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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도 못되는 대학원생_ 절반이 ‘부당 처우’ 경험
乙도 못되는 대학원생_ 절반이 ‘부당 처우’ 경험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11.03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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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보다는 여학생, 석사보다는 박사 과정에서 빈번

“없는 시간을 쪼개서 쓴 논문의 제1저자와 교신저자를 교수들이 다 갖고 가서 유일한 성과인 논문 실적도 쌓지 못해 졸업을 못하고 있다.”(공학계열 대학원생 A씨·28세)

“나를 자신의 액세서리처럼 연구와 전혀 상관없는 특정한 모임에 데리고 다니며 교수 본인의 과시를 위해 학생을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 B씨·25세)

‘이 곳(설문조사)에서라도 말하고 싶다’며 국내 대학원생들이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 토로한 고충 사례들이다. 청년위는 서강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 등 14개 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전국 대학원생 2천354명을 대상으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가 ‘갑을’ 관계를 넘어 ‘주종’ 관계에 가까운 현실이 민낯을 드러냈다.

국내 대학원생의 절반가량(45.5%)이 교수로부터 언어폭력이나 성희롱, 사적인 업무 지시, 저작권 침해 등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부당한 처우를 경험한 사례는 남학생(41%)보다는 여학생(52%)이, 석사(41%)보다는 박사(54%) 과정 학생이 더 많았다. 예체능 계열은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는 대학원생이 절반을 넘었다(51%).

대학원생들이 경험한 부당한 처우는 모욕적 언행이나 성적 비유, 성희롱 등 ‘개인 존엄권’ 침해(31.8%)가 가장 많았다. 의약계열 대학원생 C씨(31세)는 “논문 심사 날 다과를 준비했는데 ‘이런 싸구려를 가져 오냐. 넌 논문 두 번 다시 못 쓸 줄 알라’며 다과를 집어던지면서 폭언과 폭행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공학계열 D씨(26세)는 “술자리에 참석한 여학생들을 외모로 등급을 매긴 후 놀려서 모욕감을 느꼈다. 싫다는 의사표현을 구체적으로 했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고 말했다.

교수의 개인적인 일에 동원되는 등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는 일도 빈번하다(25.8%). 교수 자녀의 과외를 무료로 해주는 것(자연계열 E씨·31세)은 물론 학교 숙제나 과제, 에세이 등을 대필해 준 대학원생도 있었다(자연계열 F씨·25세). 어떤 교수는 일요일에 참여하는 종교 활동을 하지 못하게 강요하고(자연계열 G씨·26세) 결혼할 거라면 학업을 그만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공학계열 H씨·26세). 공학계열 I씨(26세)는 “운전, 설거지, 쇼핑 등 자잘한 심부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한다”고 털어놨다.

논문이나 학점, 장학금을 빌미로 선물이나 접대, 금품, 노력 제공 등을 요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학업연구권 침해 20.2%). 인문사회계열 J씨(32세)는 “논문 심사 명목으로 심사위원 1인당 최소 50만원에서 10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라며 “심사 중 한우나 고급일식당 급의 식사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요즘도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인건비가 나오지만 그 인건비가 나오는 통장과 도장을 강제로 걷어 간다”는 교수도 있었다. 공학계열 K씨(22세)는 “처음에 알고 들어온 분과는 너무 달라 박사과정을 다른 곳에서 한다고 지도교수에게 간곡히 말했지만 7시간가량 폭언과 협박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논문이나 연구 실적을 가로채는 일도 여전하다(저작권 침해 9.5%). 인문사회계열 L씨(26세)는 “공동연구로 시작한 논문을 혼자 완성했으나 지도교수의 연구 실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저자에서 배제됐고, 다음 논문도 공동으로 한다고 하더니 계획서 제출 이후 저자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며 하소연했다. 같은 계열 M씨(23세)는 “내 논문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차, 내용을 추가하라고 해서 작성해서 제출했더니 교수 연구에 사용하고 내 논문에서 다시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며 어이없어했다. 자연계열 N씨(27세)는 “학위과정에서 자르겠다고 잦은 협박을 하더니 교수 부인의 이름을 공저자에 기재하라고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그냥 참고 넘어간다(65.3%). 시정을 요구하거나(4.5%)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교수 3.0%, 지인 8.6%, 대학·국가기관 8.7%)는 24.8%에 불과했다. 혹시 학점이나 졸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다(48.9%).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43.8%)는 것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나(9.9%) 숨기고 싶어서(1.1%) 그냥 넘어가는 학생도 꽤 있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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