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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재직해도 조교수 … 총장점수 없으면 승진 못한다?
30년 재직해도 조교수 … 총장점수 없으면 승진 못한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5.01.13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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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의 ‘이상한’ 교수 업적평가 기준

제주한라대학에 30여 년간 근무하다 오는 2월 정년퇴임하는 ㄱ교수는 아직도 조교수다. ㄱ교수뿐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승진을 못한 채 전임강사로 정년퇴임한 교수도 있다. 20년 이상 근무했는데도 조교수인 경우도 10여 명에 달한다. 이 대학의 조교수 비율은 57.8%로 전문대 전체 평균 46.0%보다 월등히 높다. 전임교수 가운데 정교수는 7.8%에 불과하다.

비밀은 이 대학의 교수업적평가기준에 있었다. 제주한라대학 교수협의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의 불법과 탈법 문제를 지적해온 교수를 학교 측이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며 이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제주한라대학 교협 대표의장을 맡고 있는 강경수 교수(60세, 음악과)는 기자회견에서 “대학 쪽이 비상식적인 교수업적평가 점수를 구실로 교수 재임용을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며 “대학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교권을 탄압하는 총장은 용퇴하라”고 촉구했다.

교협에 따르면, 100점 만점의 교수업적평가에서 60점 미만을 받으면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60점 이상 70점 미만은 호봉 승급이 중단돼 급여가 동결된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교수가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점수는 교육 15점, 연구 40점 등 최대 58점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점수만으로는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반면 총장의 종합평가 점수는 20점을 차지한다. 총장 점수가 급여 동결은 물론 재임용 탈락까지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구체적인 평가기준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강 교수는 3년 평균 점수가 60점이 안돼 재임용에서 탈락했는데 총장 종합평가에서 4점을 받았다. 교협에서 활동하는 교수 대부분이 총장 종합평가에서 0~6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협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교수는 똑같이 교육·연구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2013년에는 81점을 받은 반면 지난해 평가에서는 69점을 받았다. 이 교수는 “연구실적을 100% 충족하고 교육항목에서 거의 만점을 받는데도 점수는 왔다 갔다 한다. (부교수 승진에 필요한) 4년 평균 80점이 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총장이 임명하는 보직교수들은 보직점수 8점을 받으면서 연구실적도 최대로 인정받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총장 종합점수 20점을 합하면 이 점수만으로도 재임용은 가뿐히 통과할 수 있는 셈이다.

강 교수는 “제주한라대학의 교수업적평가는 교수의 연구와 교육과는 동떨어진 총장에 대한 충성도 평가일 뿐”이라며 “재임용 거부는 교협 대표의장에 대한 악의적인 탄압이며 인사권 남용이다. 그간 많은 교수들이 업적평가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는데도 시정은 하지 않고 이를 구실로 총장의 눈에 벗어난 교수를 탄압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주한라대학의 한 교수는 “저서의 경우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와 같은 점수를 인정해주는데 3개월 전에 총장의 결재를 받은 저서만 연구업적으로 인정해 주고, 음악과의 경우 사전에 총장 결재를 받은 연주회만 실적으로 인정해 준다”며 “일종의 통제를 통해서 교수를 꼼작 못하게 꽁꽁 묶고 있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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