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20:00 (화)
[과학쟁점]보건복지부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 입법예고
[과학쟁점]보건복지부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 입법예고
  • 교수신문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10-19 12:07:58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본격화 된 것은 1997년 체세포 복제 방법을 이용한 복제양 돌리의 탄생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게만 느껴 왔던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가 이제 인간도 복제될 수 있다는 구체적 우려로 다가온 것이다. 국내에서는 체세포 복제를 통한 이종간 교잡, 인간배아연구, 유전정보의 상업적 이용 등이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진행돼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 바 있고, 최근엔 복제인간을 국내에서 출산하겠다는 단체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명윤리를 다룰 법률안이 최근에 와서야 구체화 됐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9월 23일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을 입법 예고하고 구체적인 법제화 작업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이 논의에 앞장서다

국내에서 생명공학의 안전과 윤리적 문제를 다룰 구체적 법률안의 논의는 정부가 아닌 몇몇 국회원들이나 시민단체들로부터 시작됐다. 외국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생명공학 기술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규제와 금지법들이 시행되고 있거나 의회에 제출돼 있는 상태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내에는 생명공학을 육성하기 위해 1983년에 제정한 생명공학육성법이 유일한 관련 법안이었다. 1997년 복제양 돌리 사건 이후 몇몇 국회의원들이 인간 개체복제를 막기 위한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00년 중반으로 들어오면서 국내 상황은 크게 변하게 된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과 맞물려 인간 유전정보를 이용해 상업활동을 하는 각종 벤처기업들이 생겨나 유전 정보의 오남용 문제가 제기됐고 동물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이식하는 체세포 복제가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또한 불임시술을 하고 남은 잔여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의 구체적 반응은 2000년 겨울에서야 시작됐다.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는 산하에 ‘생명윤리자문위워원회’를 구성해 관련 문제를 논의토록 했고 2001년 5월에는 위원회 활동의 결과물인 ‘생명윤리기본법(안)’이 완성됐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복지부도 생명공학의 안전과 윤리를 다룰 통합적 법률안을 준비해 공청회를 개최했다. 복지부의 공청회와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활동은 더욱 큰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즉 생명공학에 대한 산업적 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을 내세우는 측과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고려하면서 발전해야 한다는 측이 팽팽히 맞서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과 정부의 미약한 입법의지가 서로 맞물려 관련 법안의 국회 제출은 계속 미뤄지게 됐다. 최근에는 법안의 주무 부서를 놓고 과기부와 복지부가 마찰을 빚기도 했고 결국 국무조정실의 중재로 복지부가 주무부서로 결정돼 이번에 법안을 발표하게 됐다.

논쟁의 핵심, 배아복제 문제

과기부나 복지부의 법안 중에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배아복제의 허용 여부였다. 배아복제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국내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의학적 가능성을 지닌 배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여서 상업적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선 인간배아의 배양과 파괴가 필수적이고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었다. 이번 법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체세포 핵이식은 금지하되 현재 진행중인 연구에 대해서는 예외규정을 적용하도록 했다. 또한 이 문제를 앞으로 설치될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토록 했고, 3년 후 법개정을 고려하는 일몰규정을 두기도 했다. 덧붙여 불임시술 후 남은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는 의학적 가능성을 고려해 허용토록 했다.

이런 내용의 법안이 발표되자 엇갈린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그 동안 법제화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시민사회단체들은 입법자체는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저버린 체세포 복제의 사실상 허용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일부 과학자와 재계는 관련연구의 위축으로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체세포복제와 이종간 교잡을 허용하고 인간개체복제만을 막을 법안을 요구했다.

이번 법안의 또 다른 특징은 개체복제와 배아연구 뿐만 아니라 유전자검사, 유전자 치료 등을 두루 담은 통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외국과 달리 생명공학에 대한 규제와 관리 시스템이 부재한 국내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논쟁성과, 실제 정책 반영 지켜봐야

이번 법안의 최종 내용 못지 않게 그간의 사회적 논쟁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관련 논쟁이 있을 때마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쟁점 사안에 대한 양극단의 주장만을 여과 없이 내보내며 갈등을 부추긴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쟁점 사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이 과정 속에서 논의가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측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쟁점이 됐던 배아복제 문제만 해도 1999년의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시민합의회의, 2000~2001년의 과학기술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여러 차례의 공청회 및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토론과 논의가 있어왔고 이 과정에서 인간배아 연구는 의학적 가능성을 고려해서 제한적으로 허용하더라도 배아복제와 이종간교잡은 금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덧붙여 그 동안 만능으로 알았던 체세포 복제의 실질적 효용성과 한계, 외국의 사례, 대안으로 제기 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 연구 성과, 난자를 제공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 체세포복제에 대한 생물의학계 내부의 이견 등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표출됐다.

이처럼 생명윤리법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슈가 되는 과학적 주제를 놓고 각계 각층이 참여해 토론을 벌인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 정책과정이 소수의 전문가나 이해당사자에 의해 결정됐던 그 동안의 국내 상황에 비춰볼 때 이런 의미 있는 작업들이 실제 정책에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김병수 객원기자 bskim@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