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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교수들의 추문
잇따른 교수들의 추문
  • 교수신문
  • 승인 2014.12.1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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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김 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 김 영 논설위원
조선후기 실학자 박지원이「洪範羽翼序」라는 글에서『서경』의 正德, 利用, 厚生이란 명제를 현실적 문맥에서 재해석해“자연을 잘 이용한 연후에 후생복지가 가능하며, 후생복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에 덕이 바로 잡혀질 수 있다”라고 입론한 바가 있다. 의식이 풍족한 뒤에 예절을 알고, 창고가 꽉 찬 뒤에 염치를 안다는 현실논리를 정확히 말한 명언이다.

그런데 이러한 先富後德걩은 대체로 타당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윤택해진다고 해서 덕이 저절로 바로 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의 빗나간 지도층과 부도덕한 교수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이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직 국회의장을 지낸 박모 씨나 검찰총장을 지낸 신모 씨의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 그리고 권력의 최고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추문과 재벌 후세들의 몰지각한 언행은 권력과 돈이 있는 곳에 오히려 도덕적 타락과 불의가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맹자가 집 주위에 뽕나무를 심어 중늙은이가 비단옷을 입고 가축들을 길러 상늙은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한 뒤에는 학교에서 반드시 사람 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는지 모른다.

최근 한 언론인은“사회 전체가 온통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에 휘둘린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이 더 이상 추락하지 않게 막아야 할 최후의 보루가 두 군데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 그 하나는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종교와 대학이 그러한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 분야의 사정이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대학의 실정은 믿음은커녕 실망만 안겨주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하는 서울대에서조차 연이어 성추행 사건이 터져 나왔다. 얼마 전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수리과학부의 K교수가 구속된 데 이어 이번에는 또 치의학대학원의 P교수가 여학생 성추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러한 대학가의 잇따른 성추행 사건이 노정된 것은 분명 일부 대학 교수들의 도덕적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끄러운 것이지만 여성학자 신경아 교수의 지적처럼‘불행 중 다행’(「여교수 칼럼」,<교수신문>, 758호, 2014.12.1)인지도 모른다. 사실 대학가의 성폭력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은폐돼 오다가 피해 학생들의 인권의식이 싹트고 갑의 횡포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이제 그 추악한 실상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을의 관계에 있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고려해 참고 견디거나 의혹을 제기하려고 해도 명백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대학 당국도 성추행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킬까봐 이런 일을 저지른 교수들에게 휴직이나 안식년을 줘 사건을 무마하려하거나 문제가 되더라도 서둘러 사표를 수리한 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온정주의적 문제해결 방식은 곤란하다. 대학당국은 학생회와 협력해 성폭력 예방과 즉각적인 피해 신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반 조치를 조속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엄격한 규정의 강화는 물론이고 폭넒은 학생들의 인권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성범죄예방 교육과 음습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밝은 캠퍼스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적 예방조치 및 사후대책과 함께 무엇보다도 교수 스스로 스승으로서의 품위와 인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도덕적 성찰이 필요함은 두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김 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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