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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과 이공계 기피
노벨상과 이공계 기피
  • 논설위원
  • 승인 2002.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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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일본이 들끓고 있다. 평범한 한 회사원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해서다. 서울의 한 대형 서점 입구에는 아직도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코너가 비어있다. 물론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올해 43세의 이 ‘평범한’ 회사원은 20여 년을 한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1987년의 한 논문이 수상하게 된 배경을 이룬다.

윌리엄 골딩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경우, ‘수상작’을 보면 발표시점과 수상시점 사이에는 30여 년의 긴 시간이 무지개처럼 걸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나까 고이치의 경우 대략 15년이 걸쳐 있는 셈이다. 창공에서 빛을 뿜고 있는 뭇 별들이 먼 시간을 헤쳐 온 것처럼, 그의 수상에도 지금을 있게 한 시간의 퇴적층이 쌓여 있다.

일본은 올해 노벨물리학상까지 두 개의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시간의 길이로는 측량할 수 없는 개인적 열정과 집념, 과학의 지평을 향한 탐구 노력이 국가의 관심과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두고 그것에 사로잡혀 열광하는 것도, 반대로 침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비애를 느끼는 것도 사실은 긴 시간 동안 쌓아온 ‘內攻’의 결과물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에 매달려 열정을 불태운 과학자의 자세이며, 당장에 환금성있는 결과를 내놓지 않더라도 긴 안목으로 ‘결과’를 기다릴 줄 안 여유 있는 과학정책을 가늠하는 일이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모여 조직한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 기피 해결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한 실태조사’라는 제목의 이 설문조사는 오늘날 과학계와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교수사회 특히 이공계 현장의 부끄러운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긴 하지만, 어떤 안목으로 긴 호흡을 준비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공을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인건비 문제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구외적 일로 녹초가 되기도 하고, 이런 일로 제대로 연구개발 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신성한 연구실은 각종 비리가 횡행하고, 지도교수와 관계로 숨이 막히기까지 한다. 국내 학위라고 평가절하되기 일쑤이며, 여전히 부업을 통해 또는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얻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학문후속세대인 이들은 대학원생의 학비와 생활비 지원, 국내 학위 소지 과학기술인 우대를 가장 중요한 대학원 개선책으로 꼽았다.

현실이 이럴진대 ‘노벨상’이라니!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문제에는 기초과학을 비롯한 과학계의 문제가 함께 맞물려 있다. 연구실을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것을 장기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정책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제대로 듣는 것이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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