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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치료와 네러티브의 가능성
인문치료와 네러티브의 가능성
  • 교수신문
  • 승인 2014.12.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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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한국·대만 인문치료 국제학술대회 후기


▲ 지난 달 22일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HK인문치료사업단(소장 김남연)와 대만철학상담학회가 공동으로 ‘제2회 한국·대만 인문치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국제학술대회는 특히 인문치료와 내러티브‘에 무게를 실었는데, 이들이 준거한 내러티브 이론은 철학자 매킨타이어(왼쪽)와 폴 리쾨르(오른쪽)에게서 자양분을 흡수한 것이다.
인간의 삶은 다양한 차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의 문제를 어느 한 가지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은 철학, 문학, 역사, 예술, 과학, 기술이 제공하는 다양한 상상력과 성찰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의 병 역시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우리의 삶이 물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철학적, 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병도 그런 차원들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 간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제는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찰스 스노우(Charles Snow)가 일찍이 지적했던 ‘두 문화’의 간극이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제공하는 혜택과 편리함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삶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름길이라는 견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인문치료의 중요성이 있다. 인문치료는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으로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문제를 치유하는 분야로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HK인문치료사업단(단장 김남연 교수)이 제시한 개념이다. 인문치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두 문화의 간극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의 중요성을 구체적 치유 활동을 통해 입증함으로써 좁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의 병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야 한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존재론적 성찰 중 인문치료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매력적인 것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존재(Homo Narrans)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구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처한 세계를 이해한다. 진화론적으로 표현하면 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유력한 적응 수단인 셈이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가 강조했듯이 ‘세계 만들기’는 과학이나 예술에서 마음의 중요한 기능인데, 내러티브는 인간이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세계 만들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아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특히 자서전은 ‘삶 만들기’를 위한 절차들의 집합체다. 브루너에 따르면 삶과 내러티브는 쌍방향 관계로서 내러티브는 삶을 모방(미메시스)하고 삶은 내러티브를 모방한다.


내러티브적 삶을 강조한 철학자로서는 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와 폴 리쾨르(Paul Ricoeur)가 있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시작, 중간, 종결로 이뤄진 이야기의 형태를 갖고 있다. 인간은 그런 이야기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태어나며 이야기 속 질문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적을 규정한다. 한편 리쾨르는 매킨타이어처럼 삶을 내러티브로 파악하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말해지는 것인데 비해 삶은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쾨르는 내러티브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삶은 이야기를 통하여 반성되기 때문이다.


인문치료는 마음의 병을 해명하고 치유하는 데 있어 다양한 이론과 방법이 필요하다. 인문학이라는 오래된 거대한 창고에는 그에 대한 후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우리의 문제는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연결하여 적절히 활용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내러티브는 인문치료가 치유 이론과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자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내러티브적 성향에 대해 철학과 심리학 분야뿐만 아니라 문학, 심리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돼 왔기 때문에 내러티브적 접근은 인문치료가 지향하는 학제적이고 통합적인 치유를 구축하는 유력한 장을 제공할 수 있다.


인지과학은 내러티브적 인문치료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인지철학자 마크 존슨(Mark Johnson)에 따르면, 내러티브는 출발점-경로-목적지 스키마(SOURCE-PATH-GOAL schema)라는 구조를 갖는다. 존슨은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 스키마를 여행으로 은유화 하는데, 거기에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여행자), 세팅(가능조건), 시작(출발점), 결말(종착점), 적대자(난점), 갈등(충돌)이 있다. 이미 내러티브 테라피가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인문치료의 입장에서 볼 때 내러티브적 치유는 내러티브에 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아를 재구성하고 그 바탕에서 삶의 문제를 재조명함으로써 자신을 제자리에 놓는 치료다.

이영의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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