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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정신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인문정신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12.01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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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튄 한남대 대학원 ‘대학과 인문학’ 세미나

“많은 대학이 인문학을 포기하고 있으나 인문학을 특화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역발상도 충분히 검토 가능하다.” 인문학과들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인 상황에서 한남대 대학원이 지난달 26일 개최한 세미나 ‘대학과 인문학’에 눈길이 간 이유다. 안증환 대학원장은 “인문학을 어디에,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세미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이 흔히 문·사·철로 대표되는 학문 분야 혹은 학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사회학·사진)는 그래서 ‘인문학’ 대신 ‘인문정신’이라는 말을 제안한다. 김 교수가 발표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문정신」에서 인문정신을 어떻게 길러낼지를 제안한 부분을 발췌했다. 정리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사회학). 한남대 홍보팀 제공
어떻게 하면 생명의 물둥지인 인문정신을 길러낼 수 있을까? 우선 소그룹으로 인문고전을 되씹어보는 활동이 들판의 풀처럼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이벤트식의 운동이 아니라 생활과 지역과 자기 주위를 둘러보는 풀뿌리운동으로 인문고전 되씹기 운동이 퍼져야 한다. 인문고전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오래 전부터 인정받은 고전들이 있지만 현대고전들도 많이 있다. 그것에 더해 매일 우리가 보는 신문이나 잡지가 또한 현대고전이다. 이것들을 곁들여 함께 읽고 씹어보는 소집단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것은 개별운동이나 비공식 소그룹으로 이뤄지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대학의 제도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학 4년 동안 100여권의 고전을 필히 읽고 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인문고전은 다이제스트식의 요약본이 아니라 원본 중심으로 독회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탁월한 지도자를 따라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에 맞는 자기들끼리 고전을 뜯어 읽고 이 시대에 맞게 고쳐 읽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교과과정에 반영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 학교는 모두가 다 이과와 문과로 나눠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다. 대학에서도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예체능계의 교과목이 아주 다르다. 전공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사는 데는 통찰력을 갖고 사는 것이지 전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공계열 학생들에게는 인문사회과학 계통의 기초학문을, 인문사회와 예체능계 학생들에게는 자연과학의 기초학문을 상당 수준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학문계열의 기초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교과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정과 마을에서는 특히 어른들이 먼저 인문고전을 조금씩 읽고 가족과 젊은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른이나 젊은이는 위계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인문정신을 기르는 데 참여하는 것으로 보면 옳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 대학에 맞춘다면 교수와 직원들이 고전 공부에 함께 깊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동시에 온갖 교리에 경도된 종교들이 자기들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공동의 인문운동을 함께 펼친다면 그 파급효과는 매우 크고 강할 것이다. 가장 변화하기 힘들고 스스로 개혁하기 힘든 존재들이 그들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달라진다면 다른 세계는 아주 쉽게 달라질 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엉뚱한 인문개혁운동이 펼쳐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일까. 특히 우리 대학의 경우 기독교 교과목에만 집중돼 있는 것을 풀어서 다양한 종교들을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인문운동은 방향전환 운동이요, 숨통을 틔우는 운동이면서, 막힌 담을 허는 해방운동이다. 거기에는 기존의 강력한 것을 파괴하는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특히 지금처럼 물질이 모든 삶의 기초가 되고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과 같은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문운동은 변혁된 새로운 사람이 되자는 운동이요, 생명을 중심에 두는 운동이며, 건실한 생활을 이끌자는 운동이다. 이렇게 될 때 과학기술은 새로운 인문운동에 연대하는 기초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과 인문운동이 연대하는 차원에서만 새로운 길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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