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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담론의 정치성 확보는 새로운 의제 실천 지점"
"젠더 담론의 정치성 확보는 새로운 의제 실천 지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1.04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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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39회 강연_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의 '여성·젠더·제도:근대의 패러독스']

▲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지난달 25일(토) 진행된‘문화의 안과 밖’39회차 강연은 ‘근대성의 검토’를 주제로 진행되는 7섹션의 네 번째 강연이었다. 강연자는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사회학)로, 주제는 ‘여성·젠더·제도: 근대의 패러독스’였다.
조은 교수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83년부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을 했다. 또 그는 한국여성학회 회장을 지낸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절반의 경험, 절반의 목소리』(1996),『 성 해방과 성정치』(공저, 2002) 등 다수의 관련 논문과 저서를 냈으며, 6·25전쟁을 여성들의 가족사 체험으로 재구성한 장편소설『침묵으로 지은 집』(2003)과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도시빈민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사당동 더하기 22』(2009)를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회학의 새로운 갱신에 눈돌린 이‘여성운동가’사회학자는 식민지하‘신여성’에 주목하면서 이것의 담론화를 각별히 읽어냈다. “일제하에서 신여성이 과잉 담론화됐다면 해방 이후 최근까지 신여성은 과소 담론화됐다. 신여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평가되고 담론화됐는가는 한국 사회 젠더 정치의 면모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이며 또한 담론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해방이후에서 최근까지‘신여성’에 대한 관심의 (무)의식을 읽어내는 한편,‘ 근대의 패러독스가 작동하는 공간’을 겨냥해 나갔다. 즉,“ 한국사회에서 여성 노동력 참가나 경제활동은 근대 프로젝트의 일부였지만 성평등적 관점에서 보면 근대의 패러독스가 작동하는 공간이었다”는 것. 물론 이러한 독법은 젠더 관점에서 여전히 제기되는 과제를 환기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조은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담론화하고 젠더 담론의 정치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페미니스트에게는 여전한 과제일 뿐 아니라 새로운 의제(agenda)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는 실천의 지점이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사진·자료 제공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는 양가적 기대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페미니즘의 객관성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기에‘객관적’으로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며 주체와 대상의 초월 및 분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위치 및 상황적 지식에 관한 것이다.

여성과 젠더는 고정된 범주와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 범주와 개념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흔히 성(sex)은 생물학적 성, 즉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 그리고 젠더는 사회문화적 성별 또는 남녀의 사회적 관계 등으로 간략하게 정의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정의 자체가 페미니즘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다. ‘여성’과‘남성’이라는 기표는 그 사회의 기의를 품은 기호이고 당연히 사회문화적이다. 여성과 남성이 그들이 처한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호명된다면 이는 고정된 범주일 수 없고 맥락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여성·젠더·제도’라는 주제를 사회 세력이 각축하는 젠더 담론, 즉 한국의 근대에서 담론적 사건이라 불리는‘신여성’과 한국사회‘압축 근대화’와 시장화에서 여성과 젠더가 차출되고 호명되는 방식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여성, 젠더, (성별)제도가 초기 근대성과 만나는 지점으로‘신여성’은 주목할 만하다. 신여성은 우리의 근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담론적 사건이기에 우리의 근대(성) 형성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점한다. 신여성(New Woman)은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여성을 지칭한다. 1920년대에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 등 신여성 1세대로 불리는 여성들이 등장했고 곧이어 신여성은 모던 걸의 이름을 얻으며 유행의 흐름을 탔다. 일제하 조선 사회에서 신여성에게 요구된 것은 여성지식인으로서 여성 민중을 계몽하는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자유로운 여성’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식민지 근대와 조우한‘자유롭고자 한 여성’은 신여성이라는 ‘문제적’범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여성운동의 논제는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신여성은 현상에 비해 오히려 담론이 과잉 생산됐다는 것이다.

여성과 젠더는 근대의 패러독스가 가장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장이다‘. 여성’은
‘여성’이라고 호명하고자 한 사회세력에
따라 의미도 의도도 다르기에 고정된 범주가
아니라 유동적인 의미 투쟁의 장이다.

일제하에서 신여성이 과잉 담론화됐다면 해방 이후 최근까지 신여성은 과소 담론화됐다. 신여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평가되고 담론화됐는가는 한국 사회 젠더정치의 면모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이며 또한 담론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1950, 1960년대는 신여성들을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이미지화함으로써 반론 없이 신여성을 비난하는 논리를 폈다. 1970년대의 신여성에 대한 관심은 가부장제에 저항한‘신여성’이 아니라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 지식인에 대한 관심이며 1980년대 오면서 신여성에 대한 조명은 계급론적인 입장이 강하게 나타난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신여성(나혜석, 김일엽(원명 김원주),김명순 등)과 사회주의 계열의 신여성(허정숙, 강경애, 박진홍 등)으로 분류하고 이러한 시각은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와 여성학자들이 신여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90년대 후반에 오면 신여성 담론은 전통 대 근대, 식민 대 민족, 계급 대 성의 다중 구조에 주목한다. 이는 신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담론의 구조와 젠더 재생산 기제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2000년대에 오면서 신여성은 젠더화된 근대와 근대 민족주의 담론의 역설적 지점으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식민지 하에서와는 다른 더 다층적 이유로‘과소’담론화된 셈이다.

근대 한국 사회에서‘여성’은 산업자본주의화와 맞물려 ‘남성의 직장’과‘여성의 가정’이라는 성별분업과 성별분리에서 시작됐다. 한국사회에서 여성 노동력 참가나 경제활동은 근대 프로젝트의 일부였지만 성평등적 관점에서 보면 근대의 패러독스가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여성과 젠더, 그리고 완고한 성별분업 구조는 한국사회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역설적 공간이기에 남성은 온전한 시민이자 자본가 혹은 노동자로서 존재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의 이성애적 성적 대상으로서 남성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 존재라는, 온전하지 않은 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젠더 불평등/평등은 평등 지향 근대의 패러독스가 발화하는 장이 된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건만이 상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까지도 상품이 된다. 여성 몸의 상품화, 그리고 자본화는 후기 근대사회의 징후적 특성이기도 하다. 경쟁적이고 또 성애화된 사회에서 불평등한 젠더가 불평등한 계급관계와 어떻게 교환되는지 그리고 여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세계 시장의 상품이 되는지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근 근본주의의 부상은 근대성의 위기와 연결돼 있고 여성과 젠더영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성과 젠더는 근대의 패러독스가 가장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장인 것이다. 근대 이후 여성은 공사 분리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남성과는 다르게 국가, 사회와 관계를 맺게 됐다. 이때‘여성’은‘여성’이라고 호명하고자 한 사회세력에 따라 의미도 의도도 다르기에 고정된 범주가 아니라 너무나 유동적인 의미 투쟁의 장이다.

성평등은 누가 원하고 있는가 또는 누구에게 불편한가라는 물음을 새롭게 제기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성평등은 다른 평등과 어떻게 교차하고 평등의 욕망과 미망은 어떻게 제조되고 제도화되는가에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여성의 차이와 연대의 문제는 젠더 담론의 뜨거운 감자다. 젠더를 정체성으로 정립한 이론적 성과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에서‘일대 전환’을 의미한 것은 분명하지만,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담론화하고 젠더 담론의 정치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페미니스트에게는 여전한 과제일 뿐 아니라 새로운 의제(agenda)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는 실천의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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