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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자치통감』 1차분 완역한 권중달 중앙대 교수
인터뷰 : 『자치통감』 1차분 완역한 권중달 중앙대 교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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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13:13:49

 
동양사학 3대 명저로 꼽히는 ‘자치통감’의 국내 첫 완역이 시작됐다. 북송시대 역사학자 사마광이 기원전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1,362년간의 중국사를 써내려간 방대한 규모(2백94권)의 이 책은 이번에 전한시대편 30권(권9~권38)이 완역됐다.

‘자치통감’의 번역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학술명저번역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3년간 6억5천만원이 지원되는 이 역주사업의 총괄책임자인 권중달 중앙대 교수(동양사학)는 6명의 역사학 박사로 공동연구원단을 구성, 자못 무모해 보이는 이 일에 전력으로 매달리고 있다.

“1년에 90권씩 번역하면 3년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6명이 2인 1조로 일을 분담하기로 했죠. 1인당 15권씩 맡아 초벌 번역하고 조원끼리 바꿔서 1차적으로 교정을 본 다음 제가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순서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원로 한학자 몇 사람을 섭외해서, 의혹 가는 부분을 따로 검토(윤문)받는 것도 추진하려해요. 최대한 정확성을 기하겠지만, 오역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후학들이 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겠죠.”

 
한학자, 사학자, 중문학자 중 ‘자치통감’ 번역의 嫡子는 누구냐는 질문에 권 교수는 “당연히 사학자”라고 대답한다. 무엇보다 ‘자치통감’이 역사서이고, 따라서 번역 과정에서 역사 속의 사건들, 인물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 교수의 지휘 아래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연구원들은 오대사, 위진남북조사, 명대사 등을 전공한 박사학위 소지자들. 다들 기본 요건은 갖췄지만, 강의를 많이 맡고 있어 전력을 쏟지 못하는 형편이라 한다.

‘자치통감’은 축약본, 주석본, 편집본이 많기로 유명하다. 송·원·명·청 네 왕조 8백여년을 거치면서 무려 1백여 종류가 넘게 나왔다. 요즘은 백화문(현대 중국어)으로 풀어쓴 게 널리 읽힌다. 권교수는 이들을 대부분 곁텍스트 삼았다. 그리고 저본은 청조말 고증학의 대가 고힐강이 교정한 ‘자치통감’으로 삼았다. 송말원초 사람인 호삼성이 ‘자치통감’에 음주를 단 것에, ‘명대사상사’의 저자 용조조가 구두점을 찍고, 고힐강이 이것을 다시 교정 본 것이다. 대사상가들의 손을 두루 거친 판본이라 본토에서도 정본으로 통한다고 한다.

인용된 경전 구문과 독특한 문체가 난관

권 교수는 될 수 있으면 최대한 풀어서 옮겼다. 좀더 많이 사람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다. 허나 원전의 관직명, 지명 등 고유명사는 엄격하게 원어(고어)에 따라 표기했다. 대신 나중에 따로 ‘자치통감지명색인’을 펴낼 계획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독자들은 중국의 지리에 약해서 수많은 영웅들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그린 자치통감을 이해하기 위해 그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文史哲이 무시로 녹아든 ‘자치통감’ 번역은 특히 ‘경전학’에 능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경’, ‘서경’ 뿐 아니라 ‘주역’ 같이 비교적 인용도가 낮은 경전들의 경구가 갑자기 튀어나와, 일일이 뒤져 찾아보고 문맥을 이해해야 번역이 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한다. 이 부분에서 오역이 발생할 가능성도 물론 높다. 간결한 속에 많은 것을 담는 함축성 높은 문장도 커다란 장벽이다.

‘동국통감’이 ‘자치통감’을 서술모델로 삼았던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자치통감’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됐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 정작 속내를 보면, 축약본인 강지의 ‘통감절요’가 한문학습용으로 널리 읽혔을 뿐이요, 지식인 사회에서도 주자가 편한 ‘자치통감강목’을 경전처럼 외듯 했을 뿐이다.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을 뿐, 연구의 대상으로 접근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권 교수는 지적한다. 현대에는 더 심각해져서 이름은 자주 거론되지만, 통독한 이는 한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권교수는 “내 작업이 개념 위주로 공부하는 사학계의 원전 기피증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하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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