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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 이궁과 고보리 엔슈의 미학이 남긴 과제
가쓰라 이궁과 고보리 엔슈의 미학이 남긴 과제
  • 교수신문
  • 승인 2014.11.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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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 일본의 정원에서 ‘일본미의 해답’을 읽다

 

▲ 가쓰라 이궁의 연못. 사진출처=위키디피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대표 브랜드다. ‘일본편 4 교토의 명소’까지로 해서 그의 2년에 걸친 일본미 탐색 작업은 일단 마무리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4 교토의 명소』(창비 刊)에는 유 교수가 그간의 ‘일본편’ 답사를 마무리하면서 쓴 「일본 답사기를 마치며」가 실려 있다. 이 글에서 유 교수는 자신의 일본답사기를 두고 “일본학 입문서가 되기를 희망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일본 문화사의 기본 상식을 담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이번 ‘일본편 4 교토의 명소’는 그의 말대로 ‘庭園’이 주제다. 그는 “일본 정원의 역사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일어나면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원 양식이 계속 탄생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몇 차례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실상 정원은 하나의 생활세계인 동시에 우주다. 이 세계를 어떻게 조성하느냐의 문제는 문화사와 지성사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유 교수의 접근은 방향을 정확히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30년 일본 답사기를 완결지은 것도 좋은 포석으로 보인다.


유 교수는 헤이안시대 침전조 정원만 먼저 나온 책 3권에서 다뤘고, 나머지 정원들은 모두 이번 책에서 소개했다. 그가 “이 책은 사실상 교토의 아름다운 정원을 두루 답사하는 순례기이다”라고 말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유 교수는 책에서 일본 정원이 어떻게 변했고, 이때 일본의 역사는 어떤 상황이었으며, 어떤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는가 등 평소 저자가 즐겨 말하던 ‘미분 풀이’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쉽게 말해, 눈앞에 펼쳐진 정원이란 미적 대상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정신사적·지성사적 콘텍스트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렇게 봤을 때, 이 책에서 가장 광채 나는 부분은 제4부 에도시대의 별궁을 다룬 곳이라 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별궁인 가쓰라리큐(桂離宮)과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에서 ‘일본 정원미의 해답’을 읽어냈다. 특히 저자의 말마따나 가쓰라 이궁에는 희대의 作庭家인 고보리 엔슈(小堀遠州)의 ‘아름다운 사비(寂び)’의 미학이 반영된 지천회유식 정원의 아름다움이 가득했던 것이다.

30년 일본답사기 완결과 ‘정원의 미학’
그렇다면, 유 교수가 만난 ‘지천회유식 정원’, 그리고 ‘아름다운 사비’의 미학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거기에 원근으로 존재하는 지성사의 장면은 또 어떤 것일까. ‘일본 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가쓰라 이궁을 가리켜 소설가 시가 나오야(志賀直哉)는 ‘장편소설의 명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별궁이 건축적 가치를 새롭게 과시할 수 있었던 데는 일본인 자신의 재발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20세기 대표적 건축가인 독일의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1880~1938) 의 공이 작용한다(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39년 『일본미의 재발견』이 이와나미 서점에서 번역 출간됐다). 브루노 타우트가 유럽에 전한 일본미의 재발견은 유럽의 건축·디자인·가구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쳐 20세기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속속 교토를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르 코르뷔지에도 이즈음에 일본을 방문했다.


가쓰라 이궁은 에도시대에 교토 서쪽 가쓰라강 건너편에 한 왕자와 그의 아들이 2대에 걸쳐 조영한 지천회유식 정원으로 1만7천평 부지에 御殿인 서원 한 채와 茶屋, 정자 여남은 채가 연못가와 언덕 위 곳곳에 배치돼 있을 뿐이다. 이곳을 두고 유 교수는 “금각사, 은각사 같은 대단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시대 지방 다이묘의 거대한 정원인 가나자와(金澤)의 겐로쿠엔(兼六園), 오카야마(岡山)의 고라쿠엔(後樂園)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스케일이다. 이에 비하면 가쓰라 이궁은 단아한 정원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양 현대건축에서 횡행하는 거대한 스케일, 요란한 장식, 기발한 디자인 같은 것에 기가 죽어 있었던” 일본인들과 달리, 벽안의 브루노 타우트는 이 가쓰라 이궁에서 전혀 다른 가치를 발견했다. 브루노 타우트는 “가쓰라 이궁에는 기능, 합목적성, 그리고 철학적 정신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건축적 미덕이 있다”라고 고평했다. 저자의 말처럼, 기능, 합목정성, 철학은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를 세우며 현대건축의 당면 과제로 내건 토털 디자인의 핵심적 내용이었다.


유 교수는 브루노 타우트가 존경을 표했던 가쓰라 이궁의 작정가인 고보리 엔슈의 미적 취향에서 ‘와비사비’(わび·さび[侘·寂]: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를 가리키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를 읽어낸다. 고보리 엔슈가 추구한 미학을 일본인들은 “본래 사비란 누추한 것, 쓸쓸한 것, 가난한 것을 의미했는데 그 정신만을 간직하고 아름다운 형식으로 구현했다”고 봤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이를 왜 아름다운 ‘와비사비’라 하지 않고 아름다운 ‘사비’라고만 하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아마도 와비와 사비의 미묘한 차이 중 사비에 해당한다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럼 감각적 감별가지는 알지 못하고 엔슈 취향이 와비보다 사비에 가깝다는 뜻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라고 털어놓는다.


주인공의 시선을 보자. “가쓰라 이궁은 참관자를 위한 通用門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명장면을 보여준다. 들어서면 몇 걸음 안 가서 오른쪽으로 이궁의 본채인 서원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본격적으로 지천회유를 즐기기 위한 小路가 열린다. 바로 앞에는 안쪽으로 쑥 들어간 연못가 끝에 가지를 넓게 펼치고 복스럽게 자란 소나무 한 그루가 의젓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양옆으로는 높은 생울타리가 길게 뻗어 있어 연못이 빠끔히 비칠 뿐이다. 처음부터 연못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조경임이 분명한데 이를 ‘가림막 소나무’, 일본말로 ‘쓰이타테(衝立) 소나무’라고 한다.”


유 교수의 시선은 마침내 지천회유식 정원의 핵심인 ‘연못’에 도달한다. “족히 3천평은 돼 보이는 넓은 연못의 생김새는 심하게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보다도 더 구불구불하고 반도처럼 길게 뻗어나온 곳이 많하 항공사진이 아니고서는 그 형상을 종잡을 수 없다. 그리고 연못 가운데는 세모난 섬과 네모난 섬을 다리로 연결한 神仙島가 있어 어느 지점에서 보아도 이 섬에 가려 연못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물길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연못의 크기를 무한대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는 “가쓰라 이궁의 정원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걸음걸음마다 달라지는 풍광의 변화가 너무도 다양하다”라고 놀라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움과 함께 “한 굽이 돌 때마다, 연못가를 거닐 때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다정에 올라설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놓치기 싫어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된다.”

일본인들이 제시해야할 새로운 대답
유 교수는 가쓰라 이궁이 “생황미·정신미·서정성 등 정원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브루노 타우트의 평가에 수긍한다. 타우트는 가쓰라 이궁의 결정적인 매력을, 우아한 삶, 높은 도덕, 고상한 취미를 다 담아내면서도 그것을 어떤 일본 주택보다도 ‘문자 그대로 간소하게’ 처리한 데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것을 ‘인문정신’이란 말로 짧게 요약했고, 여기에 현대적인 ‘일본미의 해답’을 과제로 걸쳐놓았다. 고보리 엔슈에 의해 개화된 일본미가 300년이 흐른 오늘, 어떤 모습으로 일본에서 피어날지, 오늘의 일본인들이 그에 대한 새로운 대답을 내놓아야할 차례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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