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의 번역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학술명저번역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3년간 6억5천만원이 지원되는 이 역주사업의 총괄책임자인 권중달 중앙대 교수(동양사학)는 6명의 역사학 박사로 공동연구원단을 구성, 자못 무모해 보이는 이 일에 전력으로 매달리고 있다.
“1년에 90권씩 번역하면 3년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6명이 2인 1조로 일을 분담하기로 했죠. 1인당 15권씩 맡아 초벌 번역하고 조원끼리 바꿔서 1차적으로 교정을 본 다음 제가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순서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원로 한학자 몇 사람을 섭외해서, 의혹 가는 부분을 따로 검토(윤문)받는 것도 추진하려해요. 최대한 정확성을 기하겠지만, 오역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후학들이 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겠죠.”
‘자치통감’은 축약본, 주석본, 편집본이 많기로 유명하다. 송·원·명·청 네 왕조 8백여년을 거치면서 무려 1백여 종류가 넘게 나왔다. 요즘은 백화문(현대 중국어)으로 풀어쓴 게 널리 읽힌다. 권교수는 이들을 대부분 곁텍스트 삼았다. 그리고 저본은 청조말 고증학의 대가 고힐강이 교정한 ‘자치통감’으로 삼았다. 송말원초 사람인 호삼성이 ‘자치통감’에 음주를 단 것에, ‘명대사상사’의 저자 용조조가 구두점을 찍고, 고힐강이 이것을 다시 교정 본 것이다. 대사상가들의 손을 두루 거친 판본이라 본토에서도 정본으로 통한다고 한다.
인용된 경전 구문과 독특한 문체가 난관
권 교수는 될 수 있으면 최대한 풀어서 옮겼다. 좀더 많이 사람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다. 허나 원전의 관직명, 지명 등 고유명사는 엄격하게 원어(고어)에 따라 표기했다. 대신 나중에 따로 ‘자치통감지명색인’을 펴낼 계획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독자들은 중국의 지리에 약해서 수많은 영웅들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그린 자치통감을 이해하기 위해 그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文史哲이 무시로 녹아든 ‘자치통감’ 번역은 특히 ‘경전학’에 능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경’, ‘서경’ 뿐 아니라 ‘주역’ 같이 비교적 인용도가 낮은 경전들의 경구가 갑자기 튀어나와, 일일이 뒤져 찾아보고 문맥을 이해해야 번역이 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한다. 이 부분에서 오역이 발생할 가능성도 물론 높다. 간결한 속에 많은 것을 담는 함축성 높은 문장도 커다란 장벽이다.
‘동국통감’이 ‘자치통감’을 서술모델로 삼았던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자치통감’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됐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 정작 속내를 보면, 축약본인 강지의 ‘통감절요’가 한문학습용으로 널리 읽혔을 뿐이요, 지식인 사회에서도 주자가 편한 ‘자치통감강목’을 경전처럼 외듯 했을 뿐이다.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을 뿐, 연구의 대상으로 접근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권 교수는 지적한다. 현대에는 더 심각해져서 이름은 자주 거론되지만, 통독한 이는 한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권교수는 “내 작업이 개념 위주로 공부하는 사학계의 원전 기피증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하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