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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범한 기억력의 두 얼굴
어떤 비범한 기억력의 두 얼굴
  • 교수신문
  • 승인 2014.12.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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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 김환규 서평위원
학습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의 획득이다. 기억은 학습된 정보를 보유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기억력이 좋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 중에 심리학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쉐라쉐브스키(Solomon Sherashevsky)다. 주로 S라 불리는 사람으로 신문사에서 근무할 당시 통 메모를 하지 않은 것을 보고 상사가 야단치려 불렀으나 S는 상사가 자기에게 지시한 사항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에게 지시한 것까지 줄줄 외웠다. 상사는 S에게 심리학자를 찾아가 볼 것을 권유했으며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아(Aleksandr Romanovich Luria)였다.

루리아는 신경심리학자로 사고과정과 반응시간 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로 명성을 얻어 모스크바의 심리학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곳에서 인간의 사고과정 분석 방법을 기술한‘연관 신경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이것이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가 됐다. 1930년대 말에 의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실어증을 연구하면서 언어 및 사고와 대뇌 피질 간의 상호관계와 실어증으로 인한 보상적 기능의 발달에 주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육군병원에서 부상으로 인한 정신장애의 치료법을 연구했다. 이때의 연구를 바탕으로 루리아는‘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루리아는 위에 언급된 S를 30년에 걸쳐 관찰한 끝에 1968년에 『기억술사의 마음(The Mind of Mnemonist)』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루리아는 처음에 S에게 여러 개의 단어 또는 숫자의 목록이나 무의미한 철자들의 목록을 기억하는지에 대해 실험했다. 루리아는 제시된 목록을 읽고 S에게 그것을 반복해보라고 주문했다. S는 루리아가 제시한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 한 번에 70개의 단어를 읽어줬을 때도 S는 그것을 순차적으로, 역차 순으로, 그리고 다른 순서로도 암기했다. 심지어 S는 15년 전에 봤던 목록까지 기억해내기도 했다. 일반인들은 대개 5~7개의 단어를 기억하는 것이 보통이다.

S는 어떻게 그것들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S는 자신의 기억력에 기여할 것이라 여겨지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설명했다. 첫째 요인은 자극에 대한 그의 특별한 감각반응이다. S는 그가 본 수많은 것들을 생생한 이미지로 기억했다. 많은 숫자로 구성된 표를 보여줬을 때 S는 숫자 표 전체의 시각 이미지를 기억해 내기 때문에 한 줄에 있는 숫자나 대각선으로 배열된 숫자들을 기억해내는 것이 쉽다고 했다. S는 또한 탁월한 공감각 소유자였다. 공감각(Synesthesia)은 특정 감각 자극이 주어진 감각자극과는 다른 종류의 자극과 연관된 감각을 유발하는 것이다. S가 어떤 소리를 들을 때 그가 들은 소리 자극과 함께 섬광을 보거나 특정 미각을 감지하는 것이 공감각의 한 예다. 주어진 감각에 대한 그의 복합적인 반응이 강력한 기억형성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S의 뛰어난 기억능력은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자극에 의해 유발된 복합적인 감각능력은 정보를 통합하고 복잡한 개념을 기억해내는 능력에는 방해가 됐다. S는 또한 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예전의 정보를 지워내려고 의식적으로 기억된 이미지를 지워내려고 노력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예전의 정보를 지워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경우에만 기억된 정보를 망각할 수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를 힘들게 기억하지만 쉽게 망각하는 것과는 반대의 과정이 S에게 일어난 것이다.

S는 자신의 기억력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리포터라는 직업을 버리고 기억술사(mnemonist)라는 무대공연가로 변신했다. 그의 기억력을 시험해보려고 청중들이 제시하는 긴 목록의 숫자 또는 단어들을 실수없이 기억해내기 위해 S는 자극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감각반응능력과 공감각 능력을 활용했다.

긴 목록의 항목을 기억해내기 위해 그는 각각의 항목을 일종의 시각적 이미지로 상기했다. 청중이 기재된 목록을 읽어주면 S는 그가 태어난 고향을 걷는 상상을 하면서 각각의 숫자나 단어가 주어질 때마다 S는 떠오른 이미지들을 길 위에 배치했다. 즉 1번 단어에서 떠오른 이미지는 우편함 옆에 놓고 2번 단어에서 떠오른 이미지는 수풀 옆에 놓는 방식이다. S는 그 길을 걷는 상상을 하며 배치해 놓았던 이미지들을 하나씩 줍는 방식으로 청중이 제시했던 단어 목록들을 기억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S와 같은 복합적인 공감각적 지각능력은 가질 수 없더라도 친숙한 물체와 연관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S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대신 복잡하고 추상적인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즉 단어나 숫자 하나하나가 강한 이미지로 기억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이 상상한 것과 현실을 혼동하기도 했다. 말년에 S는 5분 전에 들은 말과 5년 전에 들은 말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었으며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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