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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와 노벨 문학상
파트릭 모디아노와 노벨 문학상
  • 교수신문
  • 승인 2014.10.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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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25년 전 대학 학보에 프랑스 소설에 관한 서평을 쓰면서 당시 가장 주목받는 프랑스 작가 세 사람이 ‘르 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미셸 투르니에’인데 앞으로도 이들이 프랑스 문학계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는 문학청년의 섣부른 판단을 내린 바 있었다. 이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한 사람은 오랜 기간 그 후보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예견력이 아닐 수 없었다고 자평해본다. 이들 중 2008년 르 클레지오가 처음 상을 받았고 올해 10월 9일 파트릭 모디아노가 그 주인공이 됐다.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인 미셸 투르니에는 90세의 고령이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이제 수상의 기회가 멀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본인도 ‘왜?’라고 궁금해 했을 정도로 다소 뜻밖의 일이면서도, 불문학 전공자라면 ‘상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고 수긍할 만큼 이견이 없는 결과였다. 작가가 수상 소감에서 ‘비현실적인’, ‘이상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추측된다. 우선 그가 속한 출판사의 편집자도 말했지만 프랑스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30년은 지나야 가능하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6년 전에 르 클레지오가 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작가 특유의 겸손함과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작가로서의 고민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1968년 『에투알 광장』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78년 대표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발표했고 69세인 2014년 10월에 스물여덟번 째 소설을 썼으니 작가로서의 그의 꾸준한 경력도 수상의 배경이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노벨 위원회가 속한 스웨덴을 비롯해 36개국의 언어로 번역됐고, 수상과 함께 프랑스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흥미로운 사건의 연속과 반전 등의 관점에서 ‘소설 읽는 재미’를 말할 때 모디아노의 소설은 다소 단조롭고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체성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의 소설은 등장인물의 정체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우리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그에 대한 평가가 말해주듯이,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그들의 과거와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퍼즐을 맞춰가듯이 재구성해나간다. 대개 그 기억의 저편에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점령기의 파리가 있다. 모디아노의 부모가 유대인으로서 신분을 숨긴 채 그 시기를 살았고 그를 낳았다는 사실에서도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을 그가 태어난 해이기도 한 1945년 무렵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15번 째 수상자를 배출하게 됐다. 이쯤해서 우리나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예측과 유럽 중심의 수상자 선정의 편파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 특히 이 시기에 언론을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 문학의 외국어 번역의 양과 질 문제도 자주 언급된다. 우리 문학작품의 해외 출판과 관련해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의 노력이 독보적인데 지금까지 30개 언어권 1천여 종의 작품이 번역됐지만 가까운 일본, 중국의 경우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프랑스의 대형 서점에 가보더라도 한국 작가의 작품은 소수의 ‘눈이 밝은’ 독자들만이 알아볼 정도로 서가 한편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소설가 이승우의 작품이 모디아노가 속한 출판사의 세계 문학 총서에 연달아 진입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하다.

창작과 관련된 연간 지원액이 부산 국제영화제 행사 한 번에 지원되는 금액보다 적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번역과 창작에 대한 지원 없이 우리문학의 세계화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언제, 누가 받느냐가 아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배출 여부가 그 나라의 문학적 위상의 전부를 말해준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에서 한사람의 작가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지키며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그 작품을 소비할 수 있는 출판시장이 형성돼 있는가의 문제다. 소수의 인기작가의 책과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번역서가 많이 소비된다고 해서 한국 문학의 토대가 탄탄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990년 여름 파트릭 모디아노의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소설 『신혼여행』이 프랑스에서 수개월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출간 즉시 절판될 정도로 주목을 끌지 못했던 이 소설을 프랑스 독자들은 왜 그리 오래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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