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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위·명예로 행복하십니까? … 自足기능 회복해야"
"돈·지위·명예로 행복하십니까? … 自足기능 회복해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3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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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47회차 강연_ 김문조 고려대 교수 '행복의 추구'

▲ 자료·사진 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사회학자가‘행복’을 말한다면 어떻게 들릴까. 에리히 프롬 같은 사회심리학자이자 인문주의 철학자처럼 들릴까. 지난 20일 ‘문화의 안과 밖’47회차 강연에서 사회학자인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진)가‘행복의 추구’를 주제로 말문을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문조 교수의 다양한 이력이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다시 미국 조지아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학이론, 지식과 사회, 문화사회학 등을 가르쳐온 그는 노동·정보사회·문화·과학기술·현대사상 분야의 폭넓은 연구를 수행해왔다. 한국이론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동아시아 사회학회 회장으로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새삼스럽게‘행복’을 말한 것이다.
그의 저서를 보면, 이날 그의 강연‘행복의 추구’가 어느정도 이해될까. 그는『한국인은 누구인가』(공저·2013), 『융합문명론』(2013),『 한국사회의 양극화』(2008),『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의 변용』(2006)등을 썼다.
이날 강연을 통해 김 교수는 서구사회에서 행복이 시대적 화두로 대두하게 된 시점부터 더듬기 시작해 한국사회의 부박한 풍토에서 어떻게 행복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응답했다. 그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행복 상자의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는 가치부여적 기능을 육성해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창조적 행복의 心室을 확장하는 일이 경박한 말초적 행복이 범람하는 스마트 시대의 절박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자가 전하는‘행복의 추구’, 사회적 관점에서 통찰한 행복은 과연 어떤 것인지 그의 강연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서 구사회에서‘행복’이 시대적 화두로 대두하게 된 것은 계몽적 사회발전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삶의 목표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속출하기 시작한 1960년 후반부터다. 한국사회에서의 행복 담론은 자기표현(self-expression)에 친숙한 Net 세대가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같은 경향은‘국가발전’이나‘사회발전’과 같은 묵직한 공약 대신‘국민행복’이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최근 정황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행복을 거론하고자 하는가.

최근 들어 슬픔보다 기쁨, 절망보다 희망, 징벌보다 보상, 질책보다 격려, 고뇌보다 환희가 선호되는‘긍정적 선회(positive turn)’가 사회 도처에서 목도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본적으로 근로중심사회에서 여가중심 사회로 변화하는 외적 요인과 물질적,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서 언론의 자유, 사회참여, 생활환경의 개선 등과 같은 삶의 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 가치관이 확산하는 내적 변화의 교합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한 마디로‘긍정적 마음의 상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행복은 오랜 기간에 걸쳐 개념적 변천을 겪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서 오는 고귀한 즐거움으로서의‘유데모니아(eudaimonia)’를 제시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스토아학파의 키케로와 에픽테토스도 행복을 신체적, 정신적 쾌락이 아닌 이성과 세계와의 일체감으로 규정했다.

지난 반세기 전 세계 차원에서 GDP나 개인의 실질임금이 꾸준히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평균 행복도가 그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았다는 R. 이스털린의 주장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한 행복경제학의 대표적 연구 사례로 꼽힌다. 경제학자들은 전래적으로 국민총생산(GDP)을 한 국가의 발전 상태를 가늠하는 가장 보편적인 지표로 간주해 왔으나 개인별 국민총생산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행복도 평균치가 횡보를 거듭하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발표된 이후, 국민총만족(GNS)나 국민총행복(GNH)와 같은 대안적 지표들이 행복도 비교를 위한 척도로 제안됐다. 한국경제는 최근 경제지표 상으로는 세계 10위권 내외를 오르내리는 성과를 기록하고 있지만 출산율, 이혼율, 자살률, 부패지수 등과 같은 사회지표에서는 중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외화내빈의 생활 현실은 세계적으로는 중간 정도에 불과하고, OECD 국가군에서는 바닥에 가까운 한국의 행복 관련 지수들에 여실히 반영돼 있다.

한국인의 마음의 습성을 개괄적으로 스케치해 본다면,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크게 혈연 중심의 친족주의로 자기 식구를 우선시하는 관계주의(relationalism), 현실종교 혹은 고도의 사회윤리 체계로 간주하는 유교의 동양 문화권에 내재된 현세주의(innerworldliness) 및 자신이 체험한 모든 삶의 고난에 대한 대가를 되돌려 받기를 갈망하는 배상주의(returnism)이라는 세 개의 正脈으로 구성돼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성향들이 단순한 복선적 형태를 넘어 삼중나선형으로 뒤얽혀 돌아가는 오늘날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어떤 식으로 응축할 수 있겠는가. 그런 목적을 위해 관계주의, 현세주의 및 배상주의 성향을 한 문장으로 엮어보면‘아는 사람들끼리 한평생 만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소망의 근저에는 사회경제적 영달에서 심신의 안녕에 이르는 안락한 삶(well-being)을 향한‘至福意識’이 내재해 있다고 추정된다. 이때 한국인이 추구하는 福은 고난이나 구원을 통해 향유할 수 있는 은총과 같이 신성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공적 이념과도 궤적을 달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부귀영화와 같은 실질적 가치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주류라고 여겨진다. 한국인이 염원하는 복은 내재적 열망을 충족시킴으로써 달성되는 충만으로서의 행복(happiness)이라기보다, 권력·재산·건강·명예·자식복 등과 같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행운(luck) 쪽에 가깝다. 따라서 관계주의, 현세주의 및 배상주의라는‘俗삼위일체(secular trinity)’의 구심점을 이루는 한국적 지복의식의 근저에는 안락한 삶을 갈구하는 祈福심리가 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표현과 유사한‘번영 속의 불행’으로 묘사할 수 있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감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한국인의 세 가지 심성적 특성인 관계주의, 현세주의 및 배상주의와 연관 지어 해명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이 속성들은‘(알 만한 사람들) 끼리끼리’,‘ (살아생전에) 빨리빨리’,‘ (챙길 수 있는 한) 많이 많이’라는 일상적 의태어로 재진술할 수 있는데, 그러한 기질들은 주어지는 복을 채워 담을 복주머니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자족적 능력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충족 모형에서 결정적 역할은 담당하는 한국인의 사회적 욕구는 일등 이외의 모든 존재가 무시되고 패자부활전을 통한 재기의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악성 서열주의 문화의 영향 아래에‘클수록 좋다’는 최대주의 논리에 복속돼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인의 욕구 결핍증은 과거 어느 때보다 상승일로에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목되는 의식적 변화는 산업화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최고조에 달했던 진정성(authenticity) 에토스가‘피상성’에토스로 대체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고통과 실존, 역사와 사회 등 거창하고 무거운 명분이나 도덕적 가치를 외면한 채 삶을 요령껏 재미있게 살아가려는 이 새로운 관념의 주역은‘포스트 386세대’다. 이들은 1971년 이후에 출생해 탈냉전, 정보화 시대에 자라난 연령층으로 성찰성, 공공성, 사회성, 윤리성과는 상반되는 즉흥성, 개체성, 친밀성, 심미성을 지향하면서 고통이나 고뇌보다 편익이나 기쁨을 우선시하는 행복 추구자들로, 불확정성이 가중되는 각박한 현실을 요령껏 헤쳐 나갈 수 있는 영민성(agility)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민성은 변화무쌍한 난세를 요령껏 헤쳐나갈 수 있는 적절하고 유효한 자질이라는 사고가 보편화해 영민성을 대변하는‘스마트’라는 용어가 사회혁신을 향도하는 새로운 시대어로 각광받고 있다.

행복도 생성 및 산정과 관련된 일련의 논의들을 종합해 볼 때, 행복을 누리는 방식은 크게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외재하는 행복을 점유하자는 수혜적 유형, 둘째는 행복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자는 실현적 유형, 셋째는 능동적으로 행복을 창출하자는 창조적 유형이다. 이때 행복에 대한 수혜나 실현은 일정 지점이 지나면 더 이상 행복감을 증진시키지 못하는‘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현상을 유발할 개연성이 높다. 행복상자의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는 가치부여적 기능을 육성해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창조적 행복의 心室을 확장하는 일이 경박한 말초적 행복이 범람하는 스마트 시대의 절박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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