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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 연구의 공백은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春園 연구의 공백은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 최주한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14.10.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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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 최주한 지음|소명출판|901쪽|61,000원


새로 발굴된 자료들은 이광수의 친일문학 또한 창작 언어뿐만 아니라 매체와 독자라는 변수를 함께 고려해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가 나란히 등장하는 이 책의 제목은 독자들에게 제법 낯설게 느껴질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이광수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으로는 친일협력자라는 반민족주의자의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이자 사상가로서의 이광수의 업적이라는 것도 사회진화론으로 대변되는 서구 혹은 일본 근대 문학과 사상의 이식과 모방일 뿐이라는 관점이 여전히 지배적인 까닭이다. 더욱이 사회진화론을 내면화한 서구 혹은 일본 근대 문명의 추종자라는 2차 유학시절의 이미지나 1921년 상하이에서의 귀국을 기점으로 한 독립운동의 배반자로서의 이광수의 이미지는 일제 말기 제국 일본의 힘을 추종하며 제국 권력에 투항해갔던 가야마 미츠로(香山光郞)의 형상과 곧잘 직결되기도 하는 만큼,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란 어쩌면 모순 형용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체계적인 연구는 아니지만 이광수 연구자로서 오랫동안 이광수 주변을 맴돌았던 필자는 이러한 기존의 평가 앞에서 자주 막막한 기분이 되곤 했다. 나는 이광수에게서 제국이 강요한 생존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한 사회진화론자라기보다 동서양의 보편주의에 기반해 근대 제국주의의 논리에 맞서고자 했던 인본주의자의 모습을 봤고, 식민사관을 내면화해 민족성을 폄하하는 데 앞장선 식민주의적 개조론자이기보다 우수한 민족성을 일깨우고 회복해 인류 보편의 문화에 기여하기 위한 일련의 문화적 기획에 분투했던 민족적 개조론자의 모습을 봤으며, 일제 말기 총동원체제 속에도 제국 일본의 힘에 대한 추종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양가적인 실천의 국면들을 구사하는 전략적 타협가의 모습을 봤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보고 있는 이광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기존 평가와 주관적 직관 간의 괴리 사이에서
이광수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나의 주관적인 직관 간의 괴리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나는 일단 이광수에 대한 이런 저런 정치적 판단이나 선험적인 평가를 내려놓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광수가 접했던 다양한 문학자들의 작품과 사상가들의 저서를 직접 따라 읽으며 이광수의 사유에 보다 밀착하고, 이광수를 둘러싸고 있던 당대의 복합적인 힘의 조건들을 최대한 고려함으로써 이광수가 놓인 자리를 이해하고자 애썼다.


때마침 학계에서는 <신한자유종>(1910), <대한인정교보>(1914), <권업신문>(1914), <아이들보이>(1914), <새별>(1914), <학지광>(1916), <洪水以後>(1916), <방송지우>(1944), <일본부인>(1944) 등의 다양한 매체가 발굴되면서 이광수 관련 새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고, 오랫동안 추적의 대상이었던 『검둥의 설움』(1913)의 번역 저본이 발굴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광수의 새로운 면모와 더불어 이광수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이광수 연구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이 기존의 연구에서 더 나아가 이광수 연구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이들 새로운 자료들 덕분이다. 인접 학문 분야에서 이 책에 담긴 접근과 통찰을 공유할 만한 부분 역시 이들 자료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이들 새로운 자료를 통해 얻어낸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대한소년회에서 발행한 <신한자유종>(1910)이 발굴된 것은 그 동안 이광수의 회고 속에서만 존재했던 중학시절 소년회의 애국주의적 활동에 주목케 함으로써 이광수의 사상과 문학적 글쓰기의 출발점을 재조명할 수 있게 해줬다(제1부 1장). 이어서 오산시절 신문관에서 간행된 『검둥의 설움』(1913)의 번역 저본의 발굴은 『엉클 톰스 캐빈』(1852)에서 『검둥의 설움』에 이르는 번역의 경로 및 각각의 번역 과정에 각인된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와 더불어 번역상의 다시 쓰기 과정을 검토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 『무정』(1917)을 낳은 작가-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재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제2부 3장).


다음으로 대륙방랑시절 블라디보스톡과 치타에서 간행되던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 <권업신문>(1914)과 <대한인정교보>(1914)에 필명으로 실린 자료들과 더불어 <대한인정교보> 9·10·11호 소재 문장들이 이광수의 주도적인 편집과 집필로 이뤄진 사실이 밝혀진 것은 오산시절과 2차 유학시절, 그리고 상하이 임시정부시절을 잇는 사상적 연속성을 살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이 자료들은 오산시절의 경험에 기반했으되 대륙방랑의 경험을 거치면서 보다 확장되고 심화된 문명화론=독립 준비론의 구상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이 시기에 형성된 사유가 2차 유학시절은 물론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로 이어지는 다양한 활동의 기반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제3부 2장).


또한 이 무렵 국내에서 최남선이 주재하던 <아이들보이>와 <새별>에 실린 단편 「먹적골 가난방이로 한 세상을 들먹들먹한 허생원」(1914)과 우화 「물나라의 배판」(1914)이 발굴됨으로써, 그동안 이광수 연구의 공백으로 남아 있던 2차 유학 직전까지의 이광수 문학과 사상의 윤곽과 더불어 유소년 잡지라는 매체적 특성과 연동된 경어체의 도입이 장편 『무정』의 근대 문체 확립을 향한 도정에 자리하고 있음을 밝힐 수 있게 된 것도 기억해둘 만하다(제3부 1장).


한편 <학지광> 8호(1916)의 발굴로 새로운 전기를 맞은 이광수의 2차 유학시절에 관한 연구는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등단하기 직전 일본의 민권계열 잡지 <洪水以後>에 투고한 「조선인 교육에 대한 요구(朝鮮人敎育に對する要求)」(1916) 및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나란히 연재된 두 가지 판본의 「오도답파여행」(1917)의 발굴 소개와 더불어 좀 더 진척된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그 동안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된 문장들을 중심으로 한 2차 유학시절에 대한 연구가 이광수에 대해 주로 서구 및 일본 근대 문명의 추종자로서 총독부 권력과 타협해간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면, 이들 자료는 2차 유학시절 이광수의 글쓰기가 매체와 독자를 적극 고려해 언어를 선택하고 내용의 수위를 조절했다는 것을 또렷이 보여준다(제2부 3장, 제3부 4장).

이광수를 둘러싼 식민지 근대의 조건들
중학시절에서 오산시절, 대륙방랑시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에 발표된 문장들이 다수 발굴된 만큼, 이광수의 2차 유학시절에 대해서도 앞으로 좀 더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 일제 말기 작가들의 조선어 글쓰기가 불가능해진 시점으로 1943년의 조선어학회사건을 꼽았던 학계의 논의를 뒤집고 <방송지우>(1944) 및 <일본부인>(1945)과 같은 잡지의 발굴과 더불어 이광수의 조선어 단편들이 다수 발굴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들 자료는 이광수의 친일문학 또한 창작 언어뿐만 아니라 매체와 독자라는 변수를 함께 고려해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제3부 6장).


애초에 이광수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 소박하게 시작했던 연구는 차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식민지 근대의 조건을 이해하는 작업으로 확장됐다. 새로운 자료들을 토대로 들쭉날쭉한 연구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광수를 둘러싸고 있던 식민지 근대의 조건을 다층적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주어진 조건과 치열하게 대면하며 자의반 타의반 끝내 공적인 삶을 내려놓지 못했던 이광수를 이해하는 일도 요원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덕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저 새로 발굴된 자료들을 통해서 이광수의 새로운 면모와 더불어 이광수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이광수 연구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의 제목에 버젓이 식민지 문학의 윤리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이 또한 이광수의 주변을 맴도는 내내 필자의 의식을 사로잡았던 직관이자 잠정적인 결론일 뿐, 이제 후속 연구를 통해 충분한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할 운명에 놓여 있지 않은가 말이다.


 


최주한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서강대에서 이광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에 『제국 권력에의 야망과 반감 사이에서』, 번역서에 『근대일본사상사』(공역), 『일본 유학생 작가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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