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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 <37> 김진우의 ‘언어’
우리시대의 고전 <37> 김진우의 ‘언어’
  • 장영길 동국대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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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13:21:15

 
20세기 벽두,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가 ‘일반언어학 강의’(1915)에서 주창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기존의 ‘역사주의’ 학풍을 쇄신해 공시언어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이 ‘구조주의’는 언어학 영역을 넘어 모든 학문 연구의 패러다임으로 발전해 20세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기실 20세기 학문연구에서 구조주의를 빼고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을 만했다.

그러나 구조주의 언어학의 약점들이 하나 둘씩 발견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됐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무렵, 미국의 젊은 언어학도 노엄 촘스키는 펜실바니아대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스승은 구조주의 문법의 대가 해리스(Z. Harris) 교수였다. 이 당시 촘스키는 구조주의가 표방하는 행동주의 및 실증주의 언어학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구조주의 언어학에 반기를 든 신호탄이 바로 ‘통사구조론’(1957)이며, 흔히 변형생성문법의 표준이론으로 불리는 ‘통사이론의 제양상’이 간행된 해는 1965년이었다.
촘스키의 언어에 대한 기본 시각은 이성주의다. 그에 의하면, 언어연구의 의미는 그 자료를 액면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나타나는 인간의 심리작용과 인식력을 설명하는 데 있다. ‘우리가 인간의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특유한 정신적 특성, 즉 인간의 정수를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촘스키의 지적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제 구조주의 문법에서 객관적, 과학적 기술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배제됐던 언어직관이나 의미, 이성 등이 다시 언어학의 무대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언어습득이 모방과 강화를 통한 학습과정이며 언중의 언어구사는 이 훈련의 결과라고 보는 행동주의 언어관에 제동의 쐐기를 박고, 인간의 언어습득과 구사는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창조적인 언어능력이 주위 환경과 만나서 나름대로 발휘된 것이라고 본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론은, 하지만 애초부터 구조주의 문법에 깊이 중독돼 있는 우리 국어학자들에게 철저히 홀대를 받거나 외면당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서울대 언어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국어학회가 1974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국어학에 접목하는 방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약관의 나이에 도미해 1963년 워싱턴대에서 영문학 학사를, 그리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영문학 석사와 박사를 마친 청년학도 김진우 박사가 47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의 언어학도들을 위한 언어학개론서를 한국어로 간행했는데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언어’(탑출판사 刊)다.

이 책의 구성은 다른 개론서가 갖는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학부 강의에 맞춰 장을 조절한 것이 이색적이라면 이색적이다. 즉, 한 학기 15주의 강의일정에 맞춰 전체를 15장으로 구성했다. 주요 내용을 보더라도, ‘언어학의 과제’, ‘동물의 언어’, ‘언어의 기원’,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언어의 계보’, ‘언어의 진화’, ‘언어와 문학’ 등 입문서의 성격을 띰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이 책은 저술 동기에 맞게 까다로운 언어 현상을 쉽게 풀어 평이한 문장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통달한 상황이어서 용례 하나를 들더라도 양 국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기존의 몇몇 변형생성문법 이론서들이 통사론 중심으로 기술돼 있는 것에 비춰 이 저서는 언어학 전 영역에 걸쳐 구조주의 언어학의 기술 방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절묘하게 가미했다. 그러므로 구조주의 문법 이론에 빠져있는 국어학자들도 별 저항감 없이 읽고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저서의 국어학사적인 의의라고 한다면, 그 동안 변형생성문법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이를 배척하던 국어학자들에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구조주의와 아울러 변형생성문법의 입장에서 언어학 개론을 기술해 줌으로써 변형생성문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도왔다는 점이다.

이제 시간은 흘러 변형생성문법이 이 땅에 유입된 지도 한 세대가 지났다. 그 동안 우리의 언어 환경과 언중도 바뀌었으며 그에 따라 언어도 달라졌다. 그리고 언어학의 영역도 새롭게 개척되고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 책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한 권의 고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전은 고전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미래에 언어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나 최현배의 ‘우리말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반드시 김진우의 ‘언어’도 한번쯤은 탐독해야 할 것이다. 언어학 개론서는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깬 이 책이 오늘날에도 충분히 그 신선함을 발휘하리라 생각된다.


 
김진우(1935~ )
1958년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해부터 3년간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으로 근무했다. 1961년 도미, 1963년 워싱턴주립대에서 영문학 학사, 이듬해 캘리포니아대에서 언어학 석사, 1966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 이래 줄곧 일리노이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언어학과 학과장으로 재직중이다. 1983년 안식년을 얻어 귀국, 1년간 연세대에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국내 학생들과의 수업을 계기 ‘언어’를 저술했다. 그 외 ‘Sojourns in Language’ ‘China’s Minority Language Policies:With Special Reference to Korean’ ‘Korean and Other Languages: contrasts and Concords’ 등 수십 권의 영문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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