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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누가 ‘제왕적 대통령’을 논하나
[신문로 세평]누가 ‘제왕적 대통령’을 논하나
  • 송기도 전북대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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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11:57:57
송기도/전북대·정치학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새천년 민주당 이인제 전 고문, 박상천 최고위원, 정균환 총무 등은 대통령 한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있는 권력형 정치부패와 국민분열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막기 위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점차 확산돼 한나라당, 자민련 등은 물론이고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들도 호재로 삼아 보도하고 있다.

사실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1987년 민주화이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논쟁보다는 대통령제와 내각제 등 국가의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고, 대개 선거가 끝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대통령제를 처음 만들고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엄격히 지켜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의회와 법원의 권한을 침해할 경우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은 말 그대로 18~19세기 절대군주와 같이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고, 수많은 고위관리와 의원, 대법관 등을 임명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바로 ‘제왕적 대통령’인 것이다.

외국의 대표적인 사례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멕시코의 대통령들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경우는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멕시코의 예를 보자. ‘아스텍 황제’, 또는 ‘6년의 독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멕시코 대통령들은 국회의원이나 주지사는 물론이고 차기 대통령까지 지명해왔다. 물론 2000년 이전까지 70여 년간 ‘제도혁명당’은 모든 대통령, 대부분의 주지사, 그리고 90%이상의 국회의원을 선거를 통해 당선시켰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의 말을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말 그대로 대통령 임기동안(6년 단임)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멕시코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유일한 것은 자신의 재선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주장하고 ‘분권적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들이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설마하니 20년 전에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의 폐해를 지금에 와서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정말 ‘제왕적 대통령’일까. 야당이 의회와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제왕과 같은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을까. 정치학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념(의미)의 다양성, 애매성 또는 기만성이라더니 정말 어렵다.
엄격한 삼권분립에 바탕을 두고 있는 대통령제는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집중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부형태이다. 그러나 ‘현대정치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과 정당정치의 발달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도 변화됐다. 쉽게 말해, 의회가 ‘여대야소‘인 경우와 ‘여소야대’인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은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현행 대통령제는 전형적인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포함한 변형된 대통령제이다. 따라서 모든 잘못된 정치를 제도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운영을 묘를 살려 제대로 된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한 걸음 한 걸음 지켜 나가야한다.
프랑스는 선거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의회를 ‘구국적 결단’(?)이라는 3당 합당이나 의원 빼오기 같은 방법이 아니라 ‘동거정부’(cohabitation)로 운영했다. 그리고 1952년부터 2000년까지 24번의 선거를 치른 미국은 16번의 여소야대 의회가 있었으나 아무 일 없었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되고 통제돼야 한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덜 ‘제왕적 대통령’인, 그리고 여소야대의 의회로 인해 대통령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한 김대중 정권 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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