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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海’를 직시한 지성, 애도·정치·휴먼을 따지다
‘苦海’를 직시한 지성, 애도·정치·휴먼을 따지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10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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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_ 겨울의 표정

 


기상청 발표와 달리 겨울바람이 차고 날카롭게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이깟 날씨쯤이야 뭐 대수롭겠나. 저 깊은 ‘苦海’ 속에 남겨진 이들, 그들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조각난 삶들이 겪어내야 할 뼈를 가르는 한기가 가득하니 말이다. 또, 무지막지한 정치의 세계는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들의 등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후려치고 있으니 말이다. ‘교육 소비자’라고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학생들, 그 여제자를 성추행하는 교수들의 낯뜨거운 지성의 배신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겨울 계간지를 읽어내는 일은 이런 모든 추문과 비정상을 마주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문학과사회> 108호는 ‘2014 한국 문학의 좌표와 방향’을 내세웠는데, 그 기저는 ‘부재하는 이들에 대한 애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함께 마련한 ‘우리 시대의 세속화, 종교, 정치신학’은 특히 교회의 세속화를 성찰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한다. 창간 20주년 기념호로 나온 <문학동네> 81호는 최근 뜨거운 논쟁의 바람을 몰아왔던 토마 피케티를 내세워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여기에 이어 ‘리뷰 좌담: 답할 수 없는 물음의 곁에서-2014년 가을의 한국소설’을 배치했지만, <문학동네> 역시 그 의식의 바닥에는 류보선 편집위원이 쓴 것처럼 ‘세월호와 한국문학’이 한 덩어리로 엉켜 뒤끓고 있다.

사건으로서의 ‘세월호’를 마주하는 방식
이런 흐름은 <역사비평>109호와 <오늘의문예비평> 95호, <창작과비평> 166호에서도 발견된다. <역사비평> 109호는 특집으로 ‘진상규명,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직설적인 의제를 제시했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세월호 사건 이후 <오늘의문예비평>은 파국의 풍경을 견디는 삶의 형식이 ‘인간의 조건을 다시 묻고 (탈)인간의 가능성까지 되묻는 작업 속에서 가능’한 것임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번 겨울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포스트-휴먼’이라는 낯선 사유를 통해 다시 제기하고 있다. <창작과비평> 역시 ‘대화: 세월호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까’를 앞세웠다. 포토에세이 「4·16, 그날 이후」를 수록한 <황해문화> 85호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냈다. 특집으로 ‘다시 한국 정치의 길을 묻다’를 던졌다.


광화문에 운집한 가톨릭 신자들과 교황의 추도예배를 ‘스펙터클한 집단적 애도’로 읽어낸 <문학과사회>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정치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의 상호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는 한국 사회의 현재에 비춰볼 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정치신학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한계와 실패가 곳곳에서 돌출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재의 귀환이라는 형태로, 특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상징적 예에서 집중적으로,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사태는 법과 정치와 종교가 사회적으로 각기 구분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시각에서 <문학과사회>는 「세속화와 정치신학」(홍철기), 「세속화 이후의 한국 문학―기독교, 모더니티, 우주」(이철호), 「교회와 왕국」(조르조 아감벤, 김운찬 번역)을 실었다.


창간 20주년 기념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문학동네>의 기념탑은 류보선 편집위원이 쓴 「‘살인자의 기억법’과 ‘너의 목소리’: 세월호와 한국문학, 그리고 계간 <문학동네> 이십년」이다. 류보선은 “지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슬그머니 세월호 이전으로 퇴행하는 것을 막아세울 수 있는 전방위적인 싸움이며, 세월호 사건을 말 그대로 사건으로 위치시킬 수 있는 치밀하고도 치열한 맥락화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문학’이 예외가 아니라고 거듭 천명한다. “문학이란 쓸모없는 실존으로 격하된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삶에 내재된 가치를 복원시키고 맥락화하는 데 최적화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문학동네>는 그것을 ‘소설’로 재현하고 의미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그렇다면 향후 이들의 작품 행보가 궁금해진다.


‘진상규명’을 내건 <역사비평>은 세 편의 글을 특집으로 묶었다. 한국의 과거사 진상규명 사례들의 쟁점을 검토 평가하고,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진상규명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강성현의 글 「과거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둘러싼 쟁점과 평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 사례를 검토한 김영수의 「남아공 시민사회와 진실화해위원회」, 그리고 미국 9·11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직 과정, 청문회 과정, 진상조사 보고서의 특징을 소개한 장준갑·심인보의 「미국 9·11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과 보고서」가 그것이다. 특히 강상현은 퇴행적인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 지금 이 시점에서 피해자·유족만이 아니라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해 국가와 법 중심을 넘어서 피해자와 사회 중심의 진상규명으로 나아갈 것을 역설했다.


‘포스트-휴먼’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성찰하고 있는 <오늘의문예비평>은 「포스트휴먼과 미래의 공산주의」(정정훈), 「포스트휴머니즘과 문학」(이수진), 「재난의 풍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백태현)의 글을 실어 연속된 질문을 이어갔다. 특히 백태현은 영상이라는 테크놀로지가 세월호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은폐하고 해소시키는 것과 함께, 재난의 책임을 피해 당사자(개인)에게 전화시키는 담론 효과를 발휘했다고 지적하면서, 세월호의 스펙터클화 과정 속에서 진실이 침몰해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국가적 재난의 근원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망각하지 않는 ‘윤리적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화 「이웃집 천사를 찾아서―세월호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까」를 통해 <창작과비평>은 상처입은 영혼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여기서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이웃치유자’ 개념을 빌려 상처의 극복을 말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진은영은 “‘이웃치유자’는 감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의 상황을 잘 관찰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헤아리는 기민한 정신의 결과물이다”라고 소개했다. ‘특별기고’로 실린 백낭청의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2013년 체제론 이후」와 ‘논단과 현장’에 수록한 미야지마 히로시의 「근대극복의 실학연구란 무엇인가」 역시 눈여겨볼만한 글이다.

폐색된 한국정치에 대한 논리적 청산작업
‘다시 한국 정치의 길을 묻다’를 특집에 올린 <황해문화>는 ‘정치’를 내건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사건(세월호 문제 해결)의 진행 과정을 통해 그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집권 새누리당이기보다는 오히려 야당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 야당은 설사 어떻게 해서 다시 집권을 하게 된다고 해도 결코 이 엉터리 국가를 바꾸지 못한다. 한국정치는 바야흐로 극우보수와 온건보수의 간헐적 회전문 시스템 속으로 돌입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 제도정치 시스템 속에서의 야당의 존재를 묻기로 했다. 어떤 기대가 남아서가 아니다. 이 특집은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기대도 남겨두지 않기 위한 논리적, 정서적 청산작업일지도 모른다.” 김명인 편집주간의 말이다. 여기에 참여한 글들은 「한국 정치의 제도와 보수 양당체제의 성립」(황병주), 「비판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등장과 헤게모니의 변화」(강병익),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재집권은 가능한가」(이광일),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숙명과 도전」(장석준), 「한국사회 대중들과 새로운 정치주체의 형성」(김정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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