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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가 밝힌 ‘연구자를 유혹하는 것들’
제보자가 밝힌 ‘연구자를 유혹하는 것들’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4.11.0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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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 이후 10년

▲ 2005년 황우석의 논문조작을 제보한 류영준 교수(사진)가 지난달 열린 연구포럼에서 황우석 사건을 되돌아봤다.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이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논문조작이 밝혀지기 전까지 온 국민은 황우석에게 난치병 치료에 대한 희망과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라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거짓이란 게 밝혀졌을 때, 그것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진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연구원의 난자를 실험에 이용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연구 행위가 드러나며 우리 사회가연구윤리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보여줬던 계기였다. 이 모든 건 한 사람의 제보로 인해 밝혀졌다. 제보자는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영화「제보자」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가 황우석 사건 이후 10년이 지나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4 연구윤리 국제포럼’ 기조강연자로 나선 것이다. 류 교수는 ‘연구자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황우석 사건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짚어냈다.

한때는 황우석의 연구실에서 5년간 연구팀장을 지냈던 류 교수였지만 “연구윤리를 저버리고 위험한 상태를 더 이상 지속시킬 수 없단 판단으로 제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우석이 체세포를 기증한 소년의 몸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임상실험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임상실험을 하게 되면 소년은 암 유발 등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황우석의 연구논문 조작 등의 문제를 알고 있었던 류 교수는 그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지켜볼 수 없어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제보를 했다. 아무도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제보한 결과는 고통스러웠다. 류 교수는 내부고발자란 낙인이 찍혀 다니던 병원을 그만둬야 했고,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당시 황우석은 과학자가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2005년 황우석은 줄기세포 논문 발표 이후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황우석의 논문조작 의혹 방송이 나간 이후, 류 교수는 “상식의 저항을 느끼고 있었던 건 국민 뿐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해 11월 대통령조차 기고문을 통해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수십명의 교수, 박사들이 사기극을 벌이고 있고, 세계가 그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말인가?”라고 밝힌 것이다.

방송사는 비난의 대상이 됐고, 매체에서는 제보자 색출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류 교수는 신분을 숨긴 채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진실은 이대로 덮히는 듯 했다. 그러나 포스텍이 운영하고 있는 바이오 관련 연구정보 제공센터 ‘브릭’의 게시판에 한 과학자가 황우석의 논문에서 데이터 사진이 중복된 것을 올리며 검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반전됐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다음해 1월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으며 원천기술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조사 결과 여성 연구원이 자신의 난자로 핵이식을 했던 윤리적 비극이 벌어졌단 사실도 드러났다. 류 교수는 “여성 연구원은 논문저자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질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황우석의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뉘앙스는 분명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황우석을 둘러싼 막강한 권력과 언론, 과학자들의 침묵과 동조가 만들어낸 유례없는 논문조작 사건이었다.

황우석은 왜 논문을 조작하게 된 것일까. 류 교수는 황우석이 노벨상, 권력에 대한 욕심 등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 연구부정을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류 교수는 “황우석은 99년 한국 최초로 젖소를 복제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젖소에 대한 논문은 없었고 검증할 수 있는 체세포도 없었다. 일단 언론에만 터트린 것이다”며 “헤게모니를 잡고 우선 지원금을 받는다. 이후 실력을 길러 재연하겠다는 것이 황우석의 조작 패턴”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옥주 서울대 교수(의과대학)는 “황우석 사건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논문조작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학문을 다른 용도로 이용할 목적 △연구를 조작하려는 의지 △연구부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학자들과 사회의 분위기 △노벨상, 권력 등의 외부적인 유혹이라고 정리했다.

글·사진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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