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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남원’에 모인 이유
그들이 ‘남원’에 모인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14.11.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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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학회 동학농민혁명 제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동학농민혁명 제120주년을 맞아 동학학회(최장 최민자)가 지난 7일 전북 남원시에서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 남원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와 과제’를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남원 동학농민혁명의 성격을 규명해온 지금까지의 연구를 총정리하고, 관련 사료를 검토하는 동시에 향후 과제와 전망에 대한 고찰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미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남원시가 주최하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학회 후원회 공동후원으로 개최됐다.


최민자 동학학회 회장(성신여대·정치외교학과)은 “이번 학술대회는 남원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그 역사적·문화적 의의를 성찰하며 그 결과를 학술대회를 통해 공론화함으로써 남원의 정체성 확립과 문화적 역량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특히 동학농민혁명사에서 남원이 차지하는 역사적 비중을 사료 연구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전라도 지역 최초의 동학 전파지인 남원의 위상을 제고했다”라고 의미를 매겼다.


전북 남원은 김개남이 주도한 전라좌도의 대도소 설치와 더불어 대접주인 유태홍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의 결집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지역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7만여 명이 집결한 남원대회가 열렸던 곳이자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던 방아치 전투를 치렀던 곳이다. 또한 남원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동학 경전의 주요 부분이 편찬됐던 곳으로 동학의 종교적·사상적인 기초를 다진 공간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이처럼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와 가치를 21세기 글로컬 시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남원 지역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발전적 과제에 대한 통찰을 통해 미래적 전망을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이화 전 동학동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성격과 현재적 의미」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으며, 학술대회는 1, 2부 개별 발표에 이어 3부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발표논문은 「은적암과 초기 남원지역의 동학」(임형진, 경희대), 「1894년 남원 대도소의 9월 봉기론과 김개남군의 해산 배경」(신영우, 충북대), 「남원지역 토착 동학농민군의 조직과 활동」(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조사연구부장), 「동학농민혁명 이후 남원 출신 동학인의 동향」(조규태, 한성대), 「동학 경전에 나타난 근대정신과 남원의 정체성」(조극훈, 경기대),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사적 고찰과 미래적 과제」(채길순, 명지전문대) 등이다. 특히 신영우 충북대 교수는 김개남군의 조기봉기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군대의 전투 역량 부족 등 당시 실정을 지적했다. 신 교수는 “김개남과 남원대도소의 조기봉기론은 동학농민혁명 전 과정을 볼 때 시의가 적절했던 주장으로 보인다. 전봉준과 손화중 등 재봉기를 늦추려고 했던 시도가 관철됐지만 그 결과 동학농민군은 추운 겨울철에 고지의 적을 향해 공격하는 어려운 전투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게 됐다. 이것은 수많은 동학농민군을 지휘해서 전투에 승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군사지도자로서 문제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원 출신 동학인의 동향을 정리한 조규태 한성대 교수는 “남원지역의 천도교인들은 신·구파로 분화된 후 6·10만세운동의 추진에 참여했고, 남원에 신간회 지회를 설치하고 그 임원으로서 신간회운동을 추진했”으며 이후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지적 계보를 형성했다고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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