 교육과 연계된 병역제도를 고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교육도 ‘개혁’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자녀들의 앞날을 챙겨주는 자상한 아버지 노릇도 하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자녀를 학교에 보낸 경험이 있거나 스스로 입시지옥을 뚫고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문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입시나 진학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현재 대선에 출마할 것이 기정사실화된 후보들이 교육문제에 대해 어떤 관심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다른 모든 분야의 경우에 못지 않게,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선거가 코앞에 닥칠 무렵이면, 한 가지 특기만 있어도(즉, 공부는 못해도!) 좋은 학교(즉, 일류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거나,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즉, 당분간은 질낮은 교육 밖에 받을 수 없으니, 능력이 되면 알아서 내보내라) 해 주겠다는 식의 대동소이한 장밋빛 공약이 각 후보 진영에서 경쟁적으로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면서 나는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샤워실의 바보’라는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온몸에 비누거품을 잔뜩 묻혀놓고 물의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해 수도꼭지를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돌려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대학 언저리에서 지낸 세월이 어느덧 이십여 년이 돼 가지만, 도대체 한 해도 입시제도의 내용과 방식이 변경되지 않은 해가 없었거니와, 그럼에도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제도의 병폐, 입시지옥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돼 왔지 않은가. 더욱이 최근에는 학교가 상징하는 공교육의 붕괴와 조기유학 및 입시학원이 상징하는 사교육과 시장논리의 득세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책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잦은 제도변경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지닌 자들은 전혀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 확대할 수 있었다. 학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며 국가의 지원이나 요구하다가 유사시에는 사유재산권 신성불가침을 들이대며 전횡을 일삼는 학원재벌, 몇 푼 안되는(!) 돈을 무기로 삼아 미주알 고주알 간섭하다가 유사시에는 ‘자율’을 내세우는 교육관료, 여러 가지 경로로 그들에 빌붙어 있는 일부 교수들. 예를 들어 대학사회를 뒤흔든 학부제는 그 교육적 의의와 상관없이 이들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다른 모든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리시오” 따위의 교시가 아니라, 교육문제의 큰 흐름과 방향성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철학일 것이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견해 못지 않게 전체적인 교육시스템 재편의 방향에 대한 확고한 설정일 것이다. 최소한 오십여 년 동안 지속돼온 샤워실의 바보짓은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자본에게는 국적이 없지만 때로 자본가의 국적은 의미를 갖는 것 이상으로, 교육에도 국적은 없지만 교육자·피교육자의 국적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천문학적인(!) 토플점수에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뽐내면서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중학생의 얼굴에서 나는 한국 교육의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러한 발견의 와중에 내 아이도 저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을 목도한다. 모든 이들이 공적으로는 개탄하면서도 사적으로는 앞다투어 사교육에 매달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 걷잡을 수 없는 교육의 세계화 추세에 발맞출 능력도 저항할 의지도 부족한 대다수 서민층의 불안감을 떨쳐 주는 것, 아니 이를 위해 노력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춘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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