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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의 근대읽기, ‘文史哲’에서는 어떻게 봤을까?
사회학자의 근대읽기, ‘文史哲’에서는 어떻게 봤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1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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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화제_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시민의 탄생』(송호근 지음, 민음사, 2013) 집단서평회

 

‘집단서평’이란 독특한 서평 방식, 혹은 토론문화를 연 곳은 도서출판 푸른역사(대표 박혜숙)다. 지난달 21일(금) 저녁 7시 30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서평회는 ‘집단’이란 이름을 뗀 형태이긴 했지만, 문제작과 그 저자를 놓고 여러 서평자가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집단서평’의 실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6월 ‘논쟁-대담 서평대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래, 푸른역사측은 도발적이면서도 깊은 문제의식을 던진 책이라면 출판사를 불문하고 집단서평의 무대로 초대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과)의 책 『시민의 탄생: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변동』도 그렇게 해서 눈 밝은 여러 연구자들 앞에 섰다. 이날 서평회는 저자의 집필 배경 설명에서 시작해 김상준(경희대), 김기봉(경기대), 박명규(서울대), 권명아(동아대), 이경구(한림대), 정수복(사회), 손석춘(건국대) 교수 등의 논평으로 이어졌다. 사회사상, 역사학, 국문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머리를 맞댄 셈이다. 이날 저자와 서평자들이 나눈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자료·사진 제공=푸른역사

▲ 지난달 21일 송호근 교수의 책을 놓고 문사철 등 인문쪽 연구자들이 서평을 덧붙이면서 토론을 하고 있다.

송호근: 사회학자들은 외국산 지식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리저리 재단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런 재단은 꼭 갈증을 남긴다. 그때 남는 게 진짜 중요한 문제다. 2006~7년쯤에, “한국의 근대가 어떤 모습이었을까?”란 질문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학문에 있어서 ‘근대’가 불명확하면 사회학(학문)이 서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그게 토대가 돼야 하고, 그로부터 출발 하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는 그게 너무나 명확하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게 되느냐. 한국의 근대는 어떻게 출발하며, 사회과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구축돼 지금까지 왔을까? 그걸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호적 없는 놈이 되겠다. 그래서 뛰어들었다.


근대를 말할 때 사회과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modern individual’ 즉, 개인의 탄생이다. 개인이 있어야 그 개인이 사회를 이루고 시민이 되고, 그로부터 현대적인 현상들이 생겨나간다. 역동적인 개화기 시간대를 ‘말안장 시대’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코젤렉의 개념을 빌린 것이다. 그때야 말로 중세가 저물고 근대가 생겨난 시간이다. 그때 어떻게 근대적 개인들이 역사의 구조를 뚫고 올라왔을까, 여기에 대한 관심이 이 책을 만들었다. 『시민의 탄생』은 3부작 중 두 번째 권이고, 거기에 이은 3권에 대한 이야기는 ‘국민의 탄생’이 될 것이다.

김상준: 근대라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발을 디딜 수 없는 것인가, 라는 느낌을 준다. 서양의 근대를 모델로 해서 우리 역사에 투사하는 한, 그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 18세기 즈음부터 지금까지의 세계는 서구 문명이 압도적인 우위를 행사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쪽이 절대적 우위를 점해온 시기는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18세기 이전에는 3~4개의 동등한 문명이 공존하면서 교류했다. 근대를 문제시하는 한, 서구중심주의적 관점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니겠나.

김기봉: 코젤렉의 개념인 ‘말안장 시대’라는 건 메타포다. 큰 의미를 가진 게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의미 부여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말이 바로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가지고 현실을 (재)구성하는데, 아이러니하다. 말이 사건이라면, 개념은 중층적 구조다. 코젤렉이 왜 개념사를 했는가. 개념사 문제의식은 근대성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아니고, 근대에 대한 병리학적 고찰이다. 개념에 내재해 있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코젤렉의 용어로 하면 경험공동과 기대지평, 이 두 시간대의 충돌, 이것을 통해서 근대가 어떻게 병리학적으로 전개돼 왔는가? 코젤렉의 문제의식으로 한국 개념사를 한다면, 한국 근대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가 아니라, 인민, 시민, 민중, 민족 개념이 만들어낸 한국 근대의 병리적 현상을 해명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명규 : 큰 스케일, 긴 호흡, 체계적인 사고가 이 책의 장점이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을 연결해 높은 추상적 개념 말고 중간 수준 개념들을 연결시켜서 적절한 결합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생긴 이 책의 특징은 역사학자들이 밝혀놓은 현실에다 적절한 이름을 붙여 줬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제목과 관련, ‘탄생’이라는 말이 매력적이지만 엄밀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맹아의 출현을 말하는 건가, 잠재태가 역사에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자기 모습을 (완숙체로) 드러낸 때를 말하는 건가? 언제를 탄생이라고 할 거냐에 따라서 어느 시기, 어떤 성격, 어떤 조건을 말하느냐가 달라지는데, 탄생이란 말은 애매함을 주는 포괄적인 용어다. 인민과 시민과의 관계도 그렇다. 인민 안에서도 ‘문해 인민’, ‘자각 인민’ 등이 있는데, 이게 어떻게 시민으로 연결되는가? 이게 설명 돼야 한다.

권명아 : 한국적인 근대를 규명하는 이론 안에서는 젠더의 시각은 어디에도 들어갈 수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를 바라보는 문제틀 자체에 있어서 (젠더적 시각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게 되는 지점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사상사적 접근의 문제도 있다. 일차자료가 사상사의 기본 텍스트다. 그걸 중심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 그것의 기저에 있는 여성사, 구술사, 서발턴 연구, 이른바 기층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사를 참고하지 않은 것 같다. 사상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를 대신할 수 없다고 본다. 사상사가 전체를 대체하려고 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사상사의 틀을 고수하는 한, 방법론을 아무리 바꿔도 사상사가 하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경구 : 책에서 동학의 여러 측면을 부각했는데, 동학이 개인의 자각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니냐. 동학은 자각인민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국민으로 쉽게 호명될 수 있는 그런 측면,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저자는 동학의 자각성, 개별성을 강조를 했을까. 자각인민에서 시작해서 시민으로 가는 이 패러다임이 개입된 게 아닌가. 내가 봤을 땐 이건 출발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언문공론장, 거기서 탄생한 동학. 중세와의 고리가 거기서 많이 끊어지는데,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앞의 시기 그러니까 18세기의 ‘민(백성) 패러다임’에서 배태되는 것들과의 연관이 더 강하다고 본다. 실제 개인이라는 걸 자각하고 시민으로 호명되고 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물결로 형성된 게 아닐까.

손석춘 : 공론장 개념을 어떻게 쓰시는지 의문이 들었다. 공론장 개념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지식 중심, 지성인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동학 농민군이 돌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인간이 된다는 것,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 하시는데, 그런 전개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럼 그 전엔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 전에도 신분제도와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싸워왔고, 투쟁해온 것들이 있었는데…….

정수복 : 사회자지만 토론자 역할을 하고 싶다. 손석춘 선생의 공론장 연구가 2005년에 나왔는데, 같은 연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쓴 책을 보지 않았다. 저자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한계가 있지 않나 지적하고 싶다. 이 책의 참고 문헌에도 그런 점이 여실히 들어난다. 이미 연구돼 있는 연구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이 섭섭하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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