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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과 서민의 생존학개론
땅콩과 서민의 생존학개론
  • 정 민 제주한라대학·간호학과
  • 승인 2014.12.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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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정 민 제주한라대학·간호학과

"사학현장에서도 가문의 후광을 입은 땅콩들의 탐욕과 만용으로 교육이 하늘로 비상해 보지도 못한 채 거꾸로 회항한다."

▲ 정민 제주한라대학
사람은 세상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수없는 윤회 과정 속에서 인과의 법칙에 의해 태어나는 것일까. 어쨌든 부유한 집에 태어난 것이 죄는 아닐 터이고, 죽을 때까지도 심리적 탯줄이 잘 끊어지지 않는 한국사회이기에 자식에게 일정 특권을 물려주는 것에 큰 반감은 없다. 그러나‘땅콩 리턴’사건처럼 가진 자들의 특권이 서민에 대한 억압 기재로 사용될 때 서민들은 가난은 죄는 아니지만 설움을 겪는다. 마치 자본주의 시대의 서민이란‘서러운 민초’나돼야만 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중심주의의 기치를 보기 좋게 치켜들고서‘서민들도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으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디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인가.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친 서민의 자식들은 이른바‘신생능력’이라는 변칙적인 생존비법에 눈을 돌리게 된다. 신생능력이란 일종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그들은 지배 권력에 대한 눈치감각을 고도로 발달시킨다. 반드시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권력의 눈에 벗어나서 입게 되는 손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꺼내드는 비장의 무기인 것을.

명색이 지식인들이라고 예외일까. 그들의 자존심이 여느 때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을 터. 하지만 권력에 신속히 편승하기 위해서라면 절정의 신생능력을 발동해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하얗게 구겨버린다. 그러면서도 애써 태연함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비굴해 보이기만 하다. 고실업의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물론 비정규직 일자리마저도 감지덕지해야 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돌아오는 대가가 미흡하더라도 감사할 따름인데. 비록 비굴해 보이더라도 신생능력으로나마 희망의 끈을 부여잡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가진 자들만의 이해관계에 좌우됨으로써 서민들에게 많은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 반면 가진 자들에게는 무한한 특권이 허용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전제인 권리와 책임 간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 날 땅콩의 후예들은 자신들에게 운 좋게 쥐어진 권력의 힘을 실감한다. 자신들의 말 한마디가 아랫사람들에게 여지없이 먹혀드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맛본다.‘ 제 멋대로’내린 지시와 명령일 뿐인데 뜻밖의 추종자들조차 줄을 잇는걸 보면 기세가 더 등등해진다. 물론 강력한 권력과 권한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회나 조직의 수준과 규모가 이른바‘보릿고개’시대에 머물러 있는 한 말이다.

그러나 21세기 선진 한국 시대에 불합리한 권력은 자칫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단초가 된다. 그들의 내면에 꿈틀거리던 자만심과 특권의식이 비등점에 이르면 약자들에게 군림하고 싶은 욕망은 절제력을 잃기 십상이다. 그들의 눈에는 추종자들만이 아른거리고 조직과 사회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단 한 사람의 잘못된 마음에서 시작된 문제가 일으키는 파장이 어떠한지는 상상에 맡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부정과 범법행위가 만연해 있는 것은 특권층인 땅콩들과 약자들인 서민들의 균형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땅콩들의 指鹿爲馬의 행태를 보고도 보지 못한 듯이, 들어도 듣지 않은 듯이 살아야 하는 형국에 젖어들면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마저 무뎌져만 가고 있다. 심지어 땅콩들의 권력남용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억울한 입장에 처한 동료를 바라보고도 나와 직결된 일이 아니면 억지로 눈을 감아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땅콩들은 권한만 쥐고 책임은 늘 힘없는 약자들의 몫이 되고 마는 처참한 현실이 대학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 또한 가슴 아프다. 우리 교수들이 몸담고 있는 사학 교육의 현장에서도 가문의 후광을 입은 땅콩들의 탐욕과 만용으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하늘로 비상해 보지도 못한 채 거꾸로 회항하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사학에 재직 중인 필자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제2의 땅콩리턴이 용납되지 않도록, ‘서러운 민초’들의 후예인 학생들이 땅콩들의 절대권력 앞에서 인간으로서 자존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 서민들이‘사슴을 사슴’이라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땅콩들이‘사슴을 사슴’으로 보는 진실이 있는 곳이 바로 모두가 꿈꾸는 건강하고 가슴 따뜻한 사회라고 생각하기에.

정 민 제주한라대학·간호학과
연세대에서 박사를 했다. 제주한라대학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진실과정의를위한제주교수네트워크 공동대표, 전문직여성한국연맹 제1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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