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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에 걸친 考證 그리고 번역의 美德이 도달한 곳
5년에 걸친 考證 그리고 번역의 美德이 도달한 곳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09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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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번역된 『돈키호테』의 매력

▲ 구스타브 도레가 「우리의 착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두 번째로 집을 나서는 이야기」(『돈키호테』 1권, 제7장)에 그려넣은 삽화. 왼쪽은 번역자인 안영옥 고려대 교수. 사진제공=열린책들

“얼마 전 라만차 지역의, 그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어느 한 마을에 한 이달고가 살고 있었다. 예사 이달고들이 그렇듯이 그의 집에는 창걸이에 창이 걸려 있고, 오래된 방패와 비쩍 마른 말 그리고 사냥개 한 마리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라만차의 괴짜 기사 돈키호테의 괴상망측한 무용담이며, 이 이야기의 저자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 즉, ‘세르반테스’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 우리가 만났던 『돈키호테』는 완역판이 아니었다. 번역을 한 안영옥 고려대 교수(스페인어문학과)는 5년의 고증과 스페인에서의 답사를 거쳐 국내에서는 만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한국어판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작품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읽어야 그 작품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완역정신’을 세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돈키호테』 2권까지 모두 2백자 원고지 6천700여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번역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안 교수는 “제대로 된 『돈키호테』 한국어판 완역본을 번역한다는 것은 스페인 문학을 전공한 이래 오랜 숙원이었기에 오랜 시간과 열정을 다해 임할 수 있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원고지 6천700매로 그려낸 완역판
열린책들(대표 홍지웅)이 출간한 이번 작품은 1605년 출간된 전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돈키호테』 1권), 1615년에 출간된 후편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El ingenioso caballro don Quijote de la Mancha』(『돈키호테』 2권)로, 원작이 갈고 있는 原質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책 두 권 모두에는 현재까지 그려진 『돈키호테』의 삽화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도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 100점을 수록했다.


아무래도 이번 번역본은 ‘번역자’의 수고에 점수를 더 줘야할 것 같다. 안영옥 교수는 번역을 위해 스페인에 체류하면서 『돈키호테』에 나오는 구어체 표현이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이 포함된 이야기들을 제대로 옮겨 오고자 고심했다. 마드리드대학의 교수에서부터 연로한 스페인 노인들에게까지 다짜고짜 묻고 다니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세르반테스가 가졌던 그 느낌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으로 돈키호테가 모험을 찾아다녔던 모든 여정을 따라가기도 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돈키호테가 처음으로 모험을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선 몬티엘 들판에서부터 푸에르토 라피세의 객줏집, 풍차 마을 크립타나,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 시에나 모레나, 엘 토보소, 알마그로, 몬테시노스 동굴, 루이데라 늪, 페드롤라, 바라타리아 섬, 바르셀로나까지, 라만차와 아라곤과 카탈루냐 지역의 마을과 도시로의 여정을 안달루시아까지 이어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곳들까지 답사를 마쳤다. 이 사소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발로 쓴 ‘답사’와 꼼꼼한 번역어가 만나 빚어진 게 『돈키호테』 완역이다.


실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마지막을 이렇게 서술했다. “오직 나만을 위해 돈키호테는 태어났으며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 그는 행동할 줄 알았고 나는 그것을 적을 줄 알았다. …… 네 소원은 다름 아닌, 기사도 책에 나오는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사람들로 하여금 증오하도록 하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돈키호테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로 인하여 그런 이야기들은 이미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비틀거리니, 마침내 완전히 넘어지게 되리라, 안녕.” 여기 이 ‘오직 나만을 위해 돈키호테는 태어났으며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라는 대목은 번역자에게 그래도 대입해도 좋을 것 같다.


안 교수는 번역후기에 이렇게 썼다. “많은 독자들은 아직도 이 책이 왜 성서 다음으로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지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이러한 문제가 본 번역서만으로 부족하다면, 그것을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책임으로 여겨 돈키호테 해설서로 다시 독자들을 만나도록 준비할 것이다.” 이번 완역판 『돈키호테』를 읽으면, 성서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될 수밖에 없었던 『돈키호테』의 비밀스러운 매력을, 그리고 작가 세르반테스의 한없이 깊은 문학의식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우회적 지적이다.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에 탐닉하다가 정신을 잃어 기사가 되겠다고 나선 한 엄숙한 미치광이와 순박하고도 단순한 그의 종자가 만들어 낸 인간 최대의 희극이자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방대한 분량, 작품이 탄생된 시대적 배경 등 이 작품의 해석 지평은 해가지지 않는 지평선 같이 드넓을 수밖에 없다.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의 문인들과 지성들은 돈키호테를 ‘현실의 거울’이라 칭하며, 세르반테스의 철학이야말로 인간 삶과 권리와 정의를 위한 이상적인 개혁이라고 보았다.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라고 말했고, 소설가 플로베르는 “『돈키호테』 속에서 나의 근원을 발견했다”라고 토로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도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라고 극찬했다.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제트는 “세르반테스의 문체가 어떤 것이며 사물에 접하는 그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 텐데……”라고 말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숭고한 메시지
‘풍차 모험 이야기’를 담은 1권은 『돈키호테』의 절반의 이야기일 뿐이다. 1권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2권의 내용은 『돈키호테』라는 작품의 전체적인 완결성을 부여하고 현대 문학론의 싹을 움틔웠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번역자인 안영옥 교수는 『돈키호테』를 읽어야하는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정리했다. “세르반테스는 웃음이라는 탁월한 장치 속에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녹여 『돈키호테』를 집필했다. 그가 창조한 인물과 사회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소유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의 삶을 살아가라는, 시대를 초월한 숭고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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