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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 발표장 확대 … 영문학 연구자들의 세대간 대화 독특
학문후속세대 발표장 확대 … 영문학 연구자들의 세대간 대화 독특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1.24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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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어영문학회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개최

 

한국에서의 영어영문학 연구 반성을 화두로 삼아 창립 40주년(1994)을 기념했던 한국영어영문학회가 2014년 학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코스모폴리타니즘: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주제로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이화여대 삼성교육문화관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한국 현대영미시학회 등 개별 영어영문학 관련 학회들의 발표와 더불어 초청학자 세션, 대학원생 세션, 특별기획으로 풍성하게 진행됐다. 학문 공동체의 구심점의 하나로서 학회가 학문후속세대에게 더 많은 발표 기회를 만들어주고, 이들의 새로운 연구를 눈여겨보고 진작하는 것은 영어영문학회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에 덧붙여 첫째 날 마련된 학회 창립 60주년 기념 특별 기획 ‘영문학 연구와 한국 인문학: 유종호, 김우창, 이상섭, 도정일’의 무게도 예사롭지 않았다.

특별기획의 무게감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특별 기획에는 유성호 한양대 교수(국문학), 문광훈 충북대 교수(독문학), 이경덕 연세대 강사, 이승렬 영남대 교수가 참가해 각각 유종호, 김우창, 이상섭, 도정일 교수의 영문학을 재단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진단했다. 이들의 진단에 대해 언급된 교수들이 나서서 에둘러가지 않고 직접 화답했다. 성급히 말한다면, 이런 기획은 ‘특별 기획’보다 상설화하는 게 좋고, 그것도 더 많은 학제적 접근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유종호는 한국 현대비평사의 살아 있는 고전이자, 지금도 해박한 문헌 섭렵과 해석을 통해 비평의 정점을 보여주는 현재형 비평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유성호 교수는 「인문주의적 통찰과 주체적 읽기로서의 비평―유종호와 한국 현대문학」을 통해 유종호 비평의 본질을 ‘인문주의적 통찰’로 읽어냈다. 그는 영문학자 유종호의 비평가적 특질을 이렇게 평가했다. “유종호 비평의 한 축이 문학의 고전주의적 통찰에 있다면, 다른 한 축은 문학적 언어에 대한 기초를 결여한다거나 설익은 관념을 나열한다거나 언어의 소리 자질에 대해 무지하다거나 하는 현상에 대한 적극적인 경계와 비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을 기지와 순발력으로가 아니라 고전적 품격을 하나하나 축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해야 한다는 명제와 만나게 된다.”


이에 대해 유종호 교수는 「몇몇 회고적 소견」 으로 대답했다. 유 교수는 오늘날 대중관리사회에서 문학향수를 비롯한 예술향수는 우리에게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자유의 영역이지만, 다른 오락 매체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문학의 장래는 밝은 것이 못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영문학을 위시한 서양학이 자칫 자폐적 성향으로 흐르는 국학에 대해서 해독제로 작용하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문학자 김우창’을 두고 흔히 ‘이성적 심미주의자’라는 평이 뒤따른다. 「한국 인문학과 김우창」을 발표한 문광훈 교수는 김우창의 시 비평의 섬세한 감각에서부터 이성적 심미주의에 이르는 특정 부문들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일군 ‘한국 인문학’의 의미를 읽어냈다. 사실 문광훈 교수는, 독문학자라는 분과학문 구분으로 볼 때, ‘김우창의 영문학’을 감식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또 문 교수만큼 김우창 교수의 학문과 비평 세계를 조명해온 이도 드물기 때문에 그의 평가는 여전히 경청할 부분이 많다.


김우창 교수는 문광훈 교수가 던지지 않은 부분, 즉 결여된 곳으로부터 대답( 「영문학에 접선하기―영문학과 그 지평」)을 내놨다.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스스로 본격적으로 영문학을 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는 한국에서의 영문학 연구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근대 영문학을 공부한다면, 그것은 로크,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사상적 테두리,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여러 물질적 사회적 범주의 배경 안에 문학을 놓게 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위에 말한 여러 테두리, 서구의 다른 나라의 전통, 한국, 동아시아, 원시사회 등의 지평에 비춰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럴 때, 영문학은 참으로 한국의 사회와 문화에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Yorick, 농구, 그리고 윤동주―이상섭과 문학비평의 효용」을 통해 ‘이상섭’을 논한 이경덕 강사는 이상섭 교수에게 배운 직계 제자다. 그는 ‘이상섭의 영문학 연구’를 이렇게 평가한다. “선생님은 모든 ‘주의’와는 거리를 두면서 경험적 현실과 구체적 역사를 중시하므로, ‘자세히 읽기’는 오히려 그러한 ‘주의’의 ‘주의됨’을 해체하는 작업으로서 인문학자의 학자적 양심과 직결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문학자 이상섭’은 시인 윤동주와 깊이 연관된다. 이상섭 교수가 일찍이 한글사전 편찬과 한국문학 읽기를 병행하면서 이를 깊이 일궈냈다는 점이 ‘윤동주’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상섭에게 윤동주는 이 땅에서 영문학 하기의 구체적인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영문학 연구와 실천적 지성의 의미
이에 대한 이상섭 교수의 대답은 「영문학 교육 40년 1962-2002」로 돌아왔다. 그는 동학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영문학자로서, 영문학을, 그것도 셰익스피어 시절의 영문학을, 그것도 4번을 고쳐서 읽은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해설을 곁들이면서 4.4조나 7.5조로 옮겨서 셰익스피어 한 줄과 우리말이 한 줄로 되게끔 번역하고 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지만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도정일의 비판적, 실천적 지성과 한국 문화이론」, 이것은 이승렬 교수의 글이다. ‘실천적 지성’과 ‘문화이론’이 들어가 있는 게 시선을 끈다. “그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비평에서 그치지 않고, 비평 속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실제 현실 속에서 ‘기적의 도서관’이나 ‘후마니타스 칼리지’ 같은 공적으로 출중한 제도를 통해 실현시키면서 도 교수의 공적 행복은 절정을 이룬다”라고 이 교수는 읽어냈다. 이론을 비평으로, 비평을 다시 현실로, 현실에서 변화를 일궈간다는 독법이다. 그는 ‘한국인 영문학자로서 도정일’의 기여를 서구의 다양한 문화이론 검토에서 찾았다. “도 교수의 일차적인 업적을 꼽으라면 아마도 유럽의 68 문화 운동이 낳았던 다양한 문화이론, 예컨대 포스트/마르크시즘, 페미니즘, 해체론, 에콜로지 및 여러 소수자 이론들의 비평적 적실성(relevance)을 검토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이 교수의 지적을 확인해주듯 도정일 교수는 「인문학적 공영역과 시민의 책임」을 거듭 환기했다. “한국 인문학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인문학의 가치와 교육목표 자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연결시키고 문명의 문제들과 교육을 연결시키는 적극적 방법의 모색”이라고 말하는 도 교수는 ‘대학 교양교육의 목표와 내용과 방법을 부단히 개혁하거나 개선해나가는 일’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의 가치는 또한 시민교육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다. “인문문화적 가치를 알고 유지하고 전승할 수 있는 시민적 능력”을 가진 시민을 기르는 것이 인문학의 할 일이다. 이것이 도 교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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