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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후 국립대 학생회 중심의 학생운동 사회정의 실현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로 확장
80년대 이후 국립대 학생회 중심의 학생운동 사회정의 실현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로 확장
  • 박남기 광주교대·교육학과
  • 승인 2014.12.11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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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_ 멕시코의 학생운동의 흐름②

멕시코에서 일어난 43명의 대학생 학살 사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발생한 맥락이나 멕시코 고등교육에 대한 국내의 이해는 낮은 편이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이 멕시코 학생운동의 흐름을 짚은 글을 보내왔다. 지난 회에 이어 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 흐름을 짚었다.

1987년에는 국립대학생의회가 결성됐다. 이때부터의 학생운동 핵심 이슈는 사회정의 실현에 관한 것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와 국립대 부설 고등학교 졸업생의 멕시코국립대 자동입학 제도 폐지 반대 등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 관한 쪽으로 확장됐다.

멕시코국립대 등록금은 현재 20원 정도이니 무료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학당국은 1986년 이후 등록금을 올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학생들의 데모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87년에는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로 인해 3주 간 대학문을 닫았다.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시위로 인해 취해진 1999년 4월부터의 휴교는 9개월 반이 지난 2000년 2월까지 이어졌다.

당시 반스 총장은 그동안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던 국립대 부설 고등학교 학생들의 대학 입학 기준을 높였고, 대학 재학생들의 재학 기간도 제한했다. 대학생들 중에는 대학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대학에 머물러 심지어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명까지 가진 학생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어 20원에 불과한 등록금을 14만원 수준으로 인상하겠다는 안을 대학의회를 통해 의결했다.

하지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상 공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은 고등교육에도 해당된다며 학생들은 농성을 시작했다. 대학당국은 이는 대학 이전 교육까지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대법원의 유권해석이 필요해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대학당국이나 학생 그 누구도 대법원에 유권해석을 의뢰하지는 않고 있다. 결국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총장이 물러나고 모든 개혁안이 철회됐다. 대학의 많은 기록물들을 약탈당했고, 컴퓨터 시스템이 망가졌으며 강의실도 엉망이 됐지만 1968년의 대참사 기억 때문에 무력에 의한 진압은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학 측의 입장이었다.

이 와중에 멕시코 대통령이 2000년도 멕시코국립자치대 예산 삭감을 발표해 국립대에 대한 수요증가에도 불구하고 신입생 증원을 하지 못하게 됐다. 이 사태 이후 멕시코국립자치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거세졌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멕시코국립자율대는 빈부격차가 심한 멕시코에서 빈곤 탈출을 위한 유일한 길로 간주돼 왔다. 멕시코 상류층과 중산층의 자녀가 보다 경쟁력 있는 사립대학이나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멕시코국립대에는 가난한 학생들, 그리고 실력이 조금 뒤진 학생들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2년 7월에는 아밀싱고(Amilcingo)에 위치한 여자교육대학에서 신입생 180명을 추가하라며 학생들이 주의원을 인질로 잡고 데모를 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멕시코시티에서 차로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가난한 농촌지역으로 대부분의 주민은 인디언 원주민이다. 그 결과 105명을 추가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기존의 졸업생들도 초등교사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 주에서 그 이전 6년간 초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1천180명인데 그 중에서 초등교직을 구한 사람은 214명에 불과하다.

2004년 4월에는 마스크를 쓰고 무장한 멕시코국립자치대 학생 50여명이 지난 시위에서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학교 건물을 점거했다. 멕시코 정부는 1999년 4월부터 2000년 2월까지 10개월간 대학을 마비시키며 시위에 가담한 학생 600여명을 체포했었다.

2006년에는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Oaxaca) 주의 수도에서 폭력시위가 6개월간 진행됐다. 교사가 급여와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이 농부, 노동자, 그리고 대학생의 동참으로 이어지면서 대학이 시위대의 피난처가 됐다. 멕시코 법에서는 대학의 학문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대학의 허가 없이는 경찰이 대학에 진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위대 진입으로 인해 대학은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 시위가 시작된 이래 교수 한 명을 포함해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3년 4월에는 멕시코국립자치대 학생들이 사유화 저지를 위한 교육 투쟁에 대한 연대를 밝히며 대학 행정실 점거 농성을 벌였다. 4월 하순에는 또다른 대학에서도 연대 점거 시위가 시작됐다. 이처럼 멕시코 학생 시위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정권 자체가 부정부패에 연루돼 있어서 학생들이 불법적인 데모를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보인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의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국립대학에 소정의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정의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지를 위해 멕시코 정부가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상의 흐름에 비춰볼 때 멕시코의 대
학생 시위는 지속될 것이며, 이번의 참사가 마지막이 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남기 광주교대·교육학과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를 했다. 광주교대 교수협의회장과 총장을 지냈고, 현재 (사)희망네트워크광주 이사장, (사)한국교육정책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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