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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시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도서정가제 시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11.24 12: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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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창남 한양대·비교문학

▲ 이창남 한양대·비교문학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개정돼 이달 21일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특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에 대해 비판적인 보고서를 제출해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보고서 요지는 새 도서정가제는 “책값을 높이고 비효율적인 기업을 시장에 잔류시켜 소비자의 후생의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단행본 출판사들이 이 정도로 성장한 것은 그동안 시행돼온 도서정가제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러한 출판사들을 매개로 더욱 많은 양서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소비자들에게 정가제는 과연 손실이 될까.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값이 오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실제 KDI의 보고서에서도 정가제가 시행되는 유럽과 그렇지 않은 영미권의 책값을 비교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유럽의 책값이 높게 나타난다. 정가제가 가격경쟁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서점의 허용 할인율 폭을 기존의 19퍼센트에서 15퍼센트 이내로 묶는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도서유통기관들이 가격에 개입할 폭이 다소 줄어든다. 이것이 가격할인 능력이 제한적인 동네서점의 경쟁력을 얼마나 강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유통기관들 사이의 출혈경쟁을 다소 완화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책값은 비싸지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맡게 될 것인가. 다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인구 1억도 되지 않는 한국어 독자의 규모에는 유럽적 도서 유통모델이 더 적절하지, 수 억 명을 대상으로 하는 영미권 유통모델은 적합하지 않다. 일본에 비해 한국의 출판산업이 뒤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도 독서가능 인구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독자들도 몇 천 원 더 비싼 가격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출판산업을 지탱해줄 수 있는 독자 규모도 충분하지 않은 나라에서 한국어로 양서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출판문화산업의 재정적 근간이 되는 소비규모, 요컨대 언어권별 사용언어 인구를 고려하지 않고, ‘가격’을 기준으로 한 일률적인 시장 판단은 출판유통의 상황과 전망을 적잖이 왜곡하고, 몸에 맡지 않는 옷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출판산업이 일방통행식 시장논리를 피해가기란 쉽지 않다. 대학가 서점들이 사라지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일부 서점들은 임대료가 싼 음습한 모퉁이로 이동한지도 이미 오래다. 또한 한 때 출판 유통의 중축을 이루던 지역의 도소매점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몰락하고 말았다. 1999년 이후 전체 책유통의 35퍼센트를 장악하게 된 인터넷 서점과 대형 유통망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의 거점 서점들이 사라지고, 중앙의 분점들이 지역에 포진하는 유통의 과점화 경향은 1997년 IMF를 기점으로 가속화됐다.

물론 IMF 당시 국내 책유통의 중축이었던 도매점들이 부도를 내면서 출판계 자체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재정이 부실한 도매점에서 책값을 대신해서 받던 문방구 어음이 만기가 돼 출판사로, 인쇄소로 되돌아오면서 영세한 업체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할인율이라는 명목 하에 소수 유통업체에 보다 큰 폭의 가격결정권을 위임하고, 중소 서점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그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다. IMF 당시 출판계의 위기는 도매점의 허약한 재정구조보다는 주먹구구식 상거래 관행과 출판사들의 소수 도매점 의존도가 높은 데서 비롯된 문제였다. 이는 도매점, 출판사, 인쇄소 등의 도미노식 몰락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소수 유통기관들이 출판시장을 독점하고, 이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다시금 과거 도매점과 같은 왜곡된 시장구조를 재현할 따름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는 가격경쟁을 완화해 지역의 중소서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양성과 전문성을 가진 다종의 도서를 양산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철저히 시장논리에 내맡겨진 출판산업이 어떤 책을 만들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할인율을 소폭 줄이는 선에서 그친 이번 개정안도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출판산업의 활로를 열고, 지역의 거점서점들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과감하고 근본적인 도서정가제의 정착을 시도해야 한다.

이창남 한양대·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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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그럴까 2014-12-22 14:13:24
'독자들도 몇 천 원 더 비싼 가격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 아 그럼 그 몇 천원 더 비싸진 것 때문에 서민들의 지갑 사정은 악화되고 가난한 자들은 아예 책도 안보고 노가다나 뛰어라는 말이네요? 잘나셨습니다그려

이명박 2014-12-31 02:19:33
독자들도 몇 천 원 더 비싼 가격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출판산업을 지탱해줄 수 있는 독자 규모도 충분하지 않은 나라에서 한국어로 양서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 참... 방귀대장 뿡뿡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