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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에 대한 지질학적 행위자다”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지질학적 행위자다”
  • 이종찬 아주대 인문사회의학교실
  • 승인 2015.01.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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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시의『인간과 자연』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며
▲ 조지 마시

올해는 미국의 외교관이자 연방의원이었던 조지 퍼킨스 마시(George Perkins Marsh, 1801~1882)가『인간과 자연(Man and Nature)』(1864)을 출간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이 책보다 5년 먼저 출간된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기념하는 학술행사가 많이 열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조지 마시의 저작은 참으로 홀대를 받고 있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의 저자로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미국의 역사지리학자 데이비드 로웬탈(David Lowenthal)이 15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를 가진 것이 고작이다. 한국에서는 번역서 이외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이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다.『 종의 기원』의 초판이 1천250부가,『 인간과 자연』의 초판 1천부가 각각 인쇄돼 빠른 시간에 판매된 것을 생각한다면 마시의 저작에 대한 무관심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20개 정도의 외국어를 할 줄 알았으며 다양한 학문에 대한 소양을 갖췄다. 연방의원으로 선출돼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의 자연 보존과 관리 정책에 영향을 받았던 마시는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에 의해 터키 공사로 임명돼 처음으로 아시아의 생태환경에 대해 접했다. 이 때 그는 지질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몇 년간을 영어학과 영문학 강좌를 맡는 등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했다.

마침내 1861년에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16대 대통령 링컨이 마시를 이탈리아 공사로 임명한 것이다. 여기에서 21년간 재직했던 마시는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인간이 자연에 대해 미치는 지질학적 힘에 대해 더욱 주목했다. 자신의 삶도 여기에서 마감했다. 마시에게 이탈리아는 제2의 조국이 된 것이다.

“모든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이 자연의 모든 질서와 유기적 균형 상태를 파괴하는 유일한 생물적 존재”라는 것. 이것이 마시의 논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마시는 인간의 행위가 지질학적인 힘을 갖고 자연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인물이다. 1874년에 출간된『인간과 자연』의 2판『인간의 행동이 변형시킨 지구(The Earth as Modified by Human Action)』라는 제목이 그의 논점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인간과 자연』에서 마시는 인간이 식물과 동물의 특성과 습성을 변형시키고 분포 상태를 변화시키며 더 나아가서 종 자체를 멸종시키는 행위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자연은 스스로 하는 일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갖고 있지 않은 데 비해, 인간은 자신의 기준으로 자연을 마음대로 측정하여 처리해버린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고래나 코끼리와 같이 크고 당장에 이익이 되는 생물은 마음대로 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수천피트의 두께로 전지구상에 광범위하게 층위를 형성하고 있는 미생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마시는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인류는 돌아올 수 없는 생명의 강을 건너게 되어 “인류의 멸망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준엄하게 경고했다.

다음으로 마시가 주목한 것은 인간의 역사지질적인 행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삼림이다. 마시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삼림의 파괴나 제거는 2~3세대에 걸쳐 지질학적 격동이 초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폐해를 가져다주며, 용암과 화산재에 매몰되는 것보다도 더 절망적으로 지표를 황폐화시킨다.” 삼림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해독할 수 있는 역사지질학적·역사지리적인 기호다. 삼림이 소실되면 풍토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함께 변한다. 그래서 기후는 불안정하게 되고 토양은 원래의 물리적 성질을 상실해 태양과 바람에 의해 말라서 가루로 날리게 된다. 부엽토를 상실해버린 대지는 척박해져서 자연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지를 덮고 있던 비옥한 유기질 토양은 축축한 저지대로 쓸려 내려가 썩어서 치명적인 열대 질병을 유발시키는 수생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노벨상 화학 부문 수상자(1995)인 네덜란드의 폴 크루첸(Paul J. Crutzen)은 지구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에 돌입했다고 주장하면서, 인류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지구에 대해 지질학적 행위자로서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인류세가 산업혁명부터 시작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인류세가 시작됐다는 것은 확실하다. 150년 전에 이미 인간이 지구의 자연에 대해 지질학적 행위를 하고 있음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은 오늘날에도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탐독해야 할 고전임에 틀림없다.

데이비드 로웬탈은『인간과 자연』의 출간 100주년을 맞아 2판과 3판을 저본으로 삼고 이에 대한 자신의 주석을 달아서 새로운 판형으로 출간했다. 로웬탈은 마시의 저작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정치경제학에서, 뷔퐁(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이 자연사(natural history)에서, 헨리 휘턴(Henry Wheaton)과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가 국제법에서 성취했던 것처럼 모든 이용가능한 지식을 융합해내는 일을 지리학에서 달성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가 지구의 자연사를 변화시켜왔음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인간과 자연』은 지리학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는 융합적 지평을 보여준다. 독자들은『인간과 자연』이 알프레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의『생태 제국주의(Ecological Imperialism)』나 요아힘 라트카우(Joachim Radkau)의『자연과 권력(Nature and Power)』과 같은 기존의 생태환경사 분야의 저작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시는 인문학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 자연과학의 중요성도 인식했던 외교관이었다. 아직 ‘국제환경법’이나 ‘환경외교’와 같은 개념 등이 뚜렷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에 인간의 지질학적 행위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것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학문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에 미국과 유럽이 자연을 마음대로 훼손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조지 마시가 지질학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논의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지질학적 힘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는 것만으로도『인간과 자연』의 출간 150주년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충분하다. 여전히 제국의 욕망을 갖고 있는 세계 강대국에 대해 마시는 이렇게 말한다.

“로마 제국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기 전에 반드시『인간과 자연』을 먼저 보라.”

이종찬 아주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을 탐구하면서 열대학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열대와서구: 에덴에서제국으로』,『 난학의세계사』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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