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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과제론’ 보편성 인정받으려면 전지구적 적용 가능성 검증돼야”
“‘이중과제론’ 보편성 인정받으려면 전지구적 적용 가능성 검증돼야”
  • 교수신문
  • 승인 2014.12.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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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43회차 강연_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한편으로는 근대에 대한 적응 일변도로 나가려는 근대주의자와 맞서면서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건 사회주의건 또 다른 어떤 이름으로건 현존하는 자본주의 현실에 제대로 뿌리박은 전략이 부족한 채 근대극복을 표방하는 자본주의 반대자들과도 구별되는 입장을 규정할 필요가 절실했다.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가 그렇게 해서 성립했다.

‘문화의 안과 밖’ 강연에서 ‘근대성의 검토’를 주제로 진행되는 7섹션의 마지막 여덟 번째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차례였다.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주제로 한 백 교수의 강연은, 그가 지금까지 대결해온 ‘근대 극복’의 작업에 대한 작은 마침표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2일(토) A4용지로 20매 분량의 강연 내용을 준비한 백 교수에게 이날 강연은 어쩌면 16년 전 미국 빙엄텐대학 페르낭 브로델센터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복기하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1998년 12월 백 교수는 처음으로 ‘근대극복과 근대적응의 이중과제’를 언급했다. 근대를 넘어서는 동시에, 또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과제가 우리 몫이라는 진단이었지만, 백 교수의 말대로 이에 대한 반응은 10년이 더 지난 2008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이중과제’의 영어표현인데, 백 교수는 이를 ‘dual project’라고 말하고 있다. 두 가지 과제의 병행이 아니라 ‘이중적인 단일 기획’이란 의미에 그 자신의 힘을 싣고 있다.


백 교수의 말대로 ‘이중과제론’의 발상은 그만의 독창적 산물은 아니다. 이미 1998년 12월의 빙엄텐대학 페르낭 브로델센터 학술대회가 ‘트랜스모더니티’를 내건 데서 알 수 있듯, ‘이중과제론’은 ‘횡단’, ‘가로지르기’의 의미를 내포한 ‘트랜스’모더니티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근대 및 서양 근대문화에 대한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정서’가 이중과제론을 낳은 것은 아니다. 백 교수의 논리로 보면, 먼저 민족문학론의 형태로 이론화됐다가 그것이 범한반도적 현실을 해명하는 개념인 분단체제론으로 진화했으며, 이것이 근대세계 전체에 관한 이중과제론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이중과제의 전제는 ‘근대(성)’이다. 그래서 이중과제가 근대를 먼저 성취한 다음에 극복으로 나가는 순차적 작업처럼 보이는 위험도 있다. 백 교수는 이를 의식해 이렇게 말한다. “근대에는 성취함직한 특성뿐 아니라 식민지 수탈, 노동착취 등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들도 있으므로 그 둘이 혼재하는 근대에 ‘적응’한다는 것이 더 타당한 표현이고, 성취와 부정을 겸하는 이러한 적응노력은 극복의 노력과 일치함으로써만 실효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화하면, “한편으로는 근대에 대한 적응 일변도로 나가려는 근대주의자와 맞서면서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건 사회주의건 또 다른 어떤 이름으로건 현존하는 자본주의 현실에 제대로 뿌리박은 전략이 부족한 채 근대극복을 표방하는 자본주의 반대자들과도 구별되는 입장을 규정할 필요”에서 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가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이중과제론’을 전지구적 과제로 확장한 이날 강연의 주요 부분을 정리한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자료·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이중과제의 개념을 한반도 이외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일단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문외한으로서나마) 살펴보면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가 서로 대조적인 과정이었음은 누가 보나 명백하다. 그런데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곧, 동아시아의 미래 역사가 전지구적 이중과제 수행의 획기적 전범을 만들어내기 이전이라도 동아시아의 전통 자체가 세계체제 변혁에 요구되는 사상적 자원을 이미 내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이중과제를 처음 제기할 때부터 “동아시아 전통 속에서의 道 개념은 유교에서건 불교에서건 또는 도가에서건 항상 진(the true)과 선(the good)의 ‘융합’에 해당하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진과 선을 한때 동아시아의 사고와 실천에서 친숙했던 어떤 궁극적인 수준에서 ‘융합’함이 없이 양자를 ‘나란히’ 추구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이냐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러나 스스로 과학적 인식을 배태하고 지탱해온 역사가 없고 심지어 근대에의 적응을 방해해온 경력마저 지닌 개념이기에 전승된 내용 그대로 오늘의 과제해결에 투입될 수는 없다. 근대적 지식을 수용하면서 넘어서는 힘든 과정을―서양 전통 내부에서 싹튼 비슷한 성격의 작업들과 함께―새로 완수해야 한다. 이 또한 이중과제의 또 다른 면모이다.
거듭 말하지만 근대는 지구적 현실이므로 이중과제론이 일반성을 인정받으려면 그 전지구적 적용 가능성이 검증돼야 한다. 이러한 검증을 위해 지금까지 논의와는 다른 차원의 물음을 던짐으로써 결론을 대신할까 한다.


근대 세계체제가 일단 생기고 난 뒤의 이런저런 이중과제를 시인하더라도, 동일한 개념을 근대가 성립하는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16세기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건설될 때, 단지 구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자본주의의 도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적응하면서 극복한다는 이중과제가 이미 제기됐다고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엄청나게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예지가 필요할 터인데 내가 불감당이라는 점은 긴 말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근대 세계체제의 탄생이 처음부터 무한대의 자본축적을 원리로 삼는 사회체제를 건설하겠다는 배타적인 목적의식의 결과이기보다는 자본주의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가치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복잡다단한 노력들의 산물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 아닐까 한다. 예컨대 프랑스 대혁명이 공식화한―그러나 근대초기의 여러 반봉건적 사회운동들이 내장했던―자유·평등·우애의 가치만 해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는 부분적인 실현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성질이다.


근대의 이러한 양면성을 여러 논자가 주목했고, 월러스틴 자신도 ‘기술공학의 근대성’(modernity of technology)과 ‘해방의 근대성’(modernity of liberation)을 구별하면서 전자를 극복하고 후자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근대’와 ‘근대성’을 엄격히 구별한다면 충분히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러한 구별이 힘든 영어권에서나 자국어로 얼마든지 구별이 가능한데도 영어의 관행을 추종하기 일쑤인 한국 학계에서는 ‘근대’의 극복 없이도 ‘기술공학의 근대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낳기 십상이다. 이는 적어도 근대와 자본주의시대를 동일시하는 월러스틴 자신에게는 달갑지 않은 혼란을 야기하는 꼴이다.


곁가지로 따라오는 질문으로, 근대 성립기의 그러한 복합적 성격에 동의하더라도 이 시기에 한해서는 근대의 ‘성취’가 ‘적응’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니겠냐는 의문이 있을 법하다. 이 또한 간단히 답할 성질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적응’을 고수하고 싶다. 첫째, 근대성의 성취라고 하면 도대체 어떤 근대성이 성취함직한 것이냐는 문제가 이때도 해당한다. 월러스틴이 말하는 ‘기술공학의 현대성’과 ‘해방의 근대성’을 구별할 필요가 당연히 있거니와, 두쎌 등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강조하듯이 근대의 여러 해방적 가치들은 중심부의 근대에 집중된 특징이었으며 이와 동시적으로 식민지에서 전개된 적나라한 착취와 살육은 ‘기술공학의 현대성’이라는 명칭조차 과분한 야만적 성격이었다. 그러므로 근대성을 바람직한 것으로 예단하지 않고 그중 성취할 것은 성취하면서 근대에 ‘적응’해간다는 것이 한층 공정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둘째로, 물론 ‘근대’가 아니던 시기에 ‘근대’가 출발한 이행의 과정이 언젠가 존재했겠지만 역사서술의 영역에서 그 시발점을 확정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새 시대의 도래를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때는 근대이행의 흐름이 이미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일 것이며 그 흐름에 적응하면서 궁극적으로 이를 넘어서려는 ‘이중과제’적 노력이 이미 필요해진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근대초기 이래의 실상과 이중과제론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나 자신은 문학도로서 예컨대 근대초기의 작가인 셰익스피어(1564-1616)가 거대한 역사적 이행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에 수반되는 비극적 손실들, 그리고 다가오는 새 시대를 넘어설 필요성과 가능성을 일찍이 제시했다는 가설을 언젠가 본격적으로 검증해보고 싶다. 또한 1세기 반가량 뒤 후발 근대화지역 독일에서 괴테(1749-1832)가 파우스트 같은 근대인상을 그려냄으로써 한층 의식적으로 ‘이중과제’를 예시했을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런 검증을 해낼 준비가 덜 되었고 본고가 적절한 자리가 아님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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