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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이 아니라 ‘문제’로서의 유산
‘해결’이 아니라 ‘문제’로서의 유산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0.21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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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강연 37회차_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이후’

▲ 사진 제공= 네이버문화재단
포스트모더니즘이 유령처럼 배회하던 시절이 있었다. ‘포스트모던 담론’의 숲은 울창했고, 그 숲 한 가운데를 활보하던 지성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11일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37회차 강연 주인공이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가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령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철학)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정치·사회철학자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토대를 이루는 ‘니체’ 철학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일찍이 편역서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이해』(1993)를 내놨고, 이어 1998년에는 『이성은 죽었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을 상재한 바 있다.

현대성 또는 모더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바다 건너 우리땅에 들어왔을 때, 이 이론을 수용했던 우리에게 결여됐던 것은 이 ‘태생적 문제의식의 부재’였다. 아마도 이 교수가 이날 ‘근대성의 검토’라는 기획의 하나로 강연 주제를 잡아낸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 부재에 대한 재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그 나름의 시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수용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발된 우리의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평가가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라고 자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텍스트’보다는 ‘콘텍스트’에 주목한 이 교수는 ‘포스트모더니티’를 현대적 시기의 단절로 인해 나타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에 동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 이후 변화한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더니즘의 약속을 배신하는 포스트모던한 조건들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 교수에 의하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차이는 세 가지인데, 첫째는 거대 서사에 대한 의심, 둘째는 현대적 주체에 대한 부정, 셋째는 차이에 대한 관심이다. “이 세 가지 관점들은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사상들을 관통하는 실마리”인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이념적 지표로 작용하기보다는 하나의 지적 유행으로서 사라지게 만든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이 날 강연에 드러난 그의 문제틀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자본주의사회의 역사적 조건 즉, 포스트모더니티를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분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이념적 대안으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과 함께 포스트모더니티 역시 사라졌는가.

이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대 서사’를 문제시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21세기에 거대 서사가 다시 부상하고 있음을 경계했다. 거대 서사가 갖는 전체화 경향과 폭력적 결과에 주목한 그는 “후기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열린 사회를 위협한다면, 다시 말해 모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억압적 기제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시장 근본주의를 ‘부드러운 전체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폭력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거대 서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대 서사’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이 지닌 유효성을 인정했다고 해서 이 교수가 ‘주체’와 ‘차이’를 바라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체의 복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는 “우리는 과연 행위의 주체 즉, 행위자를 전제하지 않고서 우리를 억압하는 조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차이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이를 절대화하고 보편화함으로써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박탈”하며 “그 결과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는 결국 현대인들에게 사적인 자유만을 보장하고 공적으로는 저항의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지속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 개념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 실제로는 보수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잘 말해 준다.” 전복적 힘을 상실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유령이 되고 말았다고 읽어내는 이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가리켜 “더 이상 위험한 사상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심미적 현상’에 집착한 결과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평범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서술하고자 했던 역사적 조건 즉, 포스트모더니티는 사라지지 않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해결’이 아니라 ‘문제’로서의 바로 이것,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성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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