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4:05 (토)
학술대회 참관기 :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역사학자 공동학술토론회’를 다녀와서
학술대회 참관기 :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역사학자 공동학술토론회’를 다녀와서
  • 정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10-19 11:29:57
정영훈 /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치학

지난 3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는 남쪽의 단군학회와 북쪽의 조선력사학회의 공동주관하에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남북 역사학자들의 공동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남북의 민간단체들이 공동주최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평양에서 개최한 ‘개천절민족공동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것으로, 비록 2시간 반의 짧은 일정에 그쳤지만 남북의 학술연구단체가 주관하여 이 땅 안에서 학술회의(토론회)를 개최한 최초의 사례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 같다.

이 행사의 발단은 1998년 봄 단군학회(회장 윤내현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북측의 사회과학원을 수신으로 해 단군 및 민족문제에 관한 남북한 공동학술회의를 제안한 데서부터 비롯됐다. 알다시피 북한은 1993년 사회과학원 명의로 ‘단군릉발굴보고’를 내놓고, 단군이 5011년 전에 실재했던 실존인물이며, 고조선은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의 이른 시기에 평양지역에서 건국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단군학회는 단군 문제가 민족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통합을 도모하는 과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모여서 1997년 12월 ‘단군과 민족문제에 관한 열린 토론의 장’을 표방하면서 창립됐다. 학회에서는 창립 이후 북한의 상기와 같은 동향을 주목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남북이 공동의 인식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절감했으며, 그같은 점을 들어 북측에 대해 학술교류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번의 행사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그간 남북간에는 수 차례에 걸쳐 학술회의 일정에 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순조롭지 않아서 무산돼 왔었는데, 이번에 개천절남북공동행사가 성사됨에 이르러서야 빛을 보게된 것이다.

토론회는 개회선언에 이어 조선력사학회의 허종호 회장(사회과학원)과 단군학회의 윤내현 회장이 개막사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서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정창규 소장과 우리측 이형구 부회장(선문대 사학과 교수)의 공동사회로 남북 각 5명씩의 발표자들이 번갈아 연단으로 나가 각기 10∼15분씩 준비된 논문을 요약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행사장에서의 상호토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으며, 서로간의 궁금증은 남북 발표자들이 모두 모여 인사하였던 좌담회 시간과 여러 차례의 오찬-만찬시간 및 답사여행과정에서 동행한 북측 학자들과의 대화-토론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북측의 요청으로 ‘공동보도문’이 작성돼 학술회의 말미에 양측 회장의 공동낭독으로 발표됐다는 점이다. 그 내용의 요지는 ① 단군은 역사상 실재한 건국시조이고, ② 우리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며, ③ 고조선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을 기본영역으로 한 강대국이었다는 점 등과, ④ 남북간 학술적 유대 및 공동협조를 강화하고, ⑤ 남북 역사학자들의 연대를 통해 민족사연구를 심화시켜 나자는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보도문’에는 남북이 학문적 차원에서 견해를 같이 한 내용들이 정리된 바, 이 ‘공동보도문’ 작성과정에는 남북간에 많은 학문적 토론이 있었다. 우리로서는 북측만이 아니라 남쪽의 학계로부터도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내용으로 채우기 위하여 노력했는데,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단군을 정립하는 문제를 두고 남측 학계와 보다 확대된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번의 학술모임은 그 명칭이 ‘공동학술토론회’로 붙여졌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술세미나 형식과 비교하면 여러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 적대적 관계를 지속해온 남과 북이 이제 비로소 학술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방북과정에서 남과 북은 학술교류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고 많은 부분에서 인식을 같이했다. 남북의 학술분야 교류협력이 보다 진전돼 그를 통해 남과 북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학문적 성장을 이룩하는 가운데 겨레의 통일과 발전이 앞당겨지기를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